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용욱 기자의 중국 현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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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욱 기자의 중국 현지 취재 ①
엄청난 모순을 잉태하고 있는 중국의 고성장
김용욱
중국은 2009년 국제적으로 최대 화두 중의 하나였다. ‘G2’라는 말은 더는 소수의 미래학 학자들이 사용하는 낯선 말이 아니라 주류 언론에서 널리 쓰는 시사용어가 됐다. 이처럼 미국발 경제 위기 뒤 중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압축 성장’에 따른 내부의 엄청난 불균등과 모순은 여전하다.
예컨대, 나는 중국에 있는 동안 중국의 주요 대도시 부동산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보도를 볼 수 있었다. 한 평에 한화로 무려 3천만 원이었다. 이 부동산을 매입한 국영 개발 회사의 사장은 지불한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인근에 연간 임대료만 1억 위안(약 1백70억원)에 이르는 초호화 주택이 등장했다. 이 주택은 아프리카 가봉에서 수입한 홍목으로 계단을 만들었고 집안에서 이동할 때 쓰려고 소형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했다.
이것은 2주 전 수백 명이 탄광 사고로 죽고, 수출공업단지에서 임금 체불에 항의하는 이농 노동자들의 절망적인 투쟁이 계속되는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경제 위기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중국이 경제 위기라고? 그렇다. 성장률은 8퍼센트를 넘겼는지 몰라도 2009년 상반기까지 일자리가 4천1백만 개나 사라졌다. 이것은 일부 경제학자들이 추산한 2008년 말 경제 위기 후 발생한 전 세계 해고자 수(약 9천만 명)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그런데, 솔직히 주변에서 이 말을 듣고 놀라는 사람은 못 봤다. 중국이 ‘고도성장기’ 한국과 비슷한 ― 어떤 면에서는 능가하는 ― 엄청난 모순을 안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들은 단편적으로라도 한두 가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바꾸기를 바라는 저항이 전국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중국 정부 인사조차 매년 10만 건이 넘는 ‘집단행동’이 발생한다고 인정했다.(정부 공식 집계 발표는 2005년에 8만 6천 건을 넘은 뒤 중단됐다!)
나는 운 좋게도 최근 중국 최대의 공업 도시 중 하나인 선전과 홍콩을 포함한 중국 남부에서 중국 노동자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경제 위기 뒤 중국 노동자 투쟁에 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계급 분열의 심화
‘차이나 레이버 불리틴’(中國勞工通訊)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중국 노동자 지원 단체다. 이 단체의 대표 한동팡은 톈안먼 항쟁 당시 철도 노동자였고 베이징에서 독립 노조 결성 운동을 주도했다. 1993년 중국 정부에 의해 추방된 뒤 홍콩에 건너와 이 단체를 만들었다. 현재 이 단체의 영어판 웹사이트 책임자인 제프리 크로살은 2009년 중국 노동자 운동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2009년은 중국 노동자(와 중국 시민들)이 좀더 적극적, 심지어는 극단적 ― 7월 통화철강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막으려고 경영자를 살해했습니다 ― 수단을 사용해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기 시작한 해로 기록될 것입니다.
“저희는 이미 2009년 초에 발행한 보고서 ― ≪중국의 노동자 운동 2007~2008≫ ― 에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예견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 사회의 계급적 분단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고 사람들이 이를 명백히 의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과 심지어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 언론에서도 ‘등록금을 낼 수 없어 기숙사에서 목을 맨 가난한 대학생’,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해 자기 몸에 불을 지른 농민공’, ‘가난한 사람을 차로 깔아 죽인 부자의 죄를 덮어 준 지방 관료’ 같은 얘기를 매일 들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단히 부적절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지방정부들은 경제 위기를 틈타 기업가들과 손을 잡고 얼마 전 통과된 노동법의 진보적 조항들을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광둥과 선전 등 대표적 수출공업단지가 위치한 지역의 지방정부들은 노동권 옹호 단체들의 사무실을 폐쇄하거나 이들 단체의 활동가들을 탄압했습니다.
“중화전국총공회(중국 국영노조, 이하 총공회)은 이런 탄압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앙정부조차 이런 움직임을 염려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중앙정부도 비난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정부는 최근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중국사회과학원이 최근 대표적 ‘집단행동’ 77건을 분석한 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시위를 조직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런 미봉책이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들의 기본적 권리를 옹호하는 근본적인 대안을 선택해야 합니다. 노동법은 무력화될 것이 아니라 존중돼야 하며 오히려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총공회가 정부와 기업 소유주의 꼭두각시 노릇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정부가 이런 움직임을 취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독립된 노동자 조직의 필요
홍콩에 근거지를 둔 ‘글로벌라이제이션 모니터’는 1999년 ‘시애틀 전투’ 뒤 탄생한 수많은 대안세계화 운동 단체 중 하나다. 이 단체는 최근 중국의 노동자 운동과 환경 파괴 반대 운동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단체의 지도자인 유아우룽은 ≪뉴레프트 리뷰≫ 를 포함해 많은 진보 잡지에 중국 노동자 운동에 대해 기고해 왔다.
유아우룽은 ‘차이나 레이버 불리틴’과는 달리 중국 사회에 ‘혼란’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중국 노동자들이 경제 위기의 고통에 조직적인 대규모 저항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계급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중국 정부가 상황을 나름대로 통제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중국 정부는 은행과 외자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었고, 엄청난 경기부양 정책을 펼 여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불황의 충격 강도를 다소 완화했습니다.
“그럼에도 농민공들의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2009년 초 정부와 언론은 그 파장을 두려워했습니다. 실제로, 계급 간 갈등이 더 첨예해지고 체불 임금과 구조조정에 항의하는 크고 작은 행동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운 좋게도, 30여년 간의 개방 뒤에도 농민공 다수는 고향에 자기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해고된 농민공에게 약간의 돈을 쥐어 주고 고향에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토지 소유권이 엄청난 사회적 긴장이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 구실을 한 것이죠.
“다른 한편, 주관적 요인도 봐야 합니다. 1990년 이전 한국 정부는 오늘날 중국 정부처럼 대단히 야만적이고 비민주적인 정부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모든 독립 단체들의 씨를 말리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가톨릭 단체가 노동자를 조직하는 활동을 펼 수 있었던 것이겠죠.
“그러나 1949년 중국 혁명은 농민에게 토지를 안겨 줬고 도시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했지만, 동시에 모든 독립적 조직을 배제한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런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우위는 지금껏 바뀌지 않았고, 그에 대한 가장 중대한 도전이었던 톈안먼 항쟁은 패배했습니다.
“따라서 중국 사회의 엄청난 모순이 경제 위기로 더 심화하고 있고 그에 맞선 산발적인 저항들이 대단히 많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들을 서로 연결시킬 조직적 역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조직적 대안이 총공회 강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총공련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늘어나면서 이에 부응하려고 몇 가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외국인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을 노조로 조직하려는 활동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진지하게 추진한 지역의 총공회 활동가들은 곧 벽에 부딪혔습니다. 총공회가 오랫동안 국가 고위 관료와 기업가들의 앞잡이 노릇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국가와 기업에서 독립된 조직을 꾸릴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중국 국가는 1997년 경제 위기로 갑작스레 몰락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부보다는 훨씬 강력합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온갖 통계 조작 역사를 볼 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 안에 갑작스럽게 상황이 변화할 가능성을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설사, 경제 위기로 인도네시아 같은 국가 기구 붕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위기가 독립적 노동자 조직을 향한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저는 중국의 활동가들이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지구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력 2010-01-14 ⓒ레프트21
김용욱 기자의 중국 현지 취재 ②
민주화 투쟁과 계급투쟁의 결합이 두려운 중국 지배자들
김용욱
이번에 중국 남부와 홍콩을 다니던 중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차이나 레이버 불리틴’ 활동가와 인터뷰를 끝내고 홍콩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청년 수십 명이 ‘삼보일배’ 시위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정확히 말해서 ‘이십육보 일배’를 하고 있었다).
삼보일배는 2005년 WTO 반대 시위 당시 한국인 참가자 1천여 명이 집단으로 선보인 뒤, 홍콩에서 급진화한 청년 활동가들의 저항 방식이 됐다. 이것은 국제적 투쟁이 서로 영감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홍콩 활동가들이 ‘삼보’를 ‘이십육보’로 바꾼 것은 다리가 아파서가 아니었다. 바로 자신들이 반대하는 중국 선전ㆍ홍콩 연결 고속철도 노선의 길이(26킬로미터)를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들 중 한 명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저는 고속철도뿐 아니라 온갖 문제에서 정부에 화가 났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 정부는 부자만 위하고 빈민을 무시합니다. 홍콩에는 빈민이 1백20만 명이나 있습니다. 홍콩은 전 세계 대도시 중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곳입니다. 심지어 인도보다 심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정부는 공공주택을 짓거나 노인 복지를 해결할 돈이 없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값비싸고 필요 없는 고속철도를 짓겠다고 말합니다. 시민들의 세금을 가지고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내쫓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속철도 건설에 반대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논리 정연했다. 이 고속철도는 세계에서 킬로미터당 건설비가 가장 비싼 노선이 될 것이다. 지금도 버스를 타고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철로를 놓기 위해 말이다. 그의 얘기인즉슨, 홍콩 정부는 대형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이 계획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
알고 보니 이 운동은 1960년대 말 반영 항쟁 이후 홍콩 역사상 가장 잘 조직되고 지속적인 운동 중 하나였다. 이들은 2009년 말 대규모 시위를 두 번 조직해 입법원을 이중삼중으로 겹겹이 포위하고 고속철도 예산 통과를 두 번이나 막았다.
입법원 의원들 ― 대다수가 대중 투표로 선출되지 않은 기업체 임원들이다 ― 은 1월 16일 여론의 반발을 무시하고 고속철도 건설을 승인했다. 성난 시위대는 관련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입법원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은 2005년 WTO 반대 시위 이후 처음으로 최루탄을 난사해 가까스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충격에 빠진 현지 언론은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수년간 작은 운동에 지속적으로 헌신한 ‘전문 시위꾼들’ ― 그중 한 명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홍콩을 경유할 때 티베트인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성화 봉송을 저지하려 했다 ― 이고, 이들의 사상이 다른 나라의 ‘반세계화’ 활동가들과 다를 바 없는 사실을 발견하고 더 큰 충격에 빠졌다.
더구나, 이들은 부자들이 입법원 의원으로 ‘간택’되는 홍콩의 비민주적 정치 체제와 고속철도 계획 같은 친부자 정책이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홍콩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의 시정을 요구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보통선거 같은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과 결합될 가능성에 경악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올해 1월 1일 보통선거 요구 시위는 예년보다 전투적이었다. 요구사항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복지 지출 확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 석방 등 다양했다. 의미심장한 것은 시위대가 중국 정부의 홍콩 연락사무소를 향해 행진한 것이다. 일부 시위대는 연락사무소 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찰 1천 명과 충돌했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자치정부라지만 자기 영토에서 그런 움직임이 나타난 것에 중국 정부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콩의 친중국 정당 지도자 중 한 명은 “시위대 전부가 그런 급진파였다면 중앙정부에서 진즉에 탱크를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긴장한 것은 당연하다. 고속철도 건설 계획이 상징하는 중국 남부와 홍콩 간 통합이 가속화하면서 한 곳의 움직임이 다른 곳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남부 수출공업단지를 중심으로 계급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홍콩의 움직임은 상당한 파장을 낳을 수 있다.
나와 대화를 나눈 홍콩의 청년 활동가는 자신의 활동이 중국 민중의 투쟁과 결합될 가능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중국 민중과 함께 우리는 정부가 원하는 중국ㆍ홍콩 통합에 도전해야 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통합이란 말입니까? 민중들의 통합입니까, 아니면 부자들의 통합입니까? 사람들은 정부가 원하는 것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중국 민중과 우리가 힘을 합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순간을 기대해 봅니다.”
입력 2010-01-28 ⓒ레프트21
대표 : 김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