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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다함께> 57호(2005-06-08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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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를 강타하다

닉 바레

프랑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닉 바레는 5월 29일 실시된 유럽헌법 국민투표 결과가 유럽의 엘리트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말한다

프랑스 국민투표에서 놀랍게도 유권자의 55퍼센트가 유럽연합이 제안한 유럽 헌법을 거부했다. 이것은 프랑스의 보수 정당과 블레어주의 좌파 ― 그리고 신자유주의 유럽 ― 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이것이 프랑스 노동계급, 가난한 사람, 청년, 진정한 좌파, 아래로부터의 프랑스의 승리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수치로 확인된 사실들은 놀랍다. 지난 10년 동안 급진적 대중 운동의 중심지였던 마르세유에서는 유권자의 63퍼센트가 신자유주의 헌법을 거부했다. 

공장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황폐해진 북부의 파 드 깔레 지역에서는 69.5퍼센트가 반대표를 던졌다.

몽펠리에와 페르피냥 주변의 랑그도크-루시용 지역은 프랑스에서 청년 실업이 가장 많은 곳인데, 63퍼센트가 반대했다. 파리 근교의 노동계급 거주지에서는 73퍼센트가 헌법을 반대했다.

이것은 계급 투표였다. 육체 노동자의 80퍼센트 가량이, 25세 이하 청년의 60퍼센트가 반대했다. 약 90퍼센트의 경영인과 파리의 부촌에 사는 사람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좌파의 신자유주의 정책 거부가 다수표를 획득했다.

그러나 결코 처음부터 예상된 결과는 아니었다. 여덟 달 전에 찬성파 진영은 여론 조사에서 훨씬 앞서고 있었다.

그 뒤 반자본주의 운동, 금융 투기를 반대하는 아탁(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 공산당, 사회당 좌파, 혁명적 좌파가 뭉쳤다. 이것은 지배 계급의 선전에 대항하는 전례없는 공동 캠페인이었다.

모임과 토론이 끝없이 조직됐다. 헌법 공부가 국민의 취미가 됐다. 사람들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수백 건의 헌법 관련 기사들을 읽었을 것이다. 인터넷은 공식 선전에 대항하는 강력한 도구가 됐다.

찬성파 진영은 반대 캠페인이 인기에 영합하는 반유럽적인 시대착오라고 비난했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일련의 전환점들이 있었다.

로랑 파비우스는 1980년대에 시장 자본주의를 채택해 악명을 떨쳤던 사회당의 유명 인사인데, 이번에는 바람의 방향을 알아챘다. 그는 헌법을 반대하고 사회적 유럽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엄청난 압력이 있었는데도 사회당 당원 중 42퍼센트가 지난해 12월 당내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올해 프랑스의 주요 노조 연맹인 노동총동맹(CGT)의 역사적 논쟁에서는 전국위원회가 지도부의 견해를 뒤집고 반대를 호소했다. 2월과 3월에는 대규모 파업들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을 앞질렀다.

주류 언론, 대통령 자크 시라크, 보수 정당, 사회당 다수파가 합심해 헌법 찬성 캠페인에 나섰다.

야당 중 공산당만이 TV 광고 캠페인을 할 수 있었다. 공산당은 할애받은 방송 시간을 나머지 좌파 동맹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공산당 지도자 마리-조르쥬 뷔페, 사회당 좌파인 멜랑숑과 임마뉘엘리, LCR 대변인 올리비에 브장스노, 공무원이자 급진 코페르니쿠스네트워크(Copernic network)의 창립자 이브 살레스, 급진 농민 활동가 조제 보베 등 전국적 저명 인사들이 모두 헌법 반대를 위해 연합했다.

막판에 찬성파 진영은 전 유럽에서 동맹자들을 불러들였다 ― 골수 신자유주의자이자 포르투갈 출신의 유럽위원회 의장 바로주, 독일 총리 슈뢰더, 스페인 총리 사파테로.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반대 투표가 반유럽적이라는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이번 투표는 좌파적인 투표였다. 나찌 지도자 장-마리 르펜과 우파 필리페 드 빌리에를 지지하는 인종 차별주의자, 파시스트, 민족주의자 들은 논쟁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다.

이번 투표는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반대한 것이었지, 민족주의를 찬성한 것이 아니었다. 투표 결과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전체 유럽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다.

자본주의적 유럽 건설에 잠시나마 제동이 걸렸고, 사회 운동들은 전진 방법을 결정할 시간을 벌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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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과 사회운동

최일붕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상이한 정치 조류들 간의 연합체(공동전선)를 건설해야 한다. 그래서 운동은 광범한 연합과 사실상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연합체의 장점은 단일한 또는 제한된 대의를 중심으로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광범하게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다. 반전운동은 평화운동가, 종교운동가, NGO 활동가, 좌파민족주의자, 노조원, 청년ㆍ학생, 환경운동가, 여성주의자, 이주노동자, 사회주의자 등등을 결속시키고 있다. 대안세계화운동도 비슷하다.

이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 6월항쟁 등 반독재 운동과 1996년 말∼1997년 초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 등에는 광범하고 상이한 정치세력들이 단일한 요구를 내놓고 참가해 연합했다.

광범한 운동의 강점은 이러한 다양성이다. 운동의 이러한 다양성을 상징하는 사람들, 가령 평화주의자, 민족주의자, 비(非)노동자, 노무현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 등과 함께하지 못하겠다며 반전운동에 종파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대중이 그 운동의 결속을 염원하는 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대중의 단결 염원이 강력할 때 일부 사람들이 정치조직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들은 정치조직이 운동에 대해 진정한 관심도 없으면서 운동을 지배하고는 자신의 의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진다. 실제로 그런 단체들이 있다. 개량주의자들도 흔히 운동의 급진적 에너지를 약화시키곤 한다. 그런 사람들, 그런 정치조직들에 대해 많은 활동가들과 많은 참여자들이 건강한 의구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전술ㆍ전략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는 것도 초기에 단결을 이룬 일만큼이나 자연스런 일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운동은 전개돼 감에 따라 특정 국면마다 고비를 맞게 된다. 더구나 운동이 권력자들의 이익에 위협이 될 만큼 발전하면 우익과 국가의 세력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고비 고비마다 주요 활동가들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음 스텝은 무엇일지, 가장 효과적인 투쟁 방법은 무엇일지 등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안세계화운동과 반전운동이 그랬다. 2001년 7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 반대 시위 참가자 카를로 줄리아니가 경찰 발포로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맞선 항쟁에서 이탈리아 재건공산당(리폰다치오네)이 한 구실은 결정적이었다. 리폰다치오네의 호소에 응답해 30만 명이 제노바로 운집했고 전국적인 하루 총파업도 벌어졌다.

또한, 9ㆍ11 이후 대안세계화운동은 반전운동으로 전환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했다. 2002년 11월 유럽사회포럼 직후 대안세계화운동의 우파 베르나르 카쌍은 <신좌파평론> 지에서 영국인 참가자들과 이탈리아인 참가자들이 너무 반전을 강조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반전운동으로의 전환이 옳았음은 2003년 이라크 공격 반대 2ㆍ15세계행동 이후 전개된 상황이 입증했다.

그러나 대안세계화운동 안에서 좌우 양극화 현상이 전보다 훨씬 첨예하게 나타났다. 특히 프랑스 아탁(ATTAC;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이 운동 내부의 개량주의 경향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떠올랐다. 아탁의 지도자인 베르나르 카쌍 등 우파쪽 주장의 요지는 좌파가 운동보다 당(정당)을 우선시하며 당의 이익을 위해 운동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자율주의 경향은 우파를 거들고 있다.

하지만 아탁이나 디소베디엔티(대표적인 자율주의자들) 같은 단체들도 당이다. ‘당’ 하면 뭔가 거창한 것, 본격적인 의미의 현대적 정당, 즉 대의원대회나 중앙위원회 같은 선출된 기구를 갖추고 명확한 구조를 갖춘 조직을 생각하는데, 마르크스주의적 의미로는 꼭 그렇지 않다. 사회 변화에 대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중심으로 모인 일단의 사람들이면 그게 바로 당이다.

그 규모가 매우 작다면 적어도 당의 맹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병아리가 참새나 독수리가 아니라 닭인 것처럼, 당의 맹아와 당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다.

당은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생겨나게 마련인, 운동의 결과물이다. 운동이 전개돼 감에 따라 특정 쟁점들, 특정 문제들도 함께 제기되기 마련이다. 그런 문제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놓고 상이한 분파들이 형성되고, 이러기를 여러 차례 거듭하다 보면 비슷한 고비가 닥칠 때 해결책이 무엇일지를 놓고 대강 큰 구도가 형성된다. 이렇게 해서 당이 형성된다.

(이 당들은 자신들이 참조할 만한 역사적 선례와 대강의 이론적 전범 같은 게 있음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준거로 하기 시작한다. 가령 일찍이 1980년대 후반에 친북 공산당이라 할 만한 조류와 친소 공산당이라 할 만한 조류로 남한 좌파 운동은 양분됐다. 후자는 오늘날 세분화해, 자율주의를 포함한 매우 다기한 경향을 띠고 있다.)

당이 운동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당 조직 문제와 운동의 발전 문제를 서로 대립시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운동이 내부 위기를 극복하고 진전을 이룩하고자 하는 결정적 순간에는 당이 필요하다.

운동 탄생기에는 단결이 자생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계속해서 단결이 자생적일 수는 없다. 단결은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고, 투쟁해서 얻는 것이다. 단결을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단결은 운동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모종의 당이, 모종의 정치적 입장이 운동의 주요 쟁점들과 대결해 해결책을 내놓음으로써 운동의 미래 결속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은 불일치와 실패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사회 변혁을 이루고자 하는 당이라면 운동을 찬탈하거나 운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이 사회 변혁을 향해 나아가도록 운동과 연계를 갖고 끊임없이 접촉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과 운동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당이라면 말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당을 건설하는 것과 운동을 건설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둘 다 필요하다.

그러므로 단지 광범한 운동들의 건설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운동 건설에만 매몰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세 가지 있다.

첫째 사례는 ‘노동자의 힘’(이하 노힘으로 줄임)이다. 전에 말했듯이, 박성인 등 이 단체의 창립자들은 노동조합 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탁월한 활동가들이다. 그들이 거의 20년에 걸쳐 내린 노동조합 뿌리 더하기 친(親)노힘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의 존재는 노힘이 노동계급 내에서 민주노동당 다음으로 중요한 정치세력이 되게 해주었다.

노힘 회원 가운데 민주노총 조합원의 수는 다함께의 민주노총 조합원 수의 갑절은 좋이 넘을 것이다. 더구나 그 노조원들의 활동가로서 의 비중을 비교하면 노힘이 다함께보다 노동계급 운동 안에서 더 중요한 세력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사회변혁적 선전ㆍ선동에서 시작해 노동조합 속으로 뿌리를 내려간다는 전략을 추구하는 다함께와 달리, 노힘은 노동조합으로부터 당을 건설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덕분에 노힘은 사회적 기반이 비교적 안정돼 있지만, 그 기반의 정치적 소극성과 회피성의 영향을 받아 이데올로기가 모호하다.(다함께는 이데올로기가 예각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 사회적 기반은 조직노동자보다 청년ㆍ학생과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더 많아 불안정하고 들뜬 상태라 할 수 있다.)

노힘의 범좌파 전략이 지닌 문제점도 있다. 범좌파 결집을 통한 좌파 노조 지도부 세우기가 핵심인 이 전략은 1997년까지는 그런대로 효과가 있었다. 1998년 이후 주로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때문에 노조 상근간부층의 일부인 좌파 집행부도 운신의 폭이 좁아지자 이 전략은 개량주의의 진정한 대안이 되지 못함이 드러나고 있다.

노힘이 노조 운동과 노조 내 좌파 네트워크 건설에 주력해 오는 동안 노힘의 이데올로기는 온갖 정치적 전통들의 무정형의 합성물이 돼 있다. 그 전통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힘에게 가해진 다양한 압력들을 반영하는 것들이다.

둘째 사례는 프랑스의 LCR(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이다. LCR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반부의 운동 침체기 동안 특정 작업장이나 노조 또는 캠페인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들의 연합체로서 살아남았다. 이는 일반적 마르크스주의 정치에 기초한 선전을 일상 활동으로 삼음으로써 침체기를 살아남은 영국 SWP(사회주의노동자당)의 전략과는 매우 다른 생존 전략이었다.

LCR은 각 부문에 튼튼히 뿌리내린 활동가들을 많이 확보하게 됐다. 그 덕분에 LCR은 더 큰 활동가 네트워크들의 형성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파업 이후 운동의 고양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했다. 예컨대 LCR은 아탁의 부상에도 결정적 구실을 했다.

그러나 LCR은 연합체이기 때문에 정치적 결속력이 약하고 정치조직으로서 개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예컨대 LCR은 대선후보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프랑스 청년들의 반자본주의 정서를 훌륭하게 대변함으로써 2002년 대통령 선거운동을 매우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당시 사회당 총리 조스팽이 탈락하고 2차 투표에서 주류 우파인 시라크와 파시스트인 르펜이 맞붙게 되자 LCR의 광범한 지도부는 시라크에게 투표하자고 호소함으로써 개량주의의 압력에 굴복했다.

아탁은 원래 1988년에 창립했는데, 아탁에서 활동하고 있는 LCR 멤버들은 2002년 가을이 돼서야 처음으로 총회를 열었다. 이토록 결속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LCR은 아탁 내 우파가 점점 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때마다 그에 대응할 힘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LCR은 시라크의 우파 정부가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머리 스카프) 착용을 금지했을 때도 개량주의자들의 압력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길을 택했다.

셋째 사례는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이다. 재건공산당은 1990년대 초반에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분리해 나온 당으로서 처음에는 약간 스탈린주의적 경향을 띠었었다. 공식적인 당 강령만 놓고 본다면 재건공산당은 소규모 좌파개량주의 정당이다. 이탈리아 전국에서 당의 득표율은 5퍼센트 정도이다.

하지만 1998년부터 재건공산당은 명백히 좌경해 왔다. 특히,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노바에서 재건공산당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또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재건공산당의 입장은 매우 단호했고 반전 시위에도 많은 사람을 참가시켰다.

재건공산당 지도자 파우스토 베르티노티는 당을 운동에 개방해야 하고 당이 운동과 하나가 돼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게다가 그는 매우 급진적으로 말한다. 그는 체 게바라와 레닌을 인용하곤 하는데, 이는 결코 오늘날 서유럽의 중도좌파 정치인들이 통상 쓰는 언어가 아니다.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베르티노티 당 개념의 결정적 문제점은 당과 운동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이 곧 운동이며 운동이 곧 당인 것이다.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당 개념인 동시에, 자율주의의 당 개념이기도 하다. 카우츠키와 스탈린,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모두 당과 계급을 동일시했다. 그들에게 “당은 계급을 대표한다.”(1903년 레닌이 멘셰비키의 당 개념을 비판적으로 요약한 말)

베르티노티의 경우 스탈린주의적 가정에 따라, 즉 당이 운동을 지배해야 한다는 뜻에서 당과 운동을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그는 공산당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당과 운동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재건공산당은 운동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전략이 없다. 자율주의도 당과 운동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전략이 없다.

이렇게 전략이 없다 보니 올해 초 리폰다치오네는 DS(민주좌파당 또는 좌파민주당) 주도의 ‘올리브나무 연립’ 정부에 들어간다는 전략을 새로 세웠다. 로마노 프로디가 이끄는 DS는 옛 공산당의 후신으로, 지난 10년 동안 ‘제3의 길’을 추구해 왔다.

리폰다치오네의 유턴이 최종 결정되던 지난 3월 초 당대회에는 자율주의 그룹 디소베디엔티의 리더인 프란체스코 카루조도 참석했다. 전날 그는 리폰다치오네의 중도좌파 정부 입각 계획에 동의한다고 발표했다.

전략적으로 사고하려면 먼저 당과 운동을 구별해야 한다.

당과 운동의 구별이 당과 운동의 분리를 뜻하는 건 아니다. 둘의 관계는 명령이 아닌 대화이다. 비유하자면, 공장 직반장과 노동자의 관계가 아니라 파업위원회 동지들 간의 관계와 비슷하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말하기를, 군사 전략ㆍ전술은 전선에서 직접 전투를 수행하는 사병들이 처음 창안한 것으로, 훌륭한 지휘관은 그것을 채택해 전 부대로, 전군으로 보편화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당이 없다면 이렇게 운동 속에서 상호 학습과 상호 교육을 포함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선진 소수가 다수를 설득해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것, 사람들에게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 주고 투쟁성을 고양하는 것은 중요하다.

운동과 공동전선들을 건설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운동 내부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여야 한다. 추상적이고 종파적인 방식으로 투쟁해서는 안 된다. 투쟁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제기되는 핵심 쟁점들을 수렴해야 한다.

당을 건설하는 것과 운동을 건설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긴밀히 연관돼 있다. 당을 건설하려면 운동에 무조건 뛰어들어야 하며, 운동 안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자신 있게 주장하기 위해 우리 대열을 정비해야 한다.

요컨대 노동계급의 해방은 그 자신의 일이라는 것, 당이 계급을 대행하지 않는다는 것, 당은 그것을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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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의 죽음을 기억하라

김광일

우리는 이라크 전쟁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노무현과 기성 언론은 이라크 전쟁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길 바랄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이툰 부대에 대한 공격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 줬다.

“번개작전”은 미군이 처한 상황을 보여 준다. 미군은 자신들의 병력을 중부에 집중시키고 있으면서도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조차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라크에서 부시의 처지는 마치 줄타기를 하다가 줄이 휘청거려, 목적지로 나아갈 수도 출발지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어릿광대와 비슷하다. 반전운동은 비틀거리고 있는 부시를 아예 떨어뜨려야 한다.

최근 주한 미군의 전략적 재배치는 미군의 첨단 무기 배치로 가시화되고 있다. 작년 말 광주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대가 배치됐고, 최근에는 스텔스 폭격기 15대가 배치됐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재배치 문제도 이런 계획의 일환이다.

이라크 상황 때문에 미국이 단기적으로는 동북아에서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첨단무기 배치는 동북아에서 중장기적으로는 더욱 심각한 군비 경쟁과 불안정을 낳을 것이다.

따라서, 전국민중연대, 한총련 등이 이런 계획에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

그러나 이 운동이 주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재배치 반대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약점인 듯하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재배치는 미국 세계제패전략의 일부다. 게다가 미국 패권 정책의 직접적 촉수는 여전히 이라크에 있다.

따라서 주한 미군 재배치에 반대하는 운동은 이라크 점령 반대 운동과 결합될 때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에서 패배한다면 동북아에서의 패권 강화 계획은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즉, 미국 제국주의를 패퇴시키기 위한 핵심 승부처는 여전히 이라크다.

주한 미군의 전략적 재배치 반대에만 강조점을 두는 활동가들도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에 참가해왔던 모든 세력은 6월 26일 故김선일 씨 1주기 반전 행동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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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민중항쟁이 대통령을 몰아내다

이수현

6월 6일 볼리비아 대통령 카를로스 메사가 사임했다. 지난 몇 주 동안 계속된 민중 항쟁이 결국 메사를 몰아낸 것이다.

지난 5월 16일 볼리비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국유화를 요구하는 시위, 점거, 도로봉쇄 등의 투쟁이 분출했다.

수도 라파스와 인근 원주민 밀집 지구인 엘 알토의 빈민가에서 몰려나온 시위대가 관공서들을 평화적으로 “접수”한 채 국회를 폐쇄해버리고 대통령을 퇴진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볼리비아노총(COB)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들은 볼리비아의 천연가스를 되찾고 싶어한다. 그들은 볼리비아인들을 위한, 볼리비아인들의 대통령을 원한다.”

코차밤바 시 남부에서는 가스수호회복연합이 학생 단체들, 농민 단체들, 다른 사회 단체들과 함께 정유공장을 “상징적으로” 접수했다. 가스연합 지도자 오스카 올리베라는 이렇게 선언했다. “이것은 마지막 ‘상징적’ 접수다. 다음 번에는 사람들이 우리의 국가 재산을 되찾고 운용하고 자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실질적 접수를 감행할 것이다.”

라파스 주변의 인구 밀집 지역인 고산지대에서는 농민들이 라파스로 이어지는 도로를 점거하고 봉쇄해버렸다. 엘 알토에서는 시의원들조차 단식 투쟁을 선언하고 메사의 퇴진을 요구했다.

메사의 사임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이 거둔 또 하나의 승리다. 지난 4월 에콰도르 대통령 루시오 구티에레스에 이어 메사도 쫓겨남으로써 라틴아메리카는 다시 한번 정치적 충격에 휩싸였다.

볼리비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아이티 다음으로 가난한 나라지만,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서는 핵심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지난 2000년에 코차밤바 시에서는 소농, 시장 상인, 노동자, 원주민 등의 대중 운동이 정부의 물 사유화 계획을 철회시켰다.

당시 볼리비아 정부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가로 물 사유화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코차밤바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후퇴해야 했다. 

물 사유화는 볼리비아의 자원을 다국적 기업들에게 ‘개방’하려는 더 광범한 신자유주의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 전략에는 이른바 ‘마약 전쟁’도 포함돼 있었다. 마약 전쟁의 주된 표적은 고산지대에서 코카를 재배하는 소농들, 즉 코칼레로스였다.

이 소농들은 대부분 고산지대의 주석 광산들이 폐광된 뒤 토지를 불하받은 광부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영웅적인 노동계급 투쟁의 전통이 강력한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그런 집단적 투쟁의 기억을 간직한 채 농촌으로 옮겨간 사람들이 코차밤바 항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코차밤바 항쟁은 또 당시 대통령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로사다는 물과 천연가스 사유화 전략을 적극 추진한 데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를 맹종하는 자였다.

코차밤바 항쟁은 사회적 저항의 확산이 시작됐음을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로사다의 경제 정책들 때문에 타격을 입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이런 사회적 저항에 가담했다.

2003년에 그들은 수도 라파스 인근의 원주민 밀집 거주 도시 엘 알토에서 로사다와 다시 대결했다.

9월에 볼리비아 전역에서 50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천연자원을 외국 자본에 넘기지 말고 국가가 계속 통제하라고 요구했다. 정부군의 발포로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10월 들어 엘 알토에서는 총파업이 선포됐다. 충돌이 격화됐고 엘 알토와 여타 지역들에서는 새로운 민중 권력 기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월 12일 시위 도중 31명이 살해당했다. 대중의 분노가 폭발했고 결국 로사다는 카를로스 메사로 교체됐다.

그러나 메사 집권 후 몇 달이 지나도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2004년 중반에 파업과 도로봉쇄가 다시 시작됐다. 메사의 대응은 새로운 석유법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0월이 되자 국민의 압도 다수는 국가가 석유를 통제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올해 초 메사는 다국적 석유회사들, 특히 비피 아모코와 스페인의 렙솔에게 석유와 가스를 싸게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저항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3월 초에 메사는 대통령직 사퇴와 8월 조기 총선을 협박 카드로 꺼내들었다. 이것은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한 책략이었지만, 코칼레로스의 지도자 모랄레스 같은 사람들조차 ‘사회 안정’의 허울 아래 일시적으로 메사의 책략에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국가의 석유 통제와 2003년 10월 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대중의 저항과 운동은 계속됐다. 그들은 국회와 대통령이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이윤에 50퍼센트의 세금을 매기는 법률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4월에 국회가 통과시킨 탄화수소법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물론 좌파들은 이 법도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충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메사는 이 법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부족하다고 생각해 새 법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5월 투쟁을 주도한 세력들은 요구 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3월에 시위대는 50퍼센트의 세금을 요구했을 뿐 메사의 퇴진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달 뒤에는 보상 없는 전면 국유화와 메사 퇴진을 요구했고 결국 이를 실현시켰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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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에게 절호의 기회

번역 김인식

이번 투표는 프랑스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우파 총리 라파랭은 목요일[6월 2일]에 사임했다. 대통령 시라크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새 내각을 발표했다.

새 총리 도미니크 드 빌팽은 내무장관 시절 경찰에게 이민자 추적 권한을 줬던 인물이다. 강경파 신자유주의자 니콜라스 사르코지도 정부를 도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시라크가 사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라크는 이번 국민투표를 제안해 정당성을 만회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불신당했다.

핵심 문제는 좌파적 대안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수많은 사람들은 현 사회당 지도부가 시장을 껴안기 위해 너무 멀리 나아갔다고 판단했다.

캠페인 초기에 사르코지와 사회당 지도자 프랑수아 올랑드가 나란히 잡지 <파리 마치>에 등장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좌파의 경계선이다.

사회당 지도부, 녹색당 일부, 대형노조인 프랑스민주노동자동맹(CFDT)이 모두 찬성 캠페인을 벌였다.

반대 캠페인은 공공 서비스, 연금, 주택, 민주적 권리, 평화 등 주요 쟁점들에 대한 좌파의 단결을 통해 건설됐다.

모임들의 규모는 역사적이었다 ― 운동의 목소리를 들으러 나라 전역에서 수천 명씩 몰려들었다.

1천 개가 넘는 지역 위원회와 공동체 들이 결성됐다. 이 조직들은 앞으로도 계속 신자유주의 정치에 맞서 저항을 건설할 것이다. 전국 대회가 가을에 열릴 예정이다.

유럽회의(European convention)와 제헌의회를 구성하자는 호소가 있었고, 이 제안들은 아테네 유럽사회포럼의 의제가 될 수 있다. 유럽과 프랑스의 정치적 대안 문제도 토론될 것이다.

공산당은 좌파적 대안을 토론하기 위한 모임을 제안했다. 공산당 안에서 중요한 논쟁이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운동 안에서 벌어지는 더 광범한 논쟁을 반영한 것이다.

사람들은 2007년 선거에서 사회당과 동맹할지를 묻는다. 공산당의 평당원들은 [조스팽 정부 시절의 동맹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노동자들도 같은 생각이다.

그들은 반자본주의적 좌파 대안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존 프랑스 좌파의 의회주의적 구성과 단절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산당 지도부는 그렇게 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위원회ㆍ공산당ㆍ노동조합 내 의미 있는 소수는 단절할 태세가 돼 있을 것이다.

노동계급의 희망은 마리-조르쥬 뷔페와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지금 하고자 하는 것에 모아지고 있다. 이것은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좌파가 기다려 왔던 기회이다.

프랑스판 블레어주의와의 단절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혁명적 좌파가 치러야 할 시험이다.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 더 자세한 내용은 ‘다함께’ 웹사이트 문서자료실을 참조하시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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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극좌파의 부상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난 두 주는 유럽 급진 좌파에게 매우 중요했다. 가장 확실한 근거는 프랑스의 유럽헌법 부결이다.

국민투표에 대한 영국 언론의 보도는 망신거리였다. 특히, BBC가 그랬다. “반대파” 진영을 시종일관 “잡다한 동맹”으로 묘사했다 ― 한 기자는 그 동맹을 사회주의노동자당(SWP)과 나찌인 영국국민당(BNP)의 동맹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 필리페 드 빌리에 ― 영국 보수당의 존 레드우드와 빌 캐쉬의 프랑스판 ― 와 나찌 지도자 장 마리 르펜은 국민투표 과정에서 들러리였다.

[유럽헌법이]부결된 결정적 요인은 개량주의 좌파 내부의 분열 심화였다. 첫째, 영국 노동당과 비슷한 사회당의 핵심 지도자들, 특히 로랑 파비우스와 앙리 임마뉘엘리가 헌법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고, 프랑스 최대 좌파 노조 연맹인 노동총동맹(CGT)의 활동가들이 지도부를 거슬러 반대 캠페인을 지지했다.

요즘 대안세계화 운동으로 불리는 프랑스 반자본주의 운동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금융 투기 반대 운동을 벌이는 아딱(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은 처음부터 헌법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베르나르 카쌍과 자크 니코노프 같은 아딱의 지도자들은 헌법 반대 캠페인과 이라크 점령 반대를 대립시켜 전자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그들의 노력은 칭찬할 만하다.

지난해 10월 런던 유럽사회포럼은 3월 19∼20일에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반대해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이라크 침략 반대 시위와 브뤼셀 집회 둘 다를 포함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수만 명의 노조원과 대안세계화 운동가들이 브뤼셀로 갔다. 벨기에 참가자들보다 더 많았다. 그들을 브뤼셀로 불러들인 핵심 쟁점들 중 하나는 볼케스타인 훈령[Bolkenstein directive, 유럽연합 역내시장 담당 집행위원 프리츠 볼케스타인의 자본 통합 훈령]이었다.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유럽위원회의 이 조처는 공공 서비스를 삭감해 사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더 악화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이 시위 때문에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와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훈령의 내용을 완화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투표 결과는 이런 쟁점들을 둘러싸고 투쟁한 좌파적 반대 캠페인의 승리였다. 대다수 사회당 지지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육체 노동자 중 거의 5분의 4가, 화이트칼라 노동자 중 3분의 2가 반대표를 던졌다.

이것이 민족주의적 반대였다는 말에 속지 말자.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관련 국민투표 때 나는 파리에 있었는데, 당시 공산당의 팻말에는 독일 지배의 위협을 환기시키는 히틀러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민족주의적 캠페인이었다.

이번에 공산당은 대안세계화 운동으로 방향을 틀어, [유럽헌법] 반대가 유럽에 이로운 까닭을 설명하는 유럽의 호소를 발의했다.

국민투표 결과가 미칠 즉각적인 영향 중 하나는 프랑스 사회당의 심각한 위기일 것이다. 사회당 지도자들은 찬성 캠페인을 벌였지만, 평당원들은 거부했다.

이것은 프랑스의 급진 좌파, 특히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에게는 커다란 기회다. 즉, LCR이 개량주의 좌파의 상당수를 끌어당겨 그들이 신자유주의와 결정적으로 단절하게 만드는 정치적 재편성에 일조할 것이다.

독일에서도 이 과정이 시작됐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선거에서 새로운 좌파 정당인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이 2.2퍼센트를 획득했다. 전 독일사회민주당(SPD) 당수이자 재무장관이었던 오스카 라폰테인은, 가을에 있을 연방선거에서 ‘선거대안’이 민주사회당(PDS)과 연합 공천을 한다면 ‘선거대안’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선거대안’과 PDS가 연합한다면 의석 확보에 필요한 5퍼센트 장벽을 십중팔구 돌파할 것이다.

존 프레스콧은 영국 정치에서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프랑스와 독일의 투표는 이것이 유럽 전체에서도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번역 김인식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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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방선거 결과 - 새로운 동맹의 도전

스테판 보르노스트는

스테판 보르노스트는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에서 급진 좌파들이 뭉친다면 역사적 돌파구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독일 집권당인 사회민주당(SPD)은 텃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 재앙적 패배를 겪자 당내 반란을 막으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조기 총선을 제안했다.

2주 전 SPD의 패배는 독일 정치의 전환점이었다. 이미 예상된 패배였지만, SPD 지도부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패배의 규모였다. 이처럼 SPD에 대한 총체적 환멸이 존재하는 상황은 믿을 만한 좌파적 대안을 건설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새로운 좌파 정당인 ‘선거대안’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선거에 출마해 2.2퍼센트를 득표했다.

‘선거대안’과 옛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사회당(PDS)은 새로운 범좌파 건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의미심장하게도, SPD의 옛 지도자이자 재무장관이었던 오스카 라폰테인은 지난 주에 자신이 39년간 몸담았던 SPD를 탈당했다.

그는 독일 사민당 정부의 총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에 맞서 좌파 연합을 이끌 준비가 돼 있다. ‘선거대안’과 PDS 사무실에는 둘이 함께 행동하라고 촉구하는 이메일이 폭주했다.

이미 여론조사에서는 8퍼센트의 사람들이 라폰테인을 앞세운 좌파 연합이라면 확실히 투표하겠다고 답하고 있고, 18∼22퍼센트의 지지율도 가능해 보인다.

SPD와 녹색당 연립정부가 조기 총선을 발표한 것은 스스로 정치적 파산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추진해 온 ‘아젠다 2010’과 사회보장 해체 정책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공격이었다.

SPD는 슈뢰더가 집권한 이후 13만 5천 명의 당원을 잃었다. 올해 1월에 실업 급여 삭감이 발효되자 1만 명이 더 탈당했다.

2004년에 ‘선거대안’이 결성된 것은 SPD 지지자들의 환멸을 가장 분명히 보여 주는 징표였다. 최근에 치러진 일련의 선거를 보면, ‘선거대안’이 SPD의 옛 아성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베르하우젠에서는 4.3퍼센트를 득표했다.

득표수는 18만 표였는데, 이는 그 지역에서 신생 좌파 정당이 첫 선거에서 얻은 표수로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치다. 슈뢰더가 조기 총선을 발표한 핵심 이유는 이처럼 SPD의 몰락과 대중적 지지의 하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슈뢰더와 SPD 사무총장 프란츠 뮌터페링은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당내 반발과 분열을 두려워한다.

SPD의 노동자 부문 지도자인 오트마르 슈라이너는 탈당하겠다고 협박했다. SPD 국회의원 11명은 대기업 세금 감면안에 찬성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뮌터페링은 자신이 의원단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고 슈뢰더에게 말했다. 어느 소식통에 따르면, 슈뢰더는 이런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좌파가 한 발 크게 내딛기까지 앞으로 4개월 남았다.

많은 쟁점들이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예컨대 PDS는 베를린과 멕클렌부르크-포르포메른 주의 집권당으로서 공공비용 삭감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신자유주의에 맞서 PDS와 연합하는 것은 지방 정부에서 PDS가 수행해온 역할에 의문을 던질 것이다.

전반적 분위기는 흥분이며, 단결을 향한 열망이 압도적이다. 독일 좌파에게 역사적 기회가 찾아왔다.

이런 분위기가 독일에서 대규모 사회적 시위들을 낳았고 프랑스에서는 유럽헌법을 부결시켰으며 영국에서는 리스펙트의 약진을 가능케 했다. 우리는 이런 정서를 가진 대중을 조직해야 한다.

번역 천경록

더 자세한 내용은 다함께 웹사이트  문서자료실을 참조하시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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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개악안 중단하라

김인식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여당이 6월 국회에서 비정규직 개악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단 의원의 경고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재계는 노사정 협상을 중단하고 정부안대로 법안을 처리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재계의 요구를 따라 노동계에 전쟁을 선포했다. 5월 23일에 당정은 6월 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열우당만이 아니라 한나라당도 정부법안에 동의한다. 다만, 한나라당은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열우당 선에서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정부가 노사정 합의에 의지할 것이라는 기대는 위험하다. 단병호 의원은 정부가 노사정 대화를 하더라도 “회기 중반쯤에 대화를 끝낼 가능성이 많다.”고 경고했다.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 개악안을 뜻대로 처리한다면, 하반기에는 노사관계선진화 방안(로드맵)을 밀어붙일 것이다.

로드맵의 핵심 목표는 노동조합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익 문제(임금 같은)만 다루고, 권리 문제(해고 같은)는 노동조합의 교섭에서 제외해 노사협의회에서 다루는 식이다.

또, 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를 없애되 대체근로 투입을 법제화하려 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개악안을 둘러싼 투쟁은 자본과 노동의 힘을 결정짓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정부는 노조 간부 비리 등 노동자 운동의 약점을 적극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도 경제적ㆍ정치적 위기로 말미암아 분열돼 있다.

두 세력 모두 위기를 겪고 있는 동시에, 둘 모두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대표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더 단호한가에 따라 태풍의 눈 ― 힘의 균형 상태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세력 ― 이 달라질 수 있다.

그와 함께, 승리할 수 있는 효과적인 투쟁 전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비정규직화는 회복되지 않는 경제 상태에 대처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가 선택한 시장주의 정책의 핵심 일부이다. 그 때문에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심하게 망가질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비정규직화가 노조 사안을 넘어 계급적인(=정치적인) 의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 작업장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넘어 비정규직 차별을 강화하는 법과 제도를 저지하는 정치 운동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대중적인 정치 시위와 파업을 건설해야 한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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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세계화 운동이 WTO ‘탈선’을 결의하다

김용욱

스리랑카 콜롬보의 WTO 전략회의에 참가한 <다함께> 기자 김용욱이 주요 논의를 소개한다

지난 6월 6∼7일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WTO 전략회의가 열렸다. 20여 개 아시아 나라에서도 2백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남반구초점, 아시아태평양 주빌리사우스, 델리사이언스포럼, 파키스탄노동당, 비아캄페시나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도 WTO반대국민행동과 다함께 등이 참가했다.

남반구초점의 월든 벨로는 “WTO가 개혁될 가능성은 칸쿤 각료회담 때보다 더 희박하다”고 말했다.

벨로는 홍콩 동원이 우리 운동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WTO는 홍콩 각료회담을 이용해 다시 한 번 자신을 추스르거나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홍콩 각료회담은 WTO판 스탈린그라드가 될 수 있다.”

대다수 활동가들은 홍콩 행동의 기본 목표가 WTO ‘탈선’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이번 전략회의에서는 실질적인 동원 계획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정치적 쟁점들이 제기됐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G20, G33, G90 등 이른바 개발도상국 동맹들과 우리 운동의 관계였다.

일부 활동가들은 이들과의 연대를 주장했다. 그러나, 벨로는 개도국 정부들이 대중을 배신한다면, 그들을 비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콩 ‘세계화감시’ 회원이자 홍콩민중동맹(HKPA) 조직위원인 아우룽은 이렇게 주장했다.

“중국은 값싼 수출품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와 농민들을 착취하는 국가이다. 빈국의 친구도 아니다. 중국은 저발전국들에 엄청난 경쟁 압력을 넣었다.

“우리는 중국 노동자와 빈국의 노동자들이 연대해 중국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나도 개도국이 연대해 미국과 유럽연합에 맞서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러나 우리 운동은 개도국 정부와의 연대를 추구할 수는 없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WTO 전략회의 선언문(콜롬보 선언)에는 개도국 정부와의 연대를 건설해야 한다는 제안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지는 않았다.

한국 운동은 홍콩 WTO 각료회담 반대를 위한 국제 동원에서 중요한 일부가 될 것이다.

그 때문에 홍콩 정부와 언론은 한국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하고 있다.

홍콩 주재 한국 영사관도 7천여 명의 한국 시위대가 참가할 것이라며 한국 경찰의 협조를 홍콩 정부에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HKPA 상근 활동가인 네이벨은 한국 참가단을 적극 환영한다면서 홍콩의 반WTO 구호를 소개했다.

“꽁이 싸우마우[WTO에 반대한다]” “모우얀 호이 따우 워 퐁 헤이[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필리핀과 일본 활동가들도 구체적으로 동원을 준비하고 있다. 필리핀 어민조직은 선상시위를 하며 홍콩 각료회담 반대 시위에 참가할 예정이다.

한국 활동가들도 홍콩 동원을 실질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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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동원을 위한 준비

박성환

12월 13∼18일에 홍콩에서 WTO 각료회담이 열린다. 한국에서도 WTO 각료회담을 저지하기 위해 많은 단체들이 준비에 들어갔다.

2003년 칸쿤 WTO 회담 저지 투쟁에서 영웅적으로 투쟁했던 전농은 이미 몇 달 전부터 홍콩 동원을 위해 도별로 계를 부으며 경비를 마련하고 있다.

6개월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다함께> 독자들도 지금부터 홍콩 WTO 각료회담 저지 투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참가 경비를 마련해야 한다. 12월이 성수기라 항공료가 대략 40만 원 안팎이 될 것 같다.

협상 관계자와 기자 등 1만여 명이 홍콩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숙박전쟁’도 각오해야 할 듯하다. 홍콩 물가는 한국보다 약간 비싼 편이다.

자, 지금부터 준비해도 결코 이른 것은 아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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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줄기세포 연구, 인류의 희망인가?

정리 장호종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최무영 교수 인터뷰

Q. 최근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언론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이 연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몇 가지 다른 측면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뭔가 다 금방 이뤄질 것처럼 말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엄청 많다는 거죠. 현재로선 아직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기까지는 요원하고 불가능할 수도 있죠.

윤리적 문제는 논외라 하더라도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해 보여요. 문제는 줄기세포를 만들어 내는 것까지는 가능한데 그것이 어떻게 분화할지는 우리가 아직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원하는 세포로 분화할 가능성보다 암세포로 분화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거든요. 파국이 되겠죠. 현재로선 우리가 그걸 이해도 못하고 있거니와 제어할 방법은 전혀 갖고 있지 못해요. 어쩌면 그건 영원히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보거든요.

요새 이론 물리학에서는 ‘복잡계’라는 개념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복잡계’라고 하는 건 우리가 자연계를 해석하는 데에 사용해 온 전통적인 물리학의 중요한 패러다임, 즉 환원주의와 결정론이 완전하지 않고 보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거든요. 어떤 경우에는 환원주의가 의미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생각해 온 넓은 의미의 환원주의는 분명히 잘못된 거에요. 자연을 그런 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하게 알려진 사실이에요.

생명현상이라는 게 ‘복잡계’의 전형인데 ‘복잡계’는 현실적으로는 제어가 불가능해요. 예를 들면 날씨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일기예보를 하루 정도는 예측할 수 있지만 일주일도 못하고 일년 정도는 전혀 알 수가 없거든요. 그 이유가 바로 ‘혼돈’이라고 하는 비선형성 때문인데 복잡계라는 게 그런 성격을 자체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제어할 수 없어요. 생명현상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복잡계 현상이고 환경의 영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모든 걸 결정해서 제어한다는 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요.

예측하지 못한 현상이 생겨난 전형적인 예가 광우병이라고 생각하는 데, 광우병이 처음 소한테서 나타나게 된 건 소한테 양고기를 먹여서 생겨난 것이지요. 왜 그랬냐면 빨리 살을 찌워서 돈을 빨리 벌려고 말이에요. 풀만 먹던 소한테 고기를 갈아서 먹이면 빨리 커지긴 하죠. 비정상적인 비만이 아닐까 하지만요. 어쨌든 거기서 광우병이 생겨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광우병은 프리온이라고 하는 단백질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요. 단백질이 꼭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소의 뇌에서 “번식”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소의 뇌를 다 파괴하는 건데 그건 아무도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리고 그게 지금 사람한테 옮아왔어요. 그건 고칠 도리도 없는 병이에요. 유전자 조작 작물과 식품 등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것들은 결국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과 관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처음에 그런 결과가 생길 거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거거든요. 자연과학에서 과학적 사고라고 하는 건 언제나 그런 의외의 결과를 염두에 두고 현재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는 것이지요.

현재 미국의 주도 아래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도 실용주의,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경쟁과 기술 중심으로 가고 나머진 다 무시되고 있는 거죠. 합리적인 비판정신이 필요한데 이건 당장 돈과 관계없으니 도외시되고 있지요.

Q. 황우석 교수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보고 다른 이공계 분야 연구자들이나 학생들은 한편으론 부럽지만 한편으론 불공평하다고도 얘기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타까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일과 관련 없이 지난 몇 년간 계속 그랬어요. 아무래도 신자유주의 영향인 듯한데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라는 거죠.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과기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이상한 이름의 대규모 연구계획이 하나씩 만들어지는데  “G7”, “프론티어”, “창의적 연구”, “NRL” 등의 예가 있지요. “창의적 연구”의 경우 한 사람한테 대개 7∼8억 원 정도를 매년 지원하는 거에요. 9년 동안 지원하는 거니까 60∼70억 원 정도 되는 건데 사실 외국에서도 드문 어마어마한 액수지요.

반면에 그렇게 되니깐 일반 연구자들은 연구비가 많이 줄었죠. 일반 연구자들의 연구에 대한 소규모 지원은 경쟁률이 20대 1쯤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연구비가 너무 부족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면에 연구비가 너무 많아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한정된 연구비 재원을 유용하게 쓰는 효율성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연구비의 대부분은 응용기술 연구에 들어가요. 사실은 공학이 압도적이고 기초 자연과학 연구는 정말 얼마 안 되죠. 물리학 분야에서 받는 사람들도 제법 있지만 대부분 물리학이라기보단 공학에 가까운 주제로 받는 거에요. 실제로 “소자나 신물질을 만들어 내겠다” 이런 걸로 받는 거지요. 그러니까 진정한 기초과학 쪽으로 받는 연구비는 정말 적은 거죠.

하기는 보도에 의하면 황우석 교수 연구팀에는 2백60억 원을 지원한다니 다른 건 아무것도 아닌 거죠. 세계에서 그렇게 연구비를 많이 받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 모르겠네요. 물론 연구비 지원이 이렇게 막대하면 연구 성과가 엄청나게 나올 수 있겠지요. 그 밑에 박사 연구진이 수십 명이 있고, 모두 열심히 일할 터이니 엄청난 수의 논문도 낼 수 있고 계속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실험을 하니까 그 중에 성공하는 게 나올 가능성도 높은 거지요.

Q. 정부는 기초과학보다는 당장 상업화할 수 있는 기술 연구에 집중 투자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럴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또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교육부가 추진한 이른바 두뇌한국(BK)21 계획을 보면 실제 내용과 관계없이 명칭이 좀 어처구니없어요. 공식 명칭을 무슨 사업단으로 하라고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교육부의 대학원 교육이 무슨 사업이라는 거여요. 현재 정부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거죠. 교육과 연구라는 게 사업이니 이른바 시장 논리 신자유주의에 아주 충실한 거지요.

농담 삼아 말하자면 옛날에는 가장 두려워하는 게 호랑이, 홍수, 지진 이런 거라고 하지만 요즘은 그런 건 극히 부분적인 것이고 오히려 핵폭탄, 유전자 조작, 환경오염 같은 걸 제일 두려워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건 전부 인간이 만들어 낸 거죠. 다시 말해 기술 때문에 걱정하는 거여요. 결국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가장 두려운 것이 됐지요. 현재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청와대가 아니라 삼성이라고 여겨지는 현실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네요.

어쨌든 과학이 기술로 응용이 됐고 그게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는데 그걸 파악하려면 다시 과학이 보여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핵 위기나 환경오염 같은 문제는 기술로 해결할 수 있으므로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게 아니라, 진정한 과학적 사고, 과학 정신으로서 한 차원 위에서 내려다봐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혀 과학적이지 못합니다. 비판적인 과학적 인식과 성찰 없이 해결할 수는 없다고 봐요.

과학이라고 하는 건 과학자들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문제가 생길 거여요. 과학은 열려 있는 것이고, 전문적인 지식 하나 하나보다 중요한 건 과학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거죠. 그리고 그건 누구나 얘기할 수 있는 거지요.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과학이라고 하는 건 인류의 중요한 업적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이거든요. 과학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가지고 과학과 기술에 연관된 첨예한 이슈와 문제에 참여하고 공유해서 그 방향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해요.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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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조합원이 지도부를 통제해야

전지윤

노무현은 노조 간부 비리 들춰내기를 노동운동 공격의 무기로 삼고 있다. 돼지저금통 사기, 유전 게이트 등 온갖 비리의 똥통에 빠져 허우적대던 자가 말이다. 

노무현은 노동자 투쟁의 주요 고비 때마다 노조 간부 비리를 곶감 빼먹듯 하나씩 터뜨려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분열을 야기하고, 지도부를 마비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 틈을 노려 정부는 현장 노동자를 공격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 정부는 항운노조 간부 비리를 빌미로 항만 노동자들을 비정규직과 해고로 내모는 상용직화를 결정했다. 한나라당은 ‘해고 요건 완화 법 개정’을 들먹이고 노조 회계에 대한 외부 감사를 강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87년 노동자 투쟁’으로 사라졌던 독재 정부 때의 노조 통제ㆍ감시를 되살려 노조의 자주성을 해치려는 것이다.

이처럼 부패의 몸통들이 노조 간부 비리를 빌미로 노동운동을 공격하려 하는 마당에 “검찰은 지금보다 훨씬 강도 높은 수사를 벌여[라]”(양문석 언론노조 전문위원)고 촉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반면에 노조 간부 비리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것도 잘못된 태도이다. 

지배자들은 강경 투쟁을 벌이는 거대 노조들이 권력화한 것이 비리의 원인이라며 은근히 전투성을 겨냥한다.

그러나 ‘무파업’으로 유명한 항운노조 간부들은 2003년 화물연대 파업 때 ‘파업 파괴자’ 노릇까지 했다. 채용 비리 문제로 사퇴한 기아차노조 집행부는 비공인 파업을 “불법”이라고 공격했던 우파 지도부였다.

노조 간부 비리의 원인은 노조 관료의 존재에서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고 협상하는 노동조합은 상근 간부층을 형성하게 된다.

현장 노동자와 떨어져 협상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 간부들은 차츰 보수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협상을 더 중시하고 투쟁을 골치 아픈 일로 여기기 시작한다.

현장 노동자들의 통제에서 벗어나 협상의 전권을 가지게 된 일부 간부들이 협상 파트너인 기업주들과 어울리며 유착하고 부패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선출ㆍ통제할 수 없는 관료들이 장기 집권, 심지어 세습까지 하며 부패하는 모습을 한국노총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노총 선출직 간부 중 41.4퍼센트가 재직 기간이 ‘9년 이상’이고 24.1퍼센트가 ‘4선 이상’이다.           

이번에 비리의 고리가 된 근로자복지센터는 3백34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아서 지었다.

부패한 우파 노조에 반대해 등장한 민주노조 운동의 산물인 민주노총에서도 노조 관료화와 부패한 노조 간부들을 발견할 수 있다. ‘87년 노동자 투쟁’ 이후 민주노조가 점차 안착하면서 상근 간부층이 두텁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봤을 때 정부 산하 한국노동연구원의 해법은 엉뚱하기 그지없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배규식은 “현장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통제를 일정 정도 벗어날 수 있도록 … 관료적 조직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노동조합 지배구조의 위기>). 이런 해법은, 결국 노조 간부 비리의 더 깊은 웅덩이를 만드는 격이 될 것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대기업] 노조의 권한을 산별 노조로 이양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기업 노조든 산별노조든 협상ㆍ결정 권한이 소수의 간부들에게 집중돼 있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박유기 현대차노조 전 사무국장은 “권한을 조합원에게 분산해야 담합과 비리가 줄어들 수 있다.”(<금속노동자> 26호)고 지적했다. 

지금 “간부 재산 공개”, “윤리 강령 제정” 등 노조 간부 비리에 대한 다양한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들이 노조 간부를 통제할 수 있는 대안들이 구상ㆍ실행돼야 한다.

예컨대, 매번 사측과의 협상 전과정을 조합원들에게 공개하고, 믿을만한 시민단체가 추천하고 무엇보다 평조합원이 통제하는 회계감사제도가 있을 수 있다.

모든 노조 간부는 언제든지 조합원에 의해 선출ㆍ소환될 수 있어야 한다.

‘87년 노동자 투쟁’ 때는 대부분 노동자들의 집회와 파업 현장에서 협상이 이뤄졌다. 노조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구호ㆍ노래 소리를 들으며 협상을 했고 협상 결과는 곧바로 노동자들에게 발표ㆍ승인됐다. 이처럼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 꽃피는 민주주의에 바탕을 둘 때에만 노조 간부 비리를 막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다.

→ 관련기사 23면을 보시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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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위기 논쟁 - 전투성이 위기를 낳는가

전지윤

노조 간부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노동운동이 위기라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노동운동 위기 논쟁에서 핵심은 위기가 어디서 왔으며 따라서 노동운동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이다.

민주노총 이수호 지도부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등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진영은 위기의 원인을 ‘전투적 투쟁’에서 찾는다.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비타협적 전투주의와 최대강령주의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노동사회≫ 98호)고 말했다.

윤진호 교수는 노동운동 위기를 “길거리 투쟁, 집회, 시위에만 의존했던 것이 불러 온 결과”(≪노동사회≫ 100호)라고 말했다.

노중기 교수의 지적처럼 “전투적 조합주의에서 살릴 것과 죽일 것”이 있다면 이들은 전투성을 ‘죽일 것’으로 보는 셈이다.

이들의 대안은 “투쟁과 대화의 병행이 절실히 요청되는 현재의 노사관계 질서”(이상학)에서 “사회 협약 정치를 활성화”(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협약을 지지하는 최장집 교수마저 지적하듯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의 방향을 완결짓고자 하는 …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하여 노조가 얻을 것은 다만 부분적인 교환 이상일 수 없다.”(<민주주의와 한국의 노동>)

아니나 다를까 윤진호 교수는 “조직 노동자가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수호 위원장은 “고용안정성이 담보되면 임금 동결 분위기도 만들 수 있을 것”(<한국경제> 5월 15일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직 노동자들이 양보하면서까지 사회적 교섭에 매달리는 건 결코 사회개혁이나 미조직 노동자의 처지 개선을 이룰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물줄기를 끊을 수 있는 힘은 현장 노동자들의 대중 행동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노조가 회사의 사활이 걸린 핵심공정까지 마비시키는 파업에 나설 경우 회사는 문을 닫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버티기 어렵다.”(1월 25일치 사설)고 지적했다. 체제의 “급소를 움켜쥐는” 노동자 대중의 파업, 집회, 시위는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저들이 두려워하는 이 힘이 개별 작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 개혁과 변혁, 피억압 민중의 권익과 해방을 위해 쓰이는 것이 필요하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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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생명이 먼저다

변혜진(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

5월 13일, 보건복지부는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통해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 참여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복지부 발표의 요지는 한마디로 ‘병원의 주식회사화’를 뜻한다.

지금 모든 의료기관은 비영리법인으로 제한돼 있다. 그럼에도 많은 병원들은 치료보다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부분의 과잉 진료를 통해 돈벌이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의 주식회사화를 허용하면 병원은 더욱 노골적으로 이윤추구에 혈안이 될 것이다. 주주들에게 최대치의 이윤을 배당하는 것도 합법적이게 된다.

그리 되면 의료기관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과잉 진료를 하게 될 것이고, 의료비 폭등 때문에 대다수 국민은 의료 이용에 심각한 제약을 받을 것이다. 

영리병원과 민간의료보험이 의료 분야를 주도하는 미국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이 국민총생산의 6∼8퍼센트를 의료 분야에 써 대다수 국민에게 비교적 평등한 의료를 제공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국민총생산의 15퍼센트를 의료비로 쓰는데도 아무런 의료 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려 4천5백만 명이다.
더욱이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한국의 건강보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의료 보장을 받고 있다.

이런 까닭에, 미국 초등학교들에서는 체육 시간에 학생들이 다치면 학교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까 봐 체육 활동을 하지 않는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자, 노무현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에 4조 원을 투자하고 건강보험 흑자분을 건강보험 혜택 확대에 투자한다는 방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것은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이나 공공의료 확충 투쟁의 성과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조처는 핵폭탄을 터뜨리며 허술한 방공 대피소 몇 개를 지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삼성병원과 삼성생명, 외국계 보험자본들의 숙원 사업인 의료 시장화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병원을 영리법인화하면 고용이 창출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병원 노동자와 사회보험 노동자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을 뜻할 뿐이다.

시민사회단체가 병원 영리법인화를 반대하는 까닭이다.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농은 6월 1일에 ‘무상의료 무상교육 실현을 위한 집회’를 가진 바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6월 7일부터 매주 영리법인화 반대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정부가 영리법인화를 추진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밝힌 이상, 이제 무상의료운동은 영리법인화 반대 투쟁과 결합돼야 한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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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노동탄압을 고발한다

박미경(삼성해고자 가족)

삼성은 구조조정에 반대한 내 남편 송수근을 해고하고 복직 투쟁 때 바른말 한 걸 두고 명예훼손죄 등으로 두 번이나 구속했습니다.

퇴근하던 노동자가 “수근아 수고한다” 이 말 한 마디 했다고, 다음날 불러내서 종일 면담하며 괴롭혔습니다. 결국 송수근을 만나거나 아는 체 하지 않는다는 반성문을 쓰게 했습니다.

노동자를 납치ㆍ감금ㆍ폭행ㆍ협박했는데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웃기는 세상. 노동자가 바른말하면 명예훼손 등으로 바로 구속되는 희한한 나라.

삼성의 횡포에 무참히 짓밟혀서 억장이 무너지고 숨쉬기 힘든 고통으로 아파하며 뜬눈으로 지새는 수많은 시간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떨리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흐느껴야 하는 가족들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과연 헤아릴 수나 있을지.

딸아이가 7살이었을 때 두번째 구속된 아빠를 그리워하며 “엄마, 나도 아빠처럼 감옥 안에 갇히면 안 되나? 아빠랑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다. 엄마 … 나 … 가슴이 아프다” 하고 말했습니다.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하던 어린 딸의 고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명예훼손, 집시법 위반 등으로 송수근은 1년8개월16일을 철창 속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이 해고자 한 사람 때문에 피해 입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더군요. 힘없고 빽없는 해고자는 졸지에 가해자가 되어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삼성의 감시와 미행이 담긴 비디오, 사진 자료가 있는데도 삼성은 언제나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삼성의 집시법 위반도 무죄. 납치 사건도 무죄. 감시ㆍ미행도 무죄. 한마디로 기가 막힙니다.

송수근 홈페이지: www.antisdi.com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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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화국’의 위기

최미진

고려대 이건희 학위 수여 저지 시위는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삼성의 온갖 악행을 들춰 내는 좋은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이건희가 며칠 후 시위는 “내 부덕의 소치”라며 꼬리를 내렸음에도 삼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권력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핵심 권력인 사법부와 행정부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삼성으로 몰리고 있다.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사실로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한겨레> 5월 29일치) 

삼성전자가 형사 고발한 삼성전자 소속 노동자를 기소한 한 검사는 퇴직한 뒤 곧바로 삼성에 취업했다.

이런 비난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이건희는 사장단과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2주에 걸쳐 대책회의를 했다.

그러나 삼성 간부가 밝혔듯이, “무노조 경영과 경영권 세습이 (삼성의) 아킬레스건”이다.

고대 시위가 있은 후 열린 삼성 노동자들의 기자회견에서는 21세기의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삼성의 노동 탄압 사례 발표가 있었다.

‘너까짓것 하나 죽이는 것쯤이야 삼성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야’라며 살해 협박을 하고, 죽은 사람 명의로 핸드폰을 만들어 노조원 위치추적을 하고, 노동 탄압 사실을 폭로했다고 되레 노동자를 감옥에 집어넣고, 노조 일일주점에 참가했다고 해고하고, 노조 결성을 주도하는 노동자의 딸을 미행하고, 노조 유인물을 받기만 해도 해고 협박하고, 전기봉으로 파업 노동자 폭행하고.
이러한 삼성의 악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삼성은 이마트 노동자들에 대한 징계를 철회하라는 지방노동위원회 결정을 간단히 무시하고 노동조합원을 전원 해고했다. 삼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러나 이건희 학위 수여 저지 시위는 삼성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영감을 줬다.

지난 5월 21일에 있은 이마트 공대위 집회에서 고대 시위 학생들의 최종 승리 발표를 들은 이마트 노동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원직 복직, 노조 인정의 그 날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환 위원장은 이건희 저지 시위 학생들과 면회한 자리에서 “삼성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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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임금을 현실화하라

김덕엽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최저임금법이 개정됐다. 앞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국민소득 중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을 반영하기로 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을 경우 원청업체에서 차액을 보전해 주는 연대책임제도 도입했다.

현재 법정 최저임금은 64만 1천8백40원으로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35퍼센트 수준이다. 이 조차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1백25만 명이나 된다.

민주노총과 22개 시민 사회 단체들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는 최저임금으로 81만 5천1백 원(시급 3천9백 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2004년 전 가구 생계비 2백30만 3천 원의 35.4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경영자총연합회는 최저임금 현실화를 반대하고 있다. 사장들이 그 동안 최저임금법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50퍼센트 이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결정해 왔기 때문이다.

개정 최저임금법의 내용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위원 2명, 사용자위원 5명, 공익위원 4명으로 전적으로 사장들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구성돼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위원의 협상에만 의존해서는 최저임금 현실화를 이룰 수 없다. 민주노총의 지적처럼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해서는 “계급 투쟁”이 필요하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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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김우중을 감옥으로

장호종

노무현의 ‘경제 살리기’와 대규모 정ㆍ재계 사면 바람을 타고 김우중이 귀국을 시도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김종률과 전 대우경제연구소 이사장 출신의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한구가 김우중의 “업적”을 거론하며 분위기를 잡는가 하면, 전 대우임원 출신들의 모임인 ‘대우인회’와 ‘세계경영포럼’은 토론회까지 잡아가며 김우중 “찬양ㆍ고무”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김우중은 “세계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진 사기 사건의 주범이자 실패한 기업인의 전형일 뿐”(한신대 배준호 교수)이다. 또한 그가 말한 세계경영이야말로 지금도 전 세계 민중을 고통으로 밀어넣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다른 표현이었다.

대우 그룹의 “기적적인 성장”도 김우중이 과거 정권과 긴밀하게 유착해 얻은 특혜와 탈법, 노동자 착취를 통해서 이뤄진 것일 뿐이다.

김우중은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1백억 원 대의 돈을 뇌물로 바쳤다는 사실을 실토했고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때도 수백억 원의 뇌물을 바쳤다.

김우중은 1999년 부도 직전 41조 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은행에서 9조 2천억 원을 사기 대출받고 영국 비밀 금융조직인 BFC를 통해 25조 원을 해외로 빼돌렸다. 김대중 정부는 대우 계열사에 30조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지워졌다.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김대중 정부의 살인적인 탄압에 시달릴 때 김우중은 그 돈으로 유럽의 호화 별장에서 편히 독서와 요양을 즐겼다.

위암으로 수술을 받고 심장병을 앓고 있다며 불쌍한 시늉을 하던 김우중은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그를 잡으러 유럽까지 날아갔을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지금은 베트남에서 “파더(Father)라 불리”며 전 대우 계열사들의 각종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런 파렴치한 자가 재기를 위해 입국한다면 절대로 그냥 내버려둬선 안 된다. 무기징역 같은 형벌은 바로 이런 자를 위해 만들어 둔 것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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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해도 될까요?

“그 분(전두환)이 쓰려고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믿지 않는다. 다른 용도가 있지 않았을까? 나라나 정치를 위해 준비하지 않았겠는가. … 그건 다 ‘뜻이 있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 ‘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 대표

“국민의 지식 수준이라든가 또는 국민의 학력 형태도 대학 졸업자가 60퍼센트이기 때문에 다음 대통령은 대학을 다닌 경험이 있는 분이 이 시대에 적절하지 않나 생각했다.”
- 한나라당 전여옥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상당수 한국인들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나라로 북한보다 미국과 일본을 꼽는 사람들이 더 많은가 하면”
- 조갑제

“내가 강경이라고 만든 것은 언론이고 나는 강경 보수가 아니다.”
- 정형근 

“개혁 - 실용 논쟁은 원래 존재하지도 않던 현상을 가상적으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 제 스스로 개혁파라고 자처한 적도 없고 실용파라는 이유로 누굴 공격한 적도 없다.”
- 유시민

“이제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파트너로서 국가의 정책이 그에 봉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 최장집 교수

“저의 작은 희생이 정치 발전의 밀알이 되어 우리 정치가 새 출발하기를 바란다.”
- ‘차떼기’ 주역 김영일 가석방 소감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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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통신 산업 사유화에 맞선 파업

사르타지 칸

파키스탄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이 정부의 통신 산업 사유화 계획을 좌초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4백20만 개의 전화 회선이 끊기게 된다.

지난 두 주 동안 5만 5천 명이 넘는 파키스탄통신회사(PTLC)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에 참가했다.

그러자 정부는 사유화 계획 연기를 발표했다. 일단 노동자들을 해산시킨 뒤 재추진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이 글을 쓸 무렵 노조는 파업 재개를 발표했다.

파키스탄통신회사는 단기 계약을 맺은 경영자들을 영입했는데, 이들의 임무는 사유화가 “순탄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신속한 매각을 위해 파키스탄통신회사는 1년 수익에도 못 미치는 헐값에 팔릴 판이다.  이 때문에 세계 곳곳의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싱가포르텔레콤, 차이나모바일HK, 텔레콤말레이시아, 사우디오제르, 에미리트텔레콤, 턱셀, 이집트의 알말 컨소시엄 등이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파키스탄통신회사의 한 노동자는 “우리 사장들은 우리의 기본적 도구와 장비들을 빼앗아 갔다. 회사를 마비시켜서 사유화의 명분을 만들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노조 활동가들이 전화교환국 밖에 검은 깃발을 내걸면서 통신 노동자들의 분노가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카라치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이것은 두 시간 파업으로 발전했다. 파업은 결국 3시간 동안 벌어졌다. 며칠 사이에 파업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번 주 초쯤 파업은 이슬라마바드까지 번졌고, 이곳 노동자들은 파키스탄통신회사의 본사를 점거했다. 경영진과 노조 사이의 협상은 결렬됐다.

정부는 수백 명의 경찰을 동원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기술부 장관 아와이스 레가리는 정부가 파업 노동자들을 엄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을 “악당들”이라고 불렀다.

정부의 다른 사유화 계획 역시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 2월 카라치의 전력 공급 체계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는 대규모 시위와 파업들 때문에 좌절됐다. 대기업인 지멘스가 입찰에 참가했지만, 거래를 성사시키지는 못했다.  

파키스탄의 군사 독재자 무샤라프 장군은 사유화 과정에 자금을 대는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에 있는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다.

그의 기반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정당들과 동맹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반면 사유화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그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번역 김용민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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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패트리어트 미사일 기지 반대 시위는 정당하다

김광일

지난 5월 15일 광주 송정리에 배치된 미군 패트리어트 미사일 기지 반대 시위에 대해 노무현 정부의 탄압이 벌어지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패트리어트 미군 기지의 폐쇄를 요구하며 기지 철조망을 뜯어냈다. 정부는 시위 참가자들의 ‘폭력’을 문제삼고 있다.

6월 6일 현재 백용현 남총련 의장, 정용호 무안민중연대 집행위원장 등 2명이 구속됐다. 또한 10여 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29명에게 소환장이 발부됐다.

광주 패트리어트 미사일 기지는 작년 11월에 배치됐다. 이는 미군의 전략적 재배치의 일환이다. 첨단 무기의 한반도 배치는 중ㆍ장기적으로 동북아의 불안정성을 더욱 깊게 만드는 진정한 “폭력”이다.

노무현 정부의 공격은 위선적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이라크에 파병한다던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활동가들을 공격하고 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 기지 폐쇄 투쟁은 완전히 정당하다. 위선자 노무현은 탄압을 중단하라.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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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김용민

이라크 군대 4만 명이 바그다드에서 저항세력 소탕을 위한 총력 공세 ― 소위 “번개 작전” ― 를 펼치고 있다.

최근 바그다드 일대에서는 저항세력의 무장 공격이 급증해 왔다. 미국과 이라크 정부를 상징하는 모든 것이 공격 대상이었다. 5월 23일에는 신임 이라크 보안 책임자가 무장 세력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미군은 최근 몇 차례의 군사 작전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껏해야 망신을 면하는 정도였다. 끝이 안 보이는 주둔 때문에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 ― 미국 국내에서도 ― 피로와 불만이 쌓이고 있다.

점령지의 수도에서 벌이는 대규모 군사 작전은 이렇듯 미국의 다급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군은 바그다드를 팔루자 식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바그다드는 팔루자보다 20배나 큰 도시다.

미군과 이라크군은 기껏해야 바그다드에 대한 통제력을 잠시 회복하는 정도일 것이다.

반면, 그들이 바그다드에 집중하는 동안 이라크 전역에서 저항이 솟구치고 있다.

<인디펜던트> 기자 패트릭 콕번은 미국의 딜레마를 이렇게 묘사한다. “[미]군은 일종의 소방 부대 같은 역할을 한다. 급한 불길을 잡는 데는 잠시 효과가 있지만, 항상 불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떠나는 게 문제다. 인구 3백 만의 니네베 주(州) ― 모술이 주도 ― 에 미군은 고작 6천 명뿐이다.”

미군은 이라크 보안군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자신은 중무장한 기지로 철수해 희생자를 줄인다는 계획 ― 소위 “이라크화” ― 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위험이 따른다. 미군이 뒤로 물러나면 이라크의 대부분이 사실상 저항세력에게 넘어갈 것이다.

이미 이라크 서부는 거의 완전히 미군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고, 남부 바스라조차 저항세력의 손에 넘어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미군을 대체하기에는 이라크 보안군의 사기나 무장, 훈련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미국이 조장해 온 종파간 갈등 때문에, 충돌이 종파와 인종의 경계에 따라 벌어지는 경향이 생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이라크군의 압도 다수도 시아파와 쿠르드족이다. 반면, 공격 대상의 압도 다수는 수니파일 것이다. 

지난 팔루자 학살 이후 이런 패턴이 반복돼 왔다. 이라크 군대가 감행하는 모든 공격은 수니파 지역에 집중돼 왔고, 모든 병력은 시아파나 쿠르드족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라크 경찰도 시아파로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병력들이 충원된 시아파 공동체나 도시가 공격 목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저항세력의 공격이 압도적으로 미군과 이라크 군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최근 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SCRI) ― 현재 이라크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최대 시아파 정당 ― 가 이끄는 바드르 여단이, 같은 시아파인 알 사드르가 이끄는 마흐디 군과 무장 충돌을 벌인 데서 드러나듯, 진정한 대립은 수니파와 시아파가 아니라 점령군과 꼭두각시 정부 그리고 저항 운동 사이에 있다. 

다른 한편 미국은 매수와 협박을 통해 수니파 정치 지도자들이 저항 운동과 단절하고 새 헌법 작성 과정에 참여하게 만들려 한다. 그래서 지난 5월 22일 일부 수니파 정당들이 헌법 제정 과정에 참가하겠다고 발표했다.

급진 시아파 지도자 알 사드르 역시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중재에 나서는 것과 함께 정치 과정 참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미국이 원하는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 참여를 선언한 수니파 정당들은 최근의 수니파 성직자 납치ㆍ살해에 바드르 여단과 이라크 내무부 장관이 연루해 있다고 비난하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알 사드르의 중재 역시 아직까지는 현 정부와의 타협보다 두 종파 사이의 무분별한 충돌을 막는 데 더 비중을 두고 있다. 그는 “미국이 종파 갈등을 악화시켰다”고 비난한다.

지난 6일에는 “점령군이 남아 있는 한 정치 과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고 “점령 인정에 완전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온갖 폭력과 야비한 술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점점 더 깊숙한 수렁에 빠지고 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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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 부대는 지금 당장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

김용민

지난 5월 30일에 아르빌에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가 저항 세력의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그 며칠 전에는 자이툰 부대가 쿠르드족 민병대인 페쉬메르가를 훈련시켜 왔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두 사건으로 자이툰 부대가 “안전한 곳에서 평화와 재건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이 완전한 거짓이었음이 밝히 드러났다.

자이툰 부대가 훈련시켜 온 페쉬메르가는 부패한 쿠르드 지도자들의 사설 민병대이다. 지금은 저항세력 진압에 적극 나서며 점령 부역 세력 노릇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작년 4월과 11월의 팔루자 학살에도 투입됐다.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면서 우즈베키스탄, 불가리아 등 상당수 연합군 참가국이 속속 철군하거나 철군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무현은 부시와 함께 이 수렁에 더욱 깊이 빠져드는 위험을 감수하려 한다. 열린우리당 김성곤은 “자이툰 부대가 공세적 작전이 수반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비극은 김선일 씨로 충분하다. 자이툰 부대는 지금 당장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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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ㆍ광진 반전평화바자회

전현정

지난 5월 21일 뚝섬유원지에서 故김선일 추모 1주기를 맞아 반전평화바자회가 열렸다.

지역의 36개 단체가 포함된 반전평화성동광진연대 주최의 이번 바자회는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등 지역의 여러 민주 시민단체, 교회, 전교조 소속 교사와 학교 아이들까지 모두 11개 단체에서 50여 명이 참가했다.

바자회는 대성공이었다. 1백50여 벌의 헌 옷가지들을 판매해 약 15만 원 가량의 수익금을 남겼다. 반전선언 손바닥 도장찍기, 평화 솜사탕, 장난감 무기를 캐리커쳐와 바꿔주기, 반전평화 페이스페인팅 등 다양한 행사들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작은 꼬마에서 어른들까지, “나는 전쟁에 반대합니다”라고 적힌 종이에 자신의 손바닥을 찍어 바자회 장소에 길게 전시한 모습은 멋진 광경이었다.

이 행사는  다소 소극적이던 지역 시민단체들의 참가를 끌어냈고, 사람들의 반전 정서를 다시금 확인해 주었다. 우리는 이 성공을 반전공동전선이 더 힘차게 나아가는 디딤돌로 삼을 것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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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노무현

정병호

오는 6월 11일 워싱턴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이 날 회담은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을 주요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라크 점령에 발목이 잡혀 있는 미국은 여전히 전략적으로 중동 질서 재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로 나아가기도, 그렇다고 북한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들어주기도 어려운 조건이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미국은 북한에 6자 회담 복귀를 유화적으로 설득하거나, 북핵 문제에 대한 유엔 안보리 회부 협박을 통해 압력을 넣는 것을 반복해 왔을 뿐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한미 정상은 미국의 대북 압박은 그대로 둔 채 원론적인 수준의 공문구를 합의하는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한미동맹 문제에 대해서도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근본에서 노무현은 미국의 의사를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친미적 자주”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노무현 정부의 ‘자주’는 근본에서 한미동맹을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최근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이 의도치 않게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자, 결국 “동북아 지역의 최후의 균형자는 미국”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노무현은 미국이 추진하는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화’ 방침 또한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고 했던 노무현은 최근 북한을 위협하는 스텔스 기가 남한에 배치된 것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북한 체제 붕괴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작전계획 5029’ 또한 ‘개념계획 5029’로 이름만 살짝 바꿔 미국과 합의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이 건재함을 보여 줌으로써 근본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 전략을 용인할 것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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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에 즈음한 한국 시민사회 입장’ 발표에 대해

정병호

정상회담 당일,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민중연대ㆍ참여연대ㆍ통일연대ㆍ평통사ㆍ평화네트워크ㆍ평화여성회가 제안했다.

이 날 발표할 입장은 ‘미국의 대북 압박 반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및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 반대’ 등을 기조로 한 것으로 대체로는 부시 정부에 대한 경고와 노무현에 대한 촉구로 이뤄져 있다.

이는 노무현의 방미에 힘을 실어 주자는 식이었던 예전의 입장에 비하면 분명히 진일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시에 맞서 “자주적 평화외교의 전기를 마련”하라고 노무현에게 촉구하는 것이 자칫 노무현에 대한 헛된 기대를 부추길 수 있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노무현이 부시와 논쟁하러 정상회담을 하는 것도 아닌 바에야, 한미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다.

그럼에도 ‘다함께’는 이 날 입장 발표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입장 발표를 제안한 단체들이 그 동안 반전 운동 건설에 앞장서 온 단체들이라는 점을 주로 고려했다. 이 날 발표할 입장 또한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전략을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다함께’의 반제국주의 정치와도 충분한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 원칙의 차이가 있는 다른 단체와도 ‘전쟁 반대’와 같은 구체적 쟁점에서 실천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운동 건설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정치의 순수함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실천적 협력을 거부한다면, 혁명적 정치는 운동 내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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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15 남북공동선언 5돌 - “민족 공조”가 희망인가

정병호

최근 진보 진영 내 좌파 민족주의 경향의 단체들은 6ㆍ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미국에 대항하려면 6ㆍ15 5주년을 맞아 “민족 공조”를 강화하는 것이 당면 핵심 과제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민족 공조론’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주체를 ‘민족’으로 설정하는 것이 반제국주의 투쟁을 협소하게 만들 수 있다.

제국주의는 세계 체제이므로 당연히 세계적 규모로 대응해야 한다. 미국은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와 중동 질서 재편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반전 운동의 과제는 여전히 이라크 점령 반대와 파병 한국군 철수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좌파 민족주의 경향의 단체들은 대체로 한반도에서의 반미 투쟁 ― 주한미군 철수 투쟁 ― 을 중요한 실천 과제로 삼으면서 파병 문제에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민족 공조론’의 또 다른 문제는 일부 주체주의 경향처럼 “민족 공조”를 위해 북한핵에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좌파 민족주의 경향의 일부 활동가들은 북한 핵개발이 한반도 평화를 가져다 줄 원동력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북핵에 대해 비판적인 단체들을 비판하고 있다.

‘민족 공조론’의 마지막 문제는 ‘공조’ 대상을 ‘민족’으로 설정하다보니, 민족의 일원인 지배자와 동맹을 맺는 것이다. 가령 6ㆍ15나 통일 문제에선 노무현과 공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노무현에 반대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면, 일관되게 지배자들에 맞서기 어려울 수 있다.

미 제국주의와 지배자들에 진정으로 맞서려면, 반전 운동의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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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으로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을까

김영익

지난 5월 27일∼29일, 한총련ㆍ한대련 등이 공동 주최하는 ‘5월 한마당’이 고려대에서 열렸다. 28일 오전에 북미 관계에 대한 김창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의 강연회가 열렸다.

김창현 사무총장은 “한국전쟁 때 맥아더가 한반도 북부지역을 핵폭격하려고 했었”던 것, 1950년대 이래 한반도에 미군이 “전술핵 수천 기를 배치한 사례”와 1994년 전쟁위기 등을 잘 설명했다.

그러나 김 총장이 북핵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는 북한의 핵보유를 (전쟁을 막기 위한) ‘군사적 억제력’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아가 김 총장은 북한의 핵보유 선언으로 50여 년간 유지돼 온 한반도의 군사적 비대칭성이 무너지고 북-미(의 군사적 지위)는 대등해졌다고 과장했다.

물론 북한의 위협을, 1만 기가 넘는 핵무기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위협과 비교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따라서 진보진영 내의 일부가 양비론적 관점에서 북한과 미국을 공평무사하게 비판하는 것은 분명 옳지 못하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 보유 선언을 했음에도 미국이 강경하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은 북한의 군사력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미국의 대북 압박은 미국이 추진하는 세계제패전략의 일환이다. 그리고 미국은 바로 그 전략에 근거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어 한반도와 같은 다른 분쟁 지역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북핵 문제에서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핵을 보유했고 만만치 않은 재래식 군사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여전히 미국의 전체 군사력과 비교하면 한참 모자란다. 북한의 핵무장과 군비 확대만으로 미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망상이다.

그리고 북한이 핵개발을 비롯한 군사력 증강에 의지해 위기에 대응하려는 것은 전쟁 위기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뿐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남한과 일본의 핵개발 의지를 자극해 동북아 전체를 핵무기 경쟁의 수렁으로 밀어넣을 수도 있다.

핵에 의한 평화는 무장한 평화일 뿐이며 이것은 더 한층의 심각한 전쟁을 부를 위협이 있다.

또한 북한의 핵개발은 수백만 북한 인민의 생존권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다. 핵무기 위협은 지배계급뿐 아니라 다수의 피억압 대중까지 겨냥하기에,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단결에 해롭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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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 이것이 미국이 말하는 ‘중동 민주화’인가

조지 부시의 아내 로라 부시가 5월 23일에 이집트를 방문해 이집트 정부에 대한 칭찬을 늘어놨다. 그녀는 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대담하고 현명한” 사람이고, 민주주의를 향해 “첫 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식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가 5월 25일에 드러났다. 전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동진압 경찰 부대와 우익 폭력배들이 반정부 운동 ― 키파야(Kifaya) ― 지지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한 것이다.

목격자들은 사복 경찰이 여성 시위자들을 골라내, 옆에 대기중인 깡패들에게 여성들을 넘겼고, 깡패들은 여성들의 옷을 벗기고 희롱했다고 전했다. 깡패들의 공격과 성희롱을 당한 사람 가운데는 여성 기자들도 몇 명 포함돼 있었다.

한 목격자는 궁지에 몰린 시위자에게 깡패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설명했다. “그들은 그녀를 덮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나체가 될 때까지 옷을 찢어 버렸다. 그녀의 몸에는 거의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명이 그녀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는 그 위에 올라탔다. 몇 명이 그녀의 팔과 다리를 잡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성희롱했다. 나는 그녀가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바닥을 기어다니며 비는 것을 봤다. 그녀는 그 짐승들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다른 놈들이 계속해서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무바라크의 잔혹 행위는 이집트 사회 전체에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영국어머니재단’과 비슷한 ‘이집트어머니연합’은 지금 내무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 연합은 또 무바라크 정권의 탄압 강화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이번 주 수요일에 모든 이집트 여성들이 검정색 옷을 입자고 호소하고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번 습격을 “거리 위의 아부 그라이브”라고 부른다. 이는 무바라크의 야만적 탄압과 미국에 있는 무바라크 후원자들의 만행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시위대에 대한 공격은 대통령선거 관련 규정들을 수정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안을 둘러싼 국민투표가 치러진 날에 벌어졌다.

과거에 대통령 선거는 한 명의 후보만 출마할 수 있었다. 유권자들은 찬성 아니면 반대만 할 수 있었다.

새로운 규정은 후보가 여러 명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후보들은 민족민주당 정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정부 기구들의 추천을 받아야만 한다. 키파야 운동과 무슬림형제단은 국민투표가 사기라고 비난하며 사람들에게 보이코트를 호소했다.

그들은 카이로에 있는 언론협회 건물 밖에서 국민투표 반대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의 공격을 받았다.

무바라크 정부는 이집트 국민의 약 54퍼센트가 국민투표에 참가했다고 주장하지만, 반정부 활동가들은 실제 투표율이 겨우 4퍼센트 정도라고 말한다.

국민투표를 취재한 기자들은 투표소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무바라크 지지자라고 밝히기만 하면 몇 번이고 투표할 수 있었다고 폭로했다.

키파야 활동가들은 이번 국민투표가 20년 동안 이집트를 지배해 온 호스니 무바라크와 “개혁가” 시늉을 하는 그의 아들 가말의 경선극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술책은 백악관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은 그것을 중동 민주화의 증거라고 치켜세운다. 미국 정부는 해마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경제ㆍ군사 원조를 통해 부패한 무바라크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적 소요가 이집트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파업과 시위의 물결이 고양돼 왔다. 키파야는 이러한 운동을 뒷받침하는 지도적인 조직 세력으로 부상했다.

부시는 이러한 민주주의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집트 정부가 이를 짓밟는 것을 승낙했다.

한국에서도 6월 9일 이집트 대사관 앞에서 전국민중연대, 민주노동당인권위원회, 다함께, 민변, 인권실천시민연대, 보건의료단체연합, 사회진보연대 등이 무바라크 규탄 시위를 벌였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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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 카이로 폭력 현장 목격담

아이다 세이프 엘 다울라

시위 현장에 있었던 아이다 세이프 엘 다울라가 목격담을 보내 왔다

이집트 경찰과 여당의 사주를 받은 깡패들이 “역사적 국민투표” 날인 5월 25일을 무력과 폭행이 공공연히 난무하는 장으로 바꿔 놓았다. 

경찰은 폭동 진압 경찰을 태운 트럭들과 깡패들을 가득 실은 버스를 동원했다. 깡패들은 처음에는 말로, 다음에는 물리적으로 시위대를 공격했다. 그 뒤 경찰이 구타에 가세했고, 나중에는 사람들을 체포했다.

많은 청년들이 공격받았지만, 경찰과 여당의 주요 공격 목표는 명백히 여성들이었다.

거의 단 한 사람의 여성도 예외가 없었다. 깡패들은 여성들의 머리채를 낚아채고, 옷을 찢고, 성희롱했다. 길 한복판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발가벗겼다.

경찰들은 깡패들이 모여 있는 한 가운데로 여성들을 밀어넣었고, 그들이 온갖 만행을 저지르도록 방조했다.

깡패들은 여성들의 목걸이, 손목 시계, 가방 속의 돈과 휴대폰을 훔쳤다. 그들은 시위대에게 굴욕감을 주려 했다.

그러나 공격당한 사람들의 정서는 깡패들이 의도한 굴욕감과는 완전히 달랐다. 몇 시간 동안 옷이 벗겨지고, 구타를 당하고, 성희롱을 당한 여성들 ― 나 자신을 포함해서 ― 은 고립감 속에서 망연자실해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하이샴 무바라크 법률 센터에 모였을 때, 우리의 사기는 극적으로 변했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정부가 완전히 이성을 잃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정부가 마치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상처받은 괴물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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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 베이루트의 선거 사기극

번역 김용민

레바논 총선의 1차 투표는 중동 “민주주의의 새로운 여명” 뒤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냈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단지 27퍼센트만이 투표에 참가했고, 올해 초 시리아의 점령에 맞서 “백향목 혁명”을 이끌었다는 칭송을 받았던 정당들이 수도인 베이루트에서 의석을 나눠 가졌다.

암살당한 전 총리 라피크 하리리의 아들 사아드엣딘 하리리가 이끄는 정당이 의석을 휩쓸었다.

겉으로 보기에 이번 선거는 레바논 역사상 가장 잘 조직된 것처럼 보였다. 경찰들은 설치지 않았고, 투표소는 잘 준비돼 있었으며, 세계 언론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유럽연합은 1백50명의 참관인을 파견했다. 미국 대사는 “백향목 혁명”의 지도자들을 치하하기 위해 오찬을  베풀었다.

시리아는 선거에 거의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시리아의 정보 기구가 철수함에 따라, 일부 사람들은 레바논과 시리아 군대에게 억압받아 온 활동가들이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떤 이들은 여성들이 선출되기를 바랐다.

레바논 지배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과 프랑스의 대사관들은 반시리아 야당 인사들이 하리리의 정당에 가입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모임을 열었다.

이 정당에는 옛 군벌인 왈리드 줌블라트, 친(親) 이스라엘 군벌의 미망인인 솔랑헤 제마옐, 지난 3월 시위에서 무슬림들을 “바보들”이라고 불러 유명해진 기브란 투에니 같은 자들이 포함돼 있다.

하리리가 이끄는 정당의 후보 8명과 제마옐은 상대 후보들이 “협박에 의해 사퇴”한 뒤 단독으로 출마해 당선했다. 제마옐은 이것이 “이방인에 맞서 함께 행진하자”라는 자신의 슬로건이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 “행진” 때문에 “백향목 혁명” 이래 40명이나 되는 시리아 노동자들이 살해당했다.

나머지 10개 선거구에서도 경쟁은 거의 없었다. 서베이루트에서 3분의 1을 득표한 좌파 후보 나자프 와킴이 유일한 예외였다.

언론들은 하리리의 정당에 맞서 출마한 후보들을 라피크 하리리 암살의 공모자라고 비난했다. 계급과 종파에 따른 양극화가 극심한 나라에서 이러한 비난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투표가 마감되고 몇 시간 뒤, 하리리와 줌블라트 지지자들이 와킴의 세속 정당인 ‘민중 운동’의 사무실에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몇 주 뒤에 결선투표가 있을 것이다. 베이루트의 선거 사기극이 전국 곳곳에서 반복될 것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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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펙 반대 행동이 시작되다

김어진

6월 3∼4일 제주도에서 아펙 통상장관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WTO 도하개발의제(DDA)를 순조롭게 통과시키자는 “제주선언”이 채택됐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롭 포트먼은 “아펙이 무역자유화를 중요한 기둥으로 삼는 전통을 이었다”고 흐뭇해했다.

그러나 회담장인 제주컨벤션센터 앞에서는 아펙 통상장관회의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서울과 제주도 활동가들 1백여 명이 참가했다.

작년에 전쟁물자 선적 거부를 결의했던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참가도 인상적이었다.

화물연대 제주지부 노동자들은 “전쟁 반대”, “노동자 농민 다 죽이는 아펙에 반대한다”, “실업, 빈곤 조장하는 WTO 반대”라고 쓰인 배너를 트럭에 꽂고 참가했다.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대표는 “사인펜 하나로 우리의 삶을 맘대로 결정”하려는 아펙 통상장관들을 규탄했다.

아펙을 준비하는 부산시에 대한 폭로도 있었다. 아펙반대부산시민행동 활동가는 이렇게 주장했다.

“부산시는 아펙이 열리면 부산 경제가 활성화될 거라며 4천4백20억 원 유치 효과 운운한다. 그러나 근거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료를 내 줄 수 없다’고만 답한다. 그러면서 노점상 단속과 철거가 한창이다.”

문경식 전농 의장은 WTO가 농민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WTO 10년 동안 농민들 3백만 명이 사라져 버렸다. 부채는 네 배로 늘었다.

“농산물 수출국 농민들도 잘 사는 게 아니다. 태국은 2년에 7번 생산해서 수출하는 농업대국이지만 한국에서 그렇듯이 중소농과 소작농은 농촌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WTO가 지구 어느 곳에서 회의를 하든 박살낼 것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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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체신청에 맞서 투쟁하는 화물연대 노동자들

김광일

아펙 통상장관회의 반대 집회에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제주체신청은 4월 26일 일방적으로 하청업체를 변경한 데다, 두 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제주체신청은 농성 노동자들에게 생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말만 할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40일 넘게 투쟁하고 있다.

아펙 통상장관 반대 시위를 마친 참가자들이 ‘다함께’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농성장을 지지 방문했다.

제주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모범을 보여 줬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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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힘’은 제4인터의 한국 지부가 아닙니다

독자편지 | 노동자의 힘 사무처장 황금춘

<다함께> 편집자 동지께

노동해방과 반전-반세계화 투쟁에 헌신하는 동지에게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연락을 드리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다함께> 55호(2005년 5월 14일자)에 실린 편집자의 글이 ‘노동자의 힘’에 대한 잘못된 사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끝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노힘은 제4인터내셔널(FI)의 공식 한국 지부이다(http://reds.linefeed.org/usfi.html). 2001년 이후 제4인터내셔널은 국제사회주의경향(IST)과 통합을 논의해, 프랑스의 경우에는 IST에 속해 있고 ‘다함께’의 자매단체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가 FI 프랑스 지부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으로 통합하기도 했다. 우리도 노힘과 논쟁뿐 아니라 실천적 협력도 원한다.”

공식적으로 말씀드리지만, ‘노동자의 힘’은 제4인터내셔널의 지부가 아닙니다. 최일붕 동지가 근거로 삼고 있는 웹사이트는 개인 웹사이트이며, 따라서 거기에 실린 정보가 모두 사실로 볼 수 없음을 확인 드립니다.

따라서 <다함께> 신문은 “실천적 협력”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사실이 아닌 정보를 유포함으로써 ‘노동자의 힘’의 명예를 중대하게 훼손하였습니다. 따라서 <다함께> 지면을 통해서 ‘허위사실의 정정 및 사과보도’를 게재해 주실 것을 편집자 동지에게 정식으로 요청하는 바입니다.

동지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2005년 5월 20일

정정보도

‘노동자의 힘’이 제4인터내셔널의 한국 지부가 아니라니 유감입니다. - 최일붕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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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여성주의’

독자편지 | 조지영(이화여대 학생)

지난 5월 24일 이화여대의 사회복지학과 정영순 교수는 <사회복지정책론> 강의를 듣는 80명의 학생들에게 여성 국회의원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출석 체크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80명 전원이 저녁 5시에 국회의사당에 가야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만난 것은 한나라당 여성 국회의원들뿐이었다. 또한 학생들은 정영순 교수가 미리 준비하게 한 꽃바구니와 “의원님 힘내세요” 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야 했다.

학생 중 몇 명이 불만을 표했지만, 정영순 교수는 학생들 모두에게 한나라당 여성위원회를 홍보하는 데 쓰일 기념사진을 찍도록 강요했다.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교수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동영상과 사진들을 ‘이대생과 한나라당 여성 국회의원들과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한나라당과 송영선 등 한나라당 여성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자랑스레 올려 놓았다. 이 사진들은 ‘한나라당 여성 파워 네트워크’를 홍보하는 데 또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여성차별에 반대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이 박근혜, 송영선 같은 자들에게 지지를 보내 줄 리는 만무하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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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의 국가 개념에 대한 나의 생각

독자편지 | 안형우

지난 5월 29일에 있었던 맑스 꼬뮤날레 중 ‘자율적 맑스주의인가 고전적 맑스주의인가’ 논쟁은 내가 자율주의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자율주의자들이 자본주의 국가 파괴와 노동자국가 수립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국가로부터의 탈주라는 모호한 말을 사용하는 것은 국가 개념을 초역사적 지위에 올려놓고 그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국가는 역사 속에 존재한다. 지금 존재하는 국가는 자본가들 입김에 가장 취약한 ‘자본주의 기구’이다. 자율주의자들이 보고 환멸을 느꼈을 스탈린주의 국가들 또한 관료들의 이해를 대변했다.

소련 시절 관료들과 현재 러시아 자본가들과의 놀라운 연관성이 그것을 증명하는데, 소위 ‘사회주의’ 시절의 소련 국가기구와 지금 러시아 국가기구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세우려는 노동자 국가는 이런 자본주의 국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1917년 갓 탄생한 노동자 국가는 혁명을 말살하려는 제국들 사이에서 완전히 색다른 선택을 한다.

제국적 압력에 대해 자본주의 국가는 군비증강으로 맞섰지만 신생 소비에트 러시아는 모든 식민지를 포기하고 전 세계 노동계급에게 호소하는 길을 택했다. 이런 호소와 경제위기가 겹쳐 1917년 직후에는 전 세계 곳곳에서 혁명이 발생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안이다.

오늘날 급진화하는 많은 사람들이 남한 국가권력과 당에 비관해서 자율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권력은 타락하기 마련이지’라는 종교적인 투의 메시지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있었나?’라는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분석과 그것을 변혁하려는 태도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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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교원 평가를 지지해야 하는가

독자편지 | 백승민

<다함께> 제56호에 실린 “교원평가제 논쟁” 기사는 전교조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학생들의 독립적인 교사 평가는 시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내 경험에 비춰 보더라도, “학생들은 교육부와 학교 당국에 대한 불만도 높지만 체벌과 폭언, 성추행을 일삼는 소수의 교사들에 대한 불만도 높다.” 그리고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은 누구보다도 자신들이 원하는 학교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 교사의 자질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친구의 공책을 찢으면서까지 1등급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원할 것인가? 씁쓸하게도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대학가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의 수업을 원하게 될 것이다.

평가의 주체 여부를 떠나, 교원평가제가 도입되면 교사들은 좋은 자료를 서로 공유하지 않을 것이고, 서로의 눈치를 보고 서로 경계하게 될 것이다. 요즘 고등학생의 ‘공책 안 보여주기’, ‘시험범위ㆍ내용 안 가르쳐주기’ 같은 무시무시한 ‘유행’이 곧바로 교사들의 것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쯤 되면, “‘인성교육’은 언제, 어디에서 제 구실을 다할 것인가”, “교사들의 설 자리는 어디인가”란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또, 교사-학생간 위계 질서를 말한다면 이는 교사들에게만 책임지울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경쟁을 강화하고, 학벌사회를 공고히 하려는 교육 제도 그 자체다.

교사를 평가하는 주체가 학생이더라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는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학생만큼이나 상대적 약자인 교사들도 방어해야 한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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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생각

독자

<다함께> 55호에 실린 내 글 중 “하울 폰트의 잘못된 연금 ‘개혁’ 정책과 최저 임금 현상 유지, 연금수령자에 대한 과세가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는 교정상의 실수인 것 같다. 나는, 하울 폰트가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중앙 정부의 잘못된 연금 정책 등을 지적했다고 썼지, 하울 폰트가 신자유주의 개혁 추진의 당사자라고 쓰지 않았다.
이정구

교사들이 학생들의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현행 입시제도 하에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평가를 한다는 것은 경쟁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다. 이것은 교사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이근혜

유럽헌법에 관한 기사가 좋았다. 이번에 프랑스에서 부결됐는데 다음 호 신문에 분석기사가 실렸으면 좋겠다.
김태훈

이번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는 열우당에 대한 실망의 반사이익이라는 점에서는 타당한데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현 국면에서 자신감이 있다는 문구는 적절한가?
최영준

<다함께> 56호에 실린 “교원평가제 논쟁”이라는 기사의 제목은 얼핏 중립적, 혹은 객관적 입장을 취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분명 마지막에 아쉬운 점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내용은 정부의 교원평가제에 대한 반대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제목이 좋지 않았을까?
최영준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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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단속을 중단하라

김지태 / 라주, 전현정

동대문
 
6월 2일 창신동과 동대문 일대에서 민주노동당 종로지역위원회 주최로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반대/ 아노아르 위원장 석방’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민주노동당 종로위원회, 성균관대 학생위원회, 이주노동자노조, 서울의류업노조, 이주노동자방송국, ‘다함께’ 종로지회 등에서 19명이 참가했다. 이 캠페인 때 이주노동자들 6명이 참가했는데 이들은 캠페인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우리는 약식 집회로 시작해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창신동 일대를 행진했다. 그렇게 행진하다 때론 지하철역 앞이나 주요 거점에서 멈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리플릿을 나눠 주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지역 주민들의 호응이 좋아 우리 모두 신이 나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다가와 리플릿을 받아갔고, 어떤 사람은 구호를 따라 외치기도 했다.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는 1만 원의 지지금을 건네 주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정부의 단속추방에 분개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리 집회 때 이주노조 사무국장은 “민주노동당에서 이렇게 나서서 너무 좋다.”고 했다. 서울의류업노조에서 참가한 노동자는 “리플릿을 보고 창신동 일대에서만 3일 동안 50명이 넘게 잡혀간 것을 알고 그 동안 무관심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같은 노동자로서 앞으로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최근 동대문 지역에서 단속이 심해졌지만 민주노동당이 앞장서서 캠페인을 벌였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도 안심하고 캠페인에 참가할 수 있었다.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은 이 날 큰 힘을 얻었다. 캠페인 이후 이주노동자 세 명이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

김지태 / 라주

성수동
 
지난 5월 26일 아노와르 위원장이 연행됐던 성수동에서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과 불법 단속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했다.

이 날 민주노동당 성동지역위원회와 성동건강복지센터, ‘다함께’ 성동광진지회 활동가들이 이주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참가했다. 

성수동은 영세 사업장 밀집 지역이다. 출입국관리소 단속반들은 대낮에 버젓이 차를 세워두고, 밥 먹으러 가는 이주노동자들까지 무자비하게 연행해 가는 불법단속을 자행하고 있다. 

이번 선전전은 아노와르 위원장 연행 이후, 지역에서 벌이는 첫 선전전이라는 데 의미가 있었다. 선전물을 받는 지역 주민들의 반응도 매우 우호적이었다. 

전현정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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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인정하라

이정원

6월 5일 노동부는 ‘서울ㆍ경기ㆍ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끝내 반려했다. 이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는 지난 5월 14일 이주노동자노조 위원장 아노아르 동지를 납치하듯이 체포해 현재 추방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

법무부와 노동부는 이주노동자 노조 조합원들 대부분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 3권을 보장해 줄 필요가 없고, 노조 설립 자격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변은 “대법원도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 또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이 일하지 않는 3D 업종에서 묵묵히 일하며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사람들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부가 이들을 ‘불법’으로 낙인찍어 노동자의 기본 권리인 노조 결성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정말 위선의 극치다.

사실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정부가 ‘불법’, ‘합법’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지난해 이주노동자들이 벌인 영웅적인 투쟁의 소중한 성과이다. 강제 추방 위기에 놓인 아노아르 동지와 이주노동자 노조를 방어하는 운동은 우리 운동의 성과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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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노무현 정부

박종호

노무현 정부가 ‘오일 게이트’에 이어 또다시 의혹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노무현은 임기 첫해부터 이른바 ‘S-프로젝트’라는 서남해안 개발사업을 추진해 왔다.

노무현은 이 일을 최측근인 청와대 인사수석 정찬용에게 맡겼다. 정찬용은 행담도개발 사장 김재복을 소개받았고, 김재복은 지난해 여름부터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문정인과 만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에는 한국도로공사가 김재복이 대주주인 투자회사가 2009년부터 발행할 주식을 1억5백만 달러에 미리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초에는 김재복이 발행한 채권 8천3백만 달러를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와 한국교원공제회가 전량 매입해 줬다.

청와대 대변인 김만수는 “[노 대통령은] 아이디어 구상을 해보라는 취지였는데 개발사업을 추진하라는 지시로 받아들였다면 너무 나간 것”이라며 깃털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정찬용과 문정인 등은 행담도 개발을 줄곧 ‘S-프로젝트’의 선도사업으로 여겼다. ‘S-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기울여 온 노무현이 이 사업에 대해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자중지란

위기에 직면한 노무현과 열우당이 자중지란에 빠져들고 있다.

사실상 영세 자영업자들을 강제 퇴출하는 ‘영세 자영업자 대책’은 반발이 확산돼 불과 며칠 만에 없던 일로 돌려야만 했다.

노무현은 5월 말에는 대선자금 ‘차떼기’에 관여한 이회창 측근 변호사 서정우와 한나라당 전 사무총장 김영일을 가석방했다.

대중의 의혹과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되자 배신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느라 진흙탕 개싸움에 정신이 없다.

‘안개모’ 소속 안영근이 “최근 위기의 근본은 청와대에 있다”며 노무현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청와대는 “당에서 잘해야 한다. … 당이 먼저 쇄신해”야 한다고 되받았다.

국무총리 이해찬이 “이른바 [대통령] 측근이나 사조직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노무현의 측근인 염동연은 “총리가 경거망동하고,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고 받아쳤다.

중도 성향의 장하성 교수조차 “노 대통령이 지지기반이었던 중산층을 사회적 주류화해 개혁을 이끄는 대신 기존의 힘 있는 세력에 의존해 문제를 풀어가려 하는 바람에 기득권도 변화 못 시키고 지지기반도 유지 못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박근혜조차 이렇게 비아냥댈 지경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집권세력에 대해 진짜 진보세력이 화를 낼 정도[다.]”

열우당 대변인 전병헌은 6월 3일 당ㆍ정ㆍ청 워크숍을 마치고 ‘갈등 종결’을 선언했다. 그러나 다음 날 열우당 내부에서 ‘대통령 책임론’이 본격 제기되면서 진흙탕 개싸움은 더욱 가관이 되고 있다. 일부에선 임기 중반에 벌써 ‘조기 레임덕’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의 배신과 실정으로 반사이익을 챙겨 온 한나라당 사무총장 김무성은 “지난해 총선 이후 1년간의 여당 지지율 변동을 분석한 결과,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준다”며, “열린우리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열우당 의장 문희상은 “참여정부가 성공을 못 이루면 우리 모두 개털이 된다.”며 위기감을 털어놨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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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수 의원은 무죄다

6월 하순에 조승수 의원에 대한 대법원 선고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그와 동시에, 조승수 의원 지키기 운동도 계속 고조되고 있다.

5월 말 현재 울산 주민 1만여 명이 ‘조승수 의원 지키기’ 탄원서에 서명했다.

또, 불교인 1만 4천여 명도 서명에 동참했다. 8개 불교 관련 단체들이 조승수 의원을 지키기 위해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 불자 지킴이 모임’을 결성했다.

정계, 학계, 종교계, 노동계, 농민, 여성, 시민사회단체, 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조승수 의원 무죄 서명이 잇따르고 있다.

조승수 의원은 “민주노동당의 후보로서 부끄럽지 않은 판단과 실천이었으며 다시 똑같은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행여 대법원이 조승수 의원을 유죄 선고하려 한다면, 그것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자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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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용ㆍ이상범 구청장의 공무원 파업 지지는 정당했다

김문성

정부는 민주노동당 소속 이갑용 울산 동구청장과 이상범 북구청장이 지난해 공무원노조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징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보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애초 행정자치부는 울산시장이 두 구청장을 고발하도록 압박했다. 울산시에 대한 40억 원 교부세와 테크노파크 건립 사업 125억 원 지원을 무기로 삼았다.

지난 3월에는 동구청과 북구청이 파업 참가자들을 승진시키자 승진을 직권 취소하겠다고 협박했다.

선관위도 보복에 가세했다. 선관위는 지난 1월에 이갑용 구청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조사했다. 최종적으로는 무혐의 결론이 났다.

지금 두 구청장은 직무유기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면 직위는 유지되지만, 결재권이 박탈된다. 구청장 직무가 정지되는 것이다.

당과 민주노총과 공무원노조는 공동 기자회견과 공동 대응을 계획하고 있다.

또, 두 구청장은 지난 1월 단체장의 자율적 징계 결정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그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

두 구청장 지키기 투쟁은 의회와 자치단체 등 공직에 진출한 민주노동당 정치인들이 진보 개혁을 쉼없이 추진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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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투자 차익

김인식

일부 당원들은 아직도 최순영 의원 투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파가 파놓은 함정에 일부 당원들이 걸려 넘어진 꼴이다.

지난 4월에 최초로 의혹을 제기했던 <조선일보>는 불법과 편법을 구분하지 않고 교묘하게 섞어 사용해 최순영 의원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히려 했다.

그 뒤 <조선일보> 기자조차 투기가 아니라고 꼬리를 내렸는데도, 일부 당원들이 여전히 그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어안이벙벙하다.

그런데 한 당원이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민주노동당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상적인 투자 차익을 문제 삼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돈이 돈을 낳는 자본 축적 수준이라면 곤란하다. 금융 투기꾼 조지 소로스가 당의 지도부가 될 수는 없잖은가.

그러나,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 온전히 비자본주의적으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회주의자조차 자본주의의 압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령, 엥겔스는 주가가 인상되자 그 돈으로 마르크스의 생계를 도왔다(엥겔스는 아버지의 강권 때문에 공장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늘 괴로워했지만 말이다).

엥겔스는 주가 상승 차익 수령을 거부해야 했을까? 또, 마르크스는 그 돈을 받지 말았어야 했을까?

따라서 최순영 의원의 투자 차익을 도덕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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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자유주의야말로 정치적 분열선”

인터뷰ㆍ정리 김인식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 장석준 상임연구원이 당내 주요 쟁점들을 말한다

기자 당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당직공직겸직 금지 조항을 풀자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 되면 원외 지도부가 의원단을 통제한다는 합리적 핵심이 사라질 텐데요.

장석준 이번에 제출된 진보정치연구소 보고서는 저도 함께 작성한 것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전체 틀을 유지하면서 의원단 참여를 조금 늘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금지 조항을 없애되 중앙위원회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입장은 전자였어요. 의원단과 최고위원회가 의사소통이 잘 안 돼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의원단의 목소리가 강화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직과 공직 분리 틀을 기본으로 유지하는 것이죠. 당 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일반 최고위원, 여성 최고위원 등 전체 구도에서는 여전히 원외를 중심으로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이죠. 당 대표를 절충하자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라고 봐요.

기자 <말> 5월호에 2004년 총선 이후 1년 당 활동을 평가하는 글을 썼는데요. 당 일각에서는 최고위원회의 구성을 들어 당의 우경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데요.

장석준 그야말로 주관적인 평가죠. 총선이 끝나고 나서 민주노동당이 의회 진출을 하자 당원들이 의회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이나 경계 의식을 가지고 그 동안 관심 없었던 당직공직 분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비슷한 시기에 지도부를 선출했어요. 따라서 그것이 우경화를 반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기자 일부 당원들은 당이 민주노총에 의지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장석준 민주노총의 기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만 갖고 평가하기는 힘들죠. 서로 다른 내용이 섞여 있잖아요. 가령, 민주노총이 노동자 계급 내 고용불안층이나 저소득층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 정당이 아니라 개혁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그것은 구체적으로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지난 4월에 당 의원들이 중소기업 살리기 차원에서 중소기업인들을 만났습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횡포를 노동자에게 전가합니다. 당 의원들의 중소기업인 만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석준 앞으로 발전 방향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 자본가 전체가 신자유주의 블록으로 통합돼 있고, 신자유주의에서 헤게모니 세력은 독점 재벌이나 해외 금융 자본이고 나머지는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든 깨는 것, 특히 중소자본과 신자유주의의 핵심 부분을 갈라놓을 필요가 있죠.

룰라가 2002년 대선 때 그랬던 것처럼 중소 자본가와 노동자의 블록을 형성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자본가 블록을 이완시키는 전술은 분명히 필요하죠. 물론, 중소 자본가와의 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죠. 아직은 그렇게 걱정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기자 비정규직의 많은 부분이 중소기업에 있는데, 당이 한편에서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다른 한편에서는 중소기업 육성을 말한다면 실천에서 긴장을 빚을 것 같은데요.

장석준 중소기업 살리기 전술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중소기업 자본가의 동의를 얻기 위한 전술인지, 아니면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하나를 대중에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차이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죠.

다시 말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문제가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 전체의 이해를 갖고 같이 싸워 나갈 때만 자신들의 처지가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죠.

기자 최근에 당은 무상의료ㆍ무상교육ㆍ부유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이 반신자유주의 투쟁 강화 쪽으로 무게중심을 두게 되면, 언론이 시장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공격할 수도 있을 텐데요.

장석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 한다고 해서 시장을 부정하는 게 아니죠. WTO에 반대한다고 해서 국제무역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국제무역의 독점세력의 패권 유지를 반대하는 것이죠.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갈라쳐야 할 지점은 1920∼1930년대처럼 개혁주의 대 혁명주의의 대립이 아니라 사회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를 사실상 받아들이는 중도 좌파 대 사회민주주의 왼쪽에 있는 모든 세력의 대립입니다.

가령, 라폰테인 같은 사람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케인스주의적인 혼합 경제를 주장했다가 내각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갈라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민주노동당 상황도 그렇다고 봐요.

기자 말이 나온 김에, 지금 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왼쪽에서 새로운 정당들이 실험하고 있고, 인상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유럽 정치의 변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장석준 지금 상황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국면이고, 그 동안의 정치적 분열선은 신자유주의의 첨예한 공격과 그에 대항하는 노동자ㆍ민중의 반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어요.

왜냐면, 그 동안 사회민주주의 왼쪽의 커다란 급진 좌파 세력은 공산당들이었는데, 이 정당들은 스탈린주의의 잔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상당수 대중은 사회민주주의 지도부가 사실은 사회민주주의를 버렸는데도 여전히 사회민주주의 지도부를 따르는 정치 구도였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급격하게 새로운 정치적 분열선이 형성되고 있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봐요. 사회민주주의가 차지했던 공간에서 사회자유주의적 부분과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부분이 갈라지고,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부분과 그보다 왼쪽에 있는 부분이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대중이 그 쪽으로 옮아가는 이행기의 초기 단계라고 봐요.

물론,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르펜 같은 나찌가 이득을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기자 당 내에서 민족주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데요. 종종 우파 민족주의와 저항하는 민족주의를 구별하지 않은 채 싸잡아 비난하는 당원들도 있구요. 물론, 민족주의가 근본에서 부르주아 국민 국가를 수립하려는 것이지만,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를 전술적으로 지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장석준 20세기에 식민지 민족해방을 이끌었던 좌파 민족주의 이념은 역사적 시효가 다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마오, 호치민, 게바라, 주체사상 등은 21세기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21세기에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주의가 전혀 필요 없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 정서나 그 운동은, 제가 보기에, 20세기 반제 민족주의 전통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문제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죠. 지금 한국이 전체 제국주의 사슬에 묶여 있기는 하지만 그 상황이 20세기와 같은 상황은 아니죠. 미일 동맹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하나의 독자적인 국가입니다.

가령, 일본에 대한 최근의 비판과 분노의 경우에도 그것이 미일 동맹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서 비롯한 반제국주의인지 아니면 단순히 한국 대 일본의 구도에서 나오는 즉자적인 민족주의인지를 제대로 봐야 합니다. 전자는 우리가 발전시킬 의의가 있겠지만, 후자는 국수주의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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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제에 대한 정부 속셈이 드러나다

강동훈

교원평가제에 대한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자 정부가 물러서기 시작했다.

전교조의 투쟁을 하루 앞둔 5월 27일, 교육부총리 김진표는 ‘교원평가 시범운영, 이렇게 하고자 합니다’란 서한을 보내 “평가는 주로 같은 학교 소속의 교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학부모와 학생들에 의한 평가는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교사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지만, 기만적인 술책이라는 게 분명히 보이는 꼼수였다.

이런 방안은 사실상 현재의 근무평가제에 교사들의 상호 평가를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 결국 학생과 학부모 평가는 겉포장이었을 뿐이고, 교사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겨 교사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 정부의 진정한 의도였음을 밝히 드러내고 말았다.

김진표의 편지에 학부모 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진 한편, 전교조 교사 5천여 명이 한양대에서 정부의 교원평가제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자, 결국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교원평가제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교사ㆍ학부모 단체들이 참여해 교원평가제에 대해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평가제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면 복수안 형태로 매뉴얼을 제공하고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6월 25일로 예정된 교사들의 대규모 투쟁을 막기 위해 ‘양보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교원평가제를 9월에 시범 실시하고 내년 2월에 전면 실시하는 방침을 전혀 바꾸고 있지 않다. 이런 상태라면 교원 단체들이 밝힌 것처럼 “의견조율은 통과의례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정부의 교원평가제 시범 실시 강행에 맞선 전교조의 투쟁은 정당하다.

물론 이런 투쟁에서 전교조는 교총 등과는 다른 진보적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근무평가제도를 유지하려는 교총과는 달리 학생들의 평가를 보장하는 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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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생들의 평가가 필요한가?

강동훈

교육의 3주체는 학생ㆍ학부모ㆍ교사라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생은 평가와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근본으로 변화된 사회에서 교육의 진정한 주체는 학생이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자치 기구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될 것이고, 학생들의 사회 참여는 적극 고무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사회 참여에서 느끼는 바에 따라 학교 수업과 운영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교사들은 “나이든 조력자”의 구실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행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학생들을 시험제도를 통해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학생들이 협력적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들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교사들과 동등한 주체로 학교 운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교사 평가가 필수적이다.

학생 체벌, 두발 단속 등의 비인격적 대우를 없애고 촌지를 받는 등의 ‘부적격 교사’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들이 더 나은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서, 학생들의 교사 평가는 꼭 필요하다.

학생들의 평가가 오히려 현재의 입시 경쟁 교육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물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입시 교육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입시 경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은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다른 대안에 대해 깊게 생각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입시 경쟁에 참가해야만 한다.

학생들이 학교 운영, 수업 구성에서 주체로 참여하게 될 때, 진보적이고 협력적 대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기회를 더욱 많이 얻을 것이다.

최근 학생들이 입시 교육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것은 학생들의 정서를 보여줬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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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활에 대해 - 올 여름, 도시에서 노동자 투쟁과 함께하자

이정원

한총련을 비롯한 여러 학생 활동가들이 여름 농활 조직에 본격 착수하고 있다.

농활 준비가 한창인 지금, 다시금 정부와 노동자들 사이에 중요한 전투가 시작되고 있다. 6월 16일 청주에서는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현재 금속 노동자들의 서울 상경 투쟁과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개악안 저지를 위한 6월 29일 ‘총파업’ 일정이 잡혀 있다.

올 여름 비정규직 투쟁은 전체 계급 세력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금 우리 운동 전체는 여기에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또 이 시기에는 노무현의 아킬레스건인 이라크 파병 항의 운동 일정이 있다. 6월 26일 ‘김선일 씨 추모 1주기 반전 행동’이 계획돼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투쟁의 든든한 지원 부대인 학생 활동가들이 농활 조직에 큰 힘을 쏟기보다는 도시에서의 노동자 투쟁에 연대를 건설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물론 지난 2000년 롯데ㆍ사보 투쟁 때처럼 서울에서 중요한 노동자 투쟁이 벌어질 때 농활을 가지 않고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거나 또는 지난해처럼 농활대의 일부가 상경해 반전 투쟁에 참가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농활은 정해진 기간에 농촌으로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9박 10일의 농활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농활을 떠나기 전에도 당면 정세에서 중요한 투쟁에 역량을 집중하기보다는 분산시키는 효과를 낸다.

따라서 농활을 굳어진 학생 운동의 ‘전통’처럼 고수하기보다는 당시 정세에 비추어 집중할 곳에 힘을 집중시키는 전술적 유연함이 필요하다.

한편, 학생 좌파들이 해마다 같은 시기에 농활을 조직하는 것은  그들의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한총련을 비롯한 민족주의 좌파 활동가들은 농민을 “이남 사회를 바꿔내는 하나의 주체로 노동자, 청년 학생과 어깨 걸고 투쟁하는 동지”이자 “주력군”으로 보기 때문에 농민 - 학생 연대를 매우 중시한다. 

그러나 산업화가 매우 많이 진전된 한국에서 농민들을 노동 계급과 동등한 사회 변혁의 주체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한국의 총 취업 인구 중 농림어업 종사자 수는 1965년 58.5 퍼센트에서 2003년에는 8.8 퍼센트까지 줄었다.

농민 수의 감소와 함께 농민 내부 계급 분화도 가속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농민의 정치적 중요성을 감소시켜 왔다. 여전히 농민 대중이 국가로부터 착취와 억압을 받고 있다 해도 말이다.

사회 변혁가들은 신자유주의 정부 정책과 WTO에 맞선 농민들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근본적 사회 변혁의 잠재력이 노동자 계급에게 있다는 점을 확고히 해야 한다.

농활의 또 다른 문제점은 농민들과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근로를 통한 민중성 체득’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학생과 민중을 구분짓고 학생을 모종의 억압받지 않는 지식인으로 여기는 것에서 출발하는 엘리트주의적 개념이다.

물론 이들은 학생들이 민중에게 가르치려고만 하는 엘리트주의적 ‘민중성’ 개념을 경계한다. 그러다 보니 정반대 편향, 즉 민중의 현실을 ‘몸으로 배우고자 하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연대는 봉사 활동이나 역으로 민중 현실 체험 같은 것이 아니다. 연대는 무엇보다 투쟁에 기반한 ‘정치적 연대’여야 한다.

올 여름 가급적 많은 학생 활동가들이 서울에 남아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는 운동을 건설하자. 불가피하게 농활을 떠나는 학생들도 6월 말 정부가 비정규직 개악안 처리를 강행하거나 민주노총의 파업이 벌어진다면 모두 서울로 상경해 노동자 투쟁에 적극 연대하자.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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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북한 경제는 위기였는가?

김하영

[편집자 주] <다함께> 김하영 기자가 <다함께> 지난 호에 실린 한규한 기자의 해방 60년 연재 기사에 대한 반론을 보내왔다. 김하영 기자는 북한 경제가 영구적 위기를 겪어 온 것이 아니라며, 북한 체제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한 때(특히 1950~1960년대) 높은 성장을 구가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함께> 지난 호에서 한규한 동지는 1950년대 북한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글의 세부적인 사실들을 다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큰 그림에서 1950년대 북한 경제가 잘 나가는 추세였는지, 위기였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하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950∼60년대 북한은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던 부흥기였다.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진행된 3개년 계획은 연평균 41.7퍼센트라는 엄청난 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거의 세계 신기록 수준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10년 동안 북한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5퍼센트를 유지했다.

한국전쟁 후 미국이 “앞으로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고 호언했던 바로 그 곳에서 이뤄진 이러한 성장은 놀라운 것이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대부분의 산업 시설이 파괴됐고, 민간인 40∼48만 명을 포함해 1백만 명이 죽었다.

좁은 땅덩이에 자원도 부족한 나라가 원조도 거의 받을 수 없는 조건에서 급속한 성장을 밀어붙인다는 것이 엄청난 모순을 자아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북한 경제는 추세적으로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한규한 동지의 글이 자칫 ‘북한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영구적 위기를 겪어온 사회’라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 사회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속적인 정체의 늪에 빠져 있는 사회라는 인상은 북한에 대한 대표적이고 지배적인 오해이고, 흔히 남한이 북한보다 우월한 체제라는 생각과 연결돼 있다.

하지만 오늘날 북한이 겪고 있는 기근 때문에 사람들이 잠시 잊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1970년대까지도 남한이 북한 경제를 결코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1982년 북한의 평균 음식섭취량은 남한보다 높았다.

오늘날 북한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지만, 북한이 1970년대까지 거대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점을 동시에 봐야 한다.

이런 모순적 발전을 보지 않는다면, 북한은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체제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북한 경제는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비효율성을 드러내기는커녕, 세계경제의 국가자본주의 경향과 성쇠를 함께했다. 1950년대 세계 경제는 여전히 국가자본주의 경향이 두드러졌고, 북한은 강력한 국가 개입을 통해 경제 성공담을 쏟아내던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다.

1970년대에 세계자본주의는 국가자본주의보다 “세계화” 경향이 더 유력해졌고, 국가자본주의적 길을 고수하는 나라들은 점차 뒤처지기 시작했다. 북한의 경제 성장은 1960년대 후반부터 둔화되기 시작해 1970년대 말에는 3∼4퍼센트대까지 떨어졌다.

1956년 8월 이른바 ‘종파사건’은 한규한 씨 지적과 달리 “자본 축적의 심각한 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둘러싸고 일어났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1956년 8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 정점에 이른 경제 발전 노선의 충돌은 이미 1953∼1954년부터 시작됐고, 이 때는 북한 경제가 이제 막 첫 삽을 뜬 때였다.

김일성과 소련파ㆍ연안파의 충돌로 나타난 경제 발전 노선 대립은 북한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소련과 동유럽에서 드러난 스탈린주의 경제 모델의 한계를 징후적으로 반영했다.

1953년 스탈린이 죽자 소련 관료는 그 동안 누적돼 온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제한된 개혁을 서둘렀다. 토니 클리프의 표현을 빌자면, 소련 관료는 “원시적 축적 단계에서 성숙한 국가자본주의”로 이행할 필요를 느꼈다.

소련 경제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까지는 발전된 그들 자신의 공업에 투자를 집중시키면서, 남은 자원들을 몽땅 소련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사정이 달랐다. 새로운 공업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했다. 농민을 굶기고 노동자를 쥐어짜서라도 그렇게 해야 했다. 민중의 생활수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이 입장을 대변한 사람이 바로 김일성이었고, 스탈린 사후의 소련 관료 입장을 대변한 쪽이 소련파와 연안파였다. 김일성은 1955년에 처음으로 “주체”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소련과 서로 다름을 반영하고 있었다.

19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승리를 거둔 뒤, 소비재 부문 투자 확대 의견이 일부 반영됐던 5개년계획은 전면 백지화됐다. 중공업 우선 발전 노선은 한층 선명해졌다.

최고인민회의에서 통과된 1차 5개년계획 법령에 따르면, 공업 투자 총액에서 중공업의 비중은 83퍼센트를 차지했다!

북한 관료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게 유지하면서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됐다. 관료는 공장과 기업소마다 종업원총회나 열성자대회를 열어 5개년계획을 1년반 또는 그 이상 기한을 단축하자는 결의를 끌어냈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생산 목표(국가 계획)는 당의 증산 과제와 현장노동자의 증산 결의를 거치면서 점점 불어갔다.

북한 관료는 식민지 경험과 전쟁 경험을 딛고 경제 재건을 원하는 민중의 염원과 또한 미 제국주의와 대적하고 있다는 전쟁 공포를 잘 이용했다. 상당수 사람들은 계급 상승의 기회도 얻었다. 증산운동에서 두각을 드러낸 ‘노력영웅’들은 공장 지배인이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이 됐다.

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계급 이동의 사다리에 오르지 못했고, 경제 성장의 이면에서 끔찍한 노동조건을 견뎌야 했다.

엄격한 노동규율이 강요됐지만,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조직할 권리는 허용되지 않았다. 직업동맹은 단체계약 대신 “경쟁의무”를 체결하는 국가조직이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낮은 생활수준과 피곤한 노동으로 내모는 방식은 어느 수준 이상의 경제 발전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소비재와 휴가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

스탈린 사후 소련 관료들이 봉착했던 문제를 북한 관료들도 나중에는 결코 피해갈 수 없었다. 1966∼1967년에 박금철과 이효순 등은 외연적 성장 모델의 문제를 지적하며, 경제 성장의 속도를 조절하고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는 7개년계획이 제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3년 연장이라는 궁여지책을 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이들은 생산량만이 아니라 질에도 관심을 기울어야 하고, 이를 위해 국방비를 줄여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1956년에 이어 다시 한번 북한 관료 내에 숙청 바람이 불었다. 1956년의 숙청 파동과 달리 이것은 위기 대처 방법을 둘러싼 관료 내 충돌로, 스탈린보다 더 스탈린다운 김일성식 경제 모델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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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정기 공개 판매가 왜 중요한가

신정환

<다함께>는 다양한 방법으로 판매된다. 이 가운데 거리와 대학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공개 판매는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다함께>와 같은 급진 좌파 신문을 거리나 대학에서 공공연하게 판매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급진 좌파 신문의 공공연한 판매는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사장들이 말하는 가치에 반대하는 대안적 목소리가 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시위 효과를 낸다.

또한 기성 언론이 말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어려운 말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회적 쟁점의 진실을 부각시키는 역할도 한다.

둘째, 급진화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다함께> 공개 판매대에는 정기적으로 신문을 구입하러 오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또 판매대에서 신문을 구입하다가 지금은 신문을 판매하는 회원이 된 경우도 여럿 있다. 공개 판매는 급진화하는 새로운 청중들을 만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셋째, 공개 판매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동료들과 협력하면서 집중적으로 움직이는 조직 활동의 기본을 배운다. 공개 판매에 참가할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판매대, 신문, 팸플릿, 서명용지, 모금함, 대자보, 팻말, 거스름돈 등을 준비하기 위해 각자 역할을 분담한다. 역할을 맡은 모든 사람이 책임을 방기하지 않아야만 공개 판매가 원활히 진행된다.

넷째, 신문 판매 과정이 매우 외향적이고 민주적인 과정임을 배운다. 항상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아닌 낯선 사람들에게 신문을 판매하려면 좀더 개방적인 토론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신문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을 듣고 토론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기 공개 판매를 위해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요일과 시간, 장소 등을 고정하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공개 판매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정치적 신뢰를 줄 수 있다. 2주마다 한 번씩 공개 판매대를 일부러 찾아오는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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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자료를 기증해 주십시오

안경주

잘 만들어진 영상은 특정 주제를 매우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70일이 넘는 파업 투쟁을 다룬 영상은 기성 언론들이 파업 노동자들을 폭력배와 파렴치범으로 매도한 것에 대한 효과적인 반박이었다. 이 영상을 좀더 많이 보급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또, 최근 ‘외국자본, 한국경제의 구원투수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한 지역사회포럼에서는 ‘브릿지 증권’에 들어온 투기 자본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만들어 버리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상영한 후 토론을 진행했고, 그 덕분에 토론이 매우 풍성해졌다.

좋은 영상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자신감을 준다. 따라서 ‘다함께’는 이러한 영상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소개하려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영상을 ‘다함께’가 제작하거나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상 제작이나 구입에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분의 기여가 필요하다. 다양한 영상을 갖고 있는 여러분의 기증과 대여가 필요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좋은 영상을 갖고 있다면 연락을 주시라. 어떠한 주제의 영상이라도 좋다. TV에서 방영된 좋은 프로그램을 녹화한 것도 환영한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찍은 영상도 환영한다.

* 영상을 기증하거나 빌려 주실 분들은 02-2271-2395으로 전화 주거나 atgmail@nate.com으로 메일을 보내 주기 바란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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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비는 정치적 지지의 출발이다

김세원

서울지하철노조의 한 노동자는 지난해 8월 ‘전쟁과 변혁의 시대’에서 ‘다함께’에 가입했다. 그러나 가입 후 여러 이유로 ‘다함께’ 활동에 거의 참가하지 못했고 회비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5월 말 ‘다함께’ 계좌로 그의 이름이 찍힌 돈이 입금됐다. 며칠 뒤 무척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됐다. 이 지하철 노동자는 고려대 학생들의 이건희 박사학위 수여 항의 시위가 다소간 실의에 빠져 지내던 자신 같은 노동자들을 고무하고 자신감을 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시위를 ‘다함께’ 고려대 모임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자신의 거래 은행으로 달려가 매월 일정 금액을 무려 10년 간 자동이체 하는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 지하철 노동자는 ‘다함께’의 활동과 정치에 대한 지지를 회비 납부라는 가장 중요한 행위로 표현한 것이다.

정말이지 돈은 정치다. 돈을 내고, 걷고, 사용하는 모든 과정이 매우 정치적인 과정이다.

여러분이 ‘다함께’의 활동과 정치를 지지한다면 서울지하철 노동자처럼 회비와 후원금을 내달라. 여러분의 지지가 ‘다함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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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대금 납부의 중요성

김은영

‘다함께’는 신문과 팸플릿 등 다양한 간행물을 발간한다. 안정적으로 신문을 발행하고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팸플릿을 발간하는 것은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에게 끊임없이 정치적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조직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돈을 받고 신문과 팸플릿을 판매한다. 만일 돈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 안 가서 신문과 팸플릿 발간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다함께’가 발간하는 모든 간행물은 판매 대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행물을 판매한 대금은 반드시 제때 통장에 입금돼야 한다. 판매 대금이 제때 들어와야만 다음 신문과 팸플릿을 발행할 수 있다.

신문이나 팸플릿을 판매한 사람들은 판매 대금을 쌓아두지 말고 즉시 납부해야 한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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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목소리 <다함께>

강영만

5월 2일 학위 수여 저지 시위로 이건희가 망신을 당하자 보수 언론들과 학교당국, 정부까지 나서서 시위 학생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폭력시위’를 비난하며 총학생회를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파 학생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때 긴급하게 제작ㆍ배포된 <다함께> 특별호는 고려대 학생들의 여론을 변화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5월 4일 하루에만 6천 부가 배포된 <다함께> 특별호를 받아 본 학생들이 ‘다함께’ 고려대 모임에 지지 이메일을 보내 주었다. 어떤 학생들은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었다”며 빵과 음료수를 사주고 가기도 했다.

<다함께> 특별호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광범한 반기업 정서를 더욱 부추겼고 이에 이건희는 자신의 ‘부덕의 소치’를 인정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 뒤에도 학교당국의 시위 학생 징계 방침은 철회되지 않았다. ‘다함께’ 고려대 모임은 징계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다함께>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했다.

학교당국은 “징계를 반드시 하겠다”라고 언급했다가 “징계 계획이 정식으로 논의된 바 없다”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다함께> 소식지는 징계 여부를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학교를 압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만 3천 부가 배포된 <다함께> 소식지는 학교당국이 추진하려는 징계가 근거가 없고 돈벌이에만 관심있는 학교당국이 학생들을 징계할 자격이 없다는 점을 선동해 많은 학생들이 징계 반대 서명 운동에 동참할 수 있게 했다.

그 밖에도 <다함께> 특별호는 민주노동당, 노동조합, 시민단체, 저명한 진보 인사들의 시위 지지 성명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다함께> 소식지는 총학생회를 탄핵하겠다는 ‘평화고대’의 위선을 폭로했다. 또한 징계 반대 연서에 동참한 대학교수 1백60여 명의 명단을 싣기도 했다. 이는 우리의 투쟁이 승리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이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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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계를 뒤흔든 열흘≫ 존 리드, 책갈피

1917년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김태훈

“혁명을 기록한 모든 책들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히는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 드디어 완역 출간됐다.

우파들은 1917년 10월 혁명이 “볼셰비키의 쿠데타였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에는 일부 좌파들, 특히 자율주의자들도 이런 가정을 공유한다. 이 책은 이런 주장들을 반박하는 데 유용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공한다.

볼셰비키가 주도한 10월의 무장 봉기는 노동자ㆍ병사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이 점은 봉기 직후, 존 리드가 인터뷰한 사회혁명당원의 고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대중이 따르고 있는 것은 볼셰비키죠. 우리에게는 추종자가 없습니다.”

볼셰비키당은 “대중 의지의 궁극적, 정치적 표현”이었다. 봉기를 결정한 과정은 인위적이지도, 그렇다고 매끄럽지도 않았다. 봉기 보름 전에 열린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관한 묘사는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지식인들 중에는 오직 레닌과 트로츠키만이 봉기를 지지했다. … 투표 결과, 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은 일단 기각됐다! 그때 한 노동자가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떨고 있었다. …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를 대표해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우리는 봉기에 찬성합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소비에트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겠다면, 우리와의 관계는 끝날 것입니다!’… 결국 무장 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이 통과됐다.”

10월 혁명은 무엇보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러시아 노동자ㆍ병사 들의 민주적 결정이었다. 혁명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논쟁을 벌이는 한 장갑차 부대 병사들에 대한 묘사는 매우 감동적이다.

“나는 이 병사들처럼 사태를 이해하고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연설을 경청했다.… 수많은 노동자ㆍ병사ㆍ수병 들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결정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마침내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결의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바로 그것이 러시아 혁명이었다.”

이 책은 1980년대에 ≪세계를 뒤흔든 10일≫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처음 출간됐다. 당시 군사 독재 정권의 검열 때문에 대폭 생략된 내용들이 이번에 완전 복원됐다. 그런데, 이 책을 두려워한 것은 남한이나 서구 지배자들만이 아니었다. 레닌이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추천”한 이 책은,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도 금서였다.

레닌이 이 책의 추천사에서 말한 것처럼 “독자들은 1917년의 사건들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책을 통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개념들은 광범한 논쟁을 불러왔다. 그러나 개념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에 앞서,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존 리드의 책은 노동자 운동의 근본적 문제인 이 개념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밝혀 주고 있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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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eo 은밀한 진실들

킨제이 보고서, 감독 빌 콘돈

1940년대 후반에 성행위에 대한 첫번째 보고서를 발표한 뒤로 킨제이는 미국 기독교 우파의 으뜸가는 적이었다.

이 영화는 알프레드 킨제이 박사가 성에 대한 매우 오랜 신화들 ―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포되는 ― 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세운 업적을 50여 년이 지난 지금 매우 명쾌하고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킨제이는 자신의 성적 무지에 충격을 받고 ― 그와 그의 부인 모두 결혼 때까지 성경험이 없었다 ― 인간의 성행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결과 - 모두 1만 8천 명을 조사했다 - 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킨제이는 전 국민의 10퍼센트가 게이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또 ‘모든 남성의 37퍼센트가 동성애 경험을 한 바 있고, 여성의 거의 50퍼센트가 혼전 성관계를 맺으며, 62퍼센트의 여성이 자위행위를 하고, 49퍼센트의 남성이 결혼 생활 중에 오럴 섹스를 한다’ 등의 결과를 발표한다.

그의 접근법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는 성정체성을 하나의 연속체로, 즉 완전히 게이이거나 이성애자인 소수의 사람들이 양쪽 극에 있지만,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 양극 사이의 어디쯤인가에 해당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는 하나의 ‘정상적인’ 성 양식이 존재한다는 생각에도 반대했다. 그는 단지 ‘평범한’ 것과 ‘흔치 않은’ 것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킨제이는 미국적 가치를 약화시키려는 공산주의적 음모와 연관됐다는 이유로 ‘비(非)미국적 행위 조사 위원회’에 불려 나간다. 국무부에 있는 동성애자들을 색출해 달라는 에드가 후버[CIA 국장]의 요구를 킨제이가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강요된 성적 무지가 초래한 개인의 고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준다. 오늘날 미국에서 십대들에게 금욕을 강요하는 캠페인의 부활은 그러한 시대로 시계를 되돌리려는 시도다. 부시는 이 캠페인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매우 감동적인 이 영화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도덕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은 진정한 성 해방을 위해 아직도 갈 길이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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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 기회의 불평등!!

승영

초등학생 시절 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집에는 싸구려 바이올린 하나 살 돈이 없었다. 어머니는 미안하다며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그 때 돈이 없으면 못 배우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나라 교과서는 자본주의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평등한 체제’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에는 2억 6천만 명의 어린이들이 가난 때문에 노예로 팔려가 14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신음하고 있다. 1억 2천1백만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체제는 이 아이들에게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

세네갈에서 에티오피아까지를 ‘뇌막염의 띠’라고 부른다. 의약품이 부족한 탓에 뇌막염이 치명적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평균 수명은 34∼40세다 . 선진국 평균보다 40년, 일본보다는 50년이 짧다. 거기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을 시간을 통째로 박탈당한 셈이다.

“고등학교 입학금조차 없는 가난한 집의 둘째 딸. 이런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 사랑하는 엄마 … 내가 없어지는 것이 돈이 덜 나가 다행일지도 몰라.” 자신의 미래에 어떤 기회도 없다고 느낀 소녀의 유서. 이것이 이 사회의 진실이라는 것이 더욱 가슴 미어지게 한다.

부자가 서울대 갈 확률은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높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천만 원짜리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아이는 두뇌에 필요한 영양도 잘 섭취하지 못하는 결식아동보다 당연히 유리하다.

만약 어떤 가난한 사람의 꿈이 음악가라면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하프 하나 있으면 대학간다”는 말이 있다. 하프가 너무 비싸 그것을 가진 사람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작곡과에 다니는 한 친구는 부자 음대생의 첼로가 활 값만 4천만 원이라고 나에게 말해 준 적이 있다.

이 체제의 우선순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있지 않다. 엄청난 군사비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전 세계 교육시장은 3조 달러지만, 기초 교육에 투자하는 돈은 연간 단 6백억 달러다. 의료시장은 4조 5천억 달러지만, 전염병 해결을 위한 연구개발비는 연간 7백30억 달러밖에 안 된다.

영국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이 빈곤 해결에 근본으로 진지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꽤 인상적인 말을 했다. “지구상의 인구 90퍼센트에 영향을 주는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가 전체 의학 연구 중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는 기회의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심화한다.

신자유주의 이념이 그대로 투영된 경제자유구역을 보자. 그 곳에는 1년 등록금 2천만 원짜리 국제학교가 들어선다. 그 곳에 생기는 병원들은 현재 국내 병원보다 10배 가까이 비쌀 것이라고 한다. 한 설문조사에서 강남의 부자들은 비싸도 그 병원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WTO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인 지적재산권은 값싼 카피의약품 생산을 가로막고 있다. 덕분에 처방전 한 장 못 받고 삶의 기회를 빼앗긴 사람이 한 해에 1천만 명이다. 1980년대에는 특허권 유효기간은 8년이었지만, WTO가 출범한 이후 이 기간이 20년으로 늘었다.

자본주의, 가난한 사람에게 좌절할 기회만 주어지는 반면 부자들은 호화로운 기회를 엿처럼 달콤하게 누리는 체제다. 자본주의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는 말을 정말이지 엿 같은 말이다.

진정 평등한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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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 보고

인천항운노조 ‘상용화 저지를 위한 투쟁위원회’ 인터뷰

정부가 노조 간부 비리를 빌미로 항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공격하고 나서자, 상용화 저지와 노조 민주화 등을 요구하는 평조합원들의 모임이 결성됐다. 6월 3일, 인천항운노조 조합원들로 구성된 ‘상용화 저지를 위한 투쟁위원회’(이하 상투위) 서완규 사무장을 인터뷰했다.

-상투위는 어떻게 건설됐는가?

비리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줬다. 조합 간부들의 엄청난 부패에 분통이 터졌다.

그런데 정부는 조합원 전체를 비리집단으로 몰더니, 상용화 카드를 꺼내 들었고  최정범 집행부는 정부의 상용화 계획을 그대로 수용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조합원들의 뜻을 전혀 대표하지 못하는 부패한 간부들이 체결한 것이다. 우리는 상투위를 결성하고, 노사협약 무효와 조합원 찬반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단 며칠만에 항만 조합원의 65퍼센트가 서명에 참여했다.

간부들은 이에 밀려 6월 9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조합원 찬반투표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우리는 지금 찬반투표를 지지하는 대의원들을 조직하고 있다. 동시에 집행부 불신임과 조합원 총회 개최를 요구하는 2차 서명도 진행중이다.

-상용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용직인 우리가 상시 고용직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해양수산부는 상용화가 최소 30~40퍼센트의 인력감축 효과를 낼 거라고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물량 변화가 심한데, 하역업체가 물량이 많을 때를 대비해서 사람을 뽑지는 않을 것 아닌가? 결국 상용화는 심각한 고용불안을 초래할 것이다. 임금도 대폭 깎일 것이다. 정년 60세도 보장해 주지 않고 있고, 보상금도 없다.

노무현이 우리를 죽이려고 작정을 했다. 노조 간부 비리가 드러나니까, 부패한 지도부를 궁지에 몰아넣고서 상용화 방안에 도장찍게 한 거다.

-상투위는 노조 민주화도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 그 동안은 노조도 아니었다. 항운노조 60년 역사 동안 평조합원이 대의원이 된 일이 거의 없었다. 이번 5월 19일 대의원 선거에서 26명의 평조합원들이 대거 당선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 평조합원들이 대의원이 되고 나서 노조 규약도 처음 봤다. 이곳에서 30년을 일한 사람도 규약이 있는지도 몰랐다.

간부들은 우리보다 임금을 30퍼센트 더 받는다. 사실 경찰이 제대로 비리수사를 하지도 않았다. 제대로 하려면 23년간 위원장을 지냈던 이강희 같은 사람도 수사해야 한다. 이 사람은 신한국당 국회의원까지 했다.

-상투위의 대안은 무엇인가?
문제는 간부들이 비리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비리 간부들을 모두 사퇴시키는 게 첫 번째 과제다. 위원장 직선제도 요구하고 있고, 철저한 회계감사 실시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우리와 입장을 같이 하는 대의원이 과반수를 조금 넘었다.

대의원대회 이후엔 곧바로 상용화를 막고 지도부를 사퇴시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는  데모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먹고 살려고, 간부 비리에 분통이 터져서 이렇게 나섰다. 요새 간부들뿐 아니라 경찰, 해양수산부 직원들까지 우리를 회유ㆍ협박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접지 않을 것이고 끝까지 싸울 것이다.

인터뷰ㆍ정리 박설

→ 관련기사 4면을 보시오


현대차노조

현대차 사측이 불법파견 특별 교섭을 계속 거부하던 중에 5월 31일 울산지검과 동부경찰서는 비정규직 노조 정용진, 황재현 조합원을 긴급체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난 5월4일, 5공장 농성자들이 투싼 라인을 순회하면서 침묵 시위를 벌이던 중 벌어진 실랑이에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였다. 검찰과 경찰은 1백20여 일의 농성 동안 온갖 폭력을 일삼은 원청 관리자들과 경비대는 단 한번도 조사하지 않았다.

교섭 거부와 이런 탄압에 맞서 지난 5월 31일 ‘불법파견 원ㆍ하청 연대회의’는 투쟁 일정을 확정했다. 연대회의를 ‘불법파견 원ㆍ하청 공동투쟁단’으로 발전시키고 6월 9일 특별교섭 거부 규탄 공동 결의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전공장 대의원회와 각 선거구 대의원들은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교육과 집회로 적극 조직하며 비정규직 노조로 집단 가입시켜야 한다고 결정했다. 7월초부터는 쟁의발생 결의와 함께 임단투와 결합한 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 훌륭한 계획들이 그대로 진행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점에서 지난 5월 22일 현대차 이상욱 위원장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것은 옳지 않다.   

<조선일보>는 비정규직 개악안을 통과시키라고 발악하고, 노동자 탄압을 부추기고, 이라크 전쟁과 파병을 선동한 보수 우익 신문이다. 더구나 인터뷰에서 이상욱 위원장이 “파업을 남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부적절했다. 이런 일은 시정돼야 한다.   

한편, 지난 5월 31일 현대차노조 정책개발연구위원회는 ‘채용 비리 재발 방지 대책과 노조 혁신’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자인 하부영 동지는 “채용시 추천인 제도는 사측의 노무관리 차원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입사자가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면 추천인에게 책임을 물어 자제시키거나 인사, 승진, 연봉에 불이익을 주며 협박용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사측은 추천인 제도를 악용해서 채용 청탁을 받고, 비리를 유도해 의혹을 부풀렸다. 공개채용으로 입사한 일반직 대졸 사원들도 국회의원들을 통해 입사하기도 했다.”

지도부는 조합원들과 울산 시민들에게 채용 비리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비리에 연루된 간부들은 중징계(조합원 박탈)해야 한다.

그래야 노조 간부 비리를 빌미로 한 공격에 맞서면서 불법 파견 철폐와 임단투를 결합한 강력한 투쟁에 나서는데 힘이 될 것이다.

정동석(현대차 정규직 조합원)


기아차 노사협의 평가

자본과 정권 그리고 보수 언론은 기아차 노조 간부 비리를 시작으로 연달아 한국노총과 현대차 노조 간부 비리를 터트리며 노동운동을 공격했다.

기아차 18대 집행부는 들어서자마자, 현장 조직력을 복원하기 위해 23개 안건을 가지고 ‘긴급노사협의’를 사측에 요구했다. 한 달여 기간동안 총 7번의 교섭을 통해 최종적으로 5월 24일 23개 안 중 21개 안에 대해 합의하며 노사협의를 마무리했다. 

노사협의에서 다룬 안건은 크게 비정규직 문제(화성공장 보성 투쟁과 사무계약직 해고자)와 현장 탄압(안전사고처리규정, 김우용 동지 해고 건, 현장 투쟁과 관련한 고소고발), 입사 관련 개선책, 기타 현장 현안이었다.

18대 집행부는 긴급노사협의 상견례부터 사측이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자 바로 아침 출투와 특근 거부로 사측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사측은 노조가 채용 비리에 대한 여론 때문에 과거처럼 강도 높게 투쟁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버텼다.

결국 핵심 안건이었던 김우용 동지 해고 건과 화성 안전사고처리규정은 합의하지 못하고 나머지 안건에 대해서만 합의했다. 현장에서는 이번 합의가 구체적인 결과물보다는 알맹이가 빠진 합의였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 ‘그 놈이 그놈이다’라는 불신과 함께 18대 집행부가 현안 문제를 바로 잡고 힘차게 노동조합의 틀을 다시 잡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아침 출투 첫 날부터 1백50여 명의 대의원과 활동가들이 집중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집행부의 전술이 특근 거부에 제한되자 노조 비리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너무 수세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18대 집행부가 현장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 - 노조 간부 비리를 빌미로 한 노동자 죽이기 - 을 넘어서지 못했다. 또한 현장 활동가와 대의원 역시 이에 대한 대비를 안 한 것은 실수이다.

노동조합의 힘은 현장의 투쟁력에서 나온다. 현장 투쟁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노동조합의 힘은 커진다. 그렇다면 조합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노동조합의 투쟁에 결합할 수 있도록 신뢰감을 주기 위한 조치들이 실행돼야 한다.

기아차에서도 이제 비정규직 노조가 건설됐다. 기아차 노조는 이제 내부의 썩은 살을 도려내면서 노조 간부 비리를 빌미로 한 탄압에 맞서 싸우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하는 임투를 준비해야 한다.

홍준희(기아차 정규직 조합원)


무상의료 무상교육 실현을 위한 2006년 예산확보쟁취 결의대회

지난 6월 1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농 공동 주최로 2천여 명이 참여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실현을 위한 2006년 예산확보쟁취 결의대회’가 열렸다.

참여자의 다수는 전국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었다. 보건의료노조의 올해 산별교섭 요구안에는 ‘단계적 무상의료 실현’이 포함돼 있다. ‘의료기관 영리법인화’에도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나날이 신자유주의가 확대되고, 사회양극화, 빈곤이 확대되는 것을 되돌려 놓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는 “병이 사람을 잡는 것이 아니라 병원비가 사람을 잡는 세상”을  비판하며 민간보험을 확대하고 병원을 주식회사화하자는 노무현 정부의 주장은 “병원을 이윤창출의 도구”로 전락시키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농 문경식 의장은 노무현 정부가 “재벌과 가진 자들만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전농은 올해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WTO 각료회담을 저지하기 위해 농민 1천여 명이 홍콩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반자본주의 운동의 저명한 인사인 조지 몬비엇의 말처럼 ‘현실적인 것은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될 것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가능하도록 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에 맞선 우리의 투쟁이 필수적이다.

유병규

입력 2005-06-08 ⓒ레프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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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매그나칩 노동자 투쟁에 연대를

이연진ㆍ전지윤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반 년을 넘어섰다.

하이닉스 매그나칩은 6개 사내하청업체 3백여 명의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착취해 왔다. 노동자들은 정규직 임금의 40퍼센트를 받으며 12시간 맞교대를 해 왔다.

지난해 10월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건설돼 저항을 시작하자 사측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직장폐쇄를 하고 대량 해고를 자행했다.

노동부는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진정하자 달랑 1개 업체만 불법 판정을 내려 사측과 한통속임을 드러냈다. 

1백28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지난 반 년 동안 온갖 탄압에 시달려 왔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2조 2천억 원의 순이익을 올린 사측은 수억 원을 들여서 용역깡패를 고용했고 그 비용 등으로 28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업무방해ㆍ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노동부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생존권 투쟁이 아니라 노동세력의 지원을 받은 깃발 투쟁”이라고 모독했고 경찰은 물대포에 쇠망치까지 휘두르며 노동자들을 짓밟았다.

이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상당했고, 4월 29일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메이데이 집회 때는 지나가던 시민들이 극악한 폭력에 항의해 경찰을 밀어낼 정도였다. 경찰은 현재 2명에게 구속영장을, 47명에게 출두요구서를 발부한 상태이다.

한국노총 소속인 하이닉스 정규직 노조는 연대를 회피할 뿐 아니라 올해 임금 협상을 회사에 위임하며 사내하청 투쟁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규직의 양보가 비정규직 투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이런 온갖 탄압에도 1백28명의 노동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지역 노동자들의 끊이지 않는 연대 덕분이었다. 지지 모금과 연대 집회가 이어져 왔다. 

지난 5월 20일 ‘중부권 노동자 결의대회’ 때는 지역의 금속ㆍ화섬 11개 노조 1천5백여 명이 파업을 벌이고 3천여 명이 집회에 참가했다.

5월 11일 부터는 3명의 사내하청 조합원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단식 20일을 넘기며 노동자들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도, 사측은 노동사무소의 면담 요구에 응하지 않고 불법파견 판결을 지연시키고 있다.

5월 25일에는 연대 투쟁을 조직해 온 민주노총 충북본부 조원기 비정규사업부장과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오병욱 지부장이 긴급체포 됐다.

곧바로 청주 서부경찰서 앞으로 달려간 노동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오병욱 지부장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석방될 수 있었다.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5월 27일 울산건설플랜트 연대 집회에 적극 참가했고, 6월 1일에는 대전의 호텔리베라 집회와 구미의 금강화섬 집회에 참가해 연대의 모범이 되고 있다.

한 노동자는 “힘을 실어 주러 갔는데 도리어 힘을 얻고 왔다”며 벅차했다.

특히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승리를 보고 “우리도 한 번 빡세게 하면 되지 않겠냐”며 의지를 다졌다.

하이닉스 노동자들의 불굴의 투쟁은 노무현 정부가 감히 ‘비정규직 보호’를 들먹일 수 없는 비정규직 탄압의 장본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 투쟁에 한발 물러서야 했던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 개악안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더욱 광폭한 탄압에 나설 수 있다. 따라서 연대가 계속 유지ㆍ확대되고 6월 말로 계획된 지역연대파업이 힘있게 벌어져야 한다.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만들어 준 발판을 딛고 비정규직 개악안 분쇄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으로 전진해야 한다.

6월 16일 2시 청주 , 하이닉스 매그나칩 투쟁 승리를 위한 전국 노동자대회

입력 2005-06-08 ⓒ레프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