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이간질을 뚫고서 전진하는 이집트 혁명

새롭게 시작된 대중적 파업 물결 때문에, 11월 말로 계획된 하원의원 선거를 통해 ‘안정과 질서’를 되찾으려는 군사최고위원회의 희망이 허물어지고 있다.

우편 노동자, 교사, 설탕 정제 노동자, 대학교 직원, 버스 운전사, 공항 직원, 의사, 수자원관개부를 비롯한 여러 부처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경제적 요구와 모든 작업장에 침투해 있던 무바라크 국가 기구의 기관들을 해체하라는 요구는 파업 물결을 일으킨 쌍두마차였다.

군사최고위원회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양보하면서 파업을 무마시키려 했고 일부는 성공했다. 마할라 알쿠브라의 거대 방적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2만2천 명의 파업 위협을 무마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럼에도 9월 말에서 10월 중엽 사이에 노동자 50만 명이 파업을 벌였다. 새로운 노동자 집단이 투쟁에 돌입했다. 교사들의 파업은 1951년 이래 일어난 최초의 전국 파업이었다. 교사 파업은 소도시와 촌락에까지 파업 물결을 전도하는 구실을 했다.

많은 이집트인들은 처음에는 군대가 혁명의 요구들 — 충분한 임금 지급, 임의 체포와 임의 재판 폐지, 무바라크 집권기 고위 관료 제거 — 를 실현해 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더는 기다리지 않으려 한다.

예컨대, 지난 6월 재정부 장관이 최저임금을 7백 이집트파운드로 인상했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많은 노동자와 노동운동가들은 최저임금을 1천2백 이집트파운드로 정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파업 교사들이 호소해 열린 한 집회 제목은 ‘이제 유예기간은 끝났다’였다.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이 성장하면서 무슬림형제단 내부의 균열이 커지고 있다. 예컨대, 교사들은 역사적으로 무슬림 형제단의 창립과 발전에서 중심축이었다(무슬림형제단의 창립자인 하산 알바나가 교사였다). 지난 10월 초 카이로의 내각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인 교사 수만 명 중 다수가 무슬림형제단 지지자였다.

19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 경선으로 치러진 의사협회 선거에서 무슬림형제단은 지난 30년 동안 유지하던 의사협회 전국위원회 독점을 상실했다. 좌파가 지지한 독립적 후보들은 특히 주 단위 의사협회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혁명의 핵심 지역인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이스마일리아에서 특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

채찍

이런 아래로부터의 점증하는 압력에 직면한 군부는, 적어도 그 일부는 당근에서 채찍으로 정책을 전환했고, 지난 10월 카이로에서 열린 콥트교도들의 집회를 공격하고 종단주의적 혐오를 조장했다. 적어도 23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결과가 발생했고, 이집트에 상당한 수가 있는 소수파 종교인 콥트교도들을 급진화시켰다. 이것은 국가의 탄압에 직면해 종단 내부의 삶으로 후퇴했던 과거로부터 변화한 것이다. 파업 물결은 이집트 전역의 작업장에서 무슬림과 콥트교도를 단결시키며 그 자체로 종단주의의 불을 지피려던 시도를 막아내는 중요한 방책(防柵)이 됐다.

군사최고위원회가 노동자들에게 큰 양보를 할 수 있는 능력은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제약을 받고 있다. 실제로 경제는 거의 확실히 축소되고 있다. 어떤 추정치를 보면 이집트 경제는 연 5~7퍼센트 성장해야 해마다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70만 명을 흡수할 수 있다고 한다.

해외 직접투자 붕괴와 자본도피도 외환보유고를 축내면서 이집트의 국제수지 악화에 일조했다. 외환보유고는 2010년 9월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 탓에 갑작스러운 경제 위기가 오면 정권이 기초 식품을 충분히 수입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장군들에게는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8퍼센트 수준이고, 이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자극한다.

군사최고위원회는 양보를 하더라도 너무 적고 공문구였던 것으로 밝혀져 오히려 사람들의 분노를 돋우는 동시에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상황에 처해 있다. 탄압은 오직 사람들을 더 급진화시키기만 할 뿐이고 혁명을 파괴할 만큼의 규모는 되지 못할 것이다. 장군들은 혁명을 파괴하려고 전면전을 벌였을 때 군대가 계급선을 따라 쪼개질까 봐 두려워 한다. 그들은 이 때문에 2월에 무바라크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혁명은 아직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