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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동아시아 영토 분쟁과 불안정:
균형외교가 평화를 보장해 줄까

댜오위다오, 난사군도 등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을 보면서, 새삼 동아시아가 얼마나 불안정한 지역인지를 실감한다.

이런 영유권 다툼은 바로 중국, 미국 제국주의 등이 벌이는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의 일부다. 그리고 이런 제국주의적 경쟁이 갈수록 격화하는 와중에, 이명박 정권이 그동안 보인 행태는 정말 우려스럽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천안함 사태, 연평도 상호 포격, 댜오위다오 분쟁 등이 벌어질 때마다 기존 동맹국들을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으로 더 강하게 묶으려 애썼다.

2006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 강행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는 결국 평택 미군기지 확장 등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일들에 적극 나섰다. 이런 전략과 세력에 의지해선 동아시아의 불안정을 해결할 수 없다. ⓒ임수현

이명박 정권은 이에 협조해 왔다. 서해에서 일련의 한미 합동군사훈련들을 실시했고, 한일 군사협정까지 체결하려 했다. 또한 미국의 동아시아 MD 체제 구축에 협조하며 MD 체제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였다.

이명박 정권은 새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고,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려는 등 군비 증강에도 열을 올렸다.

이명박 정권의 한미동맹 강화, 군비 증강이 중국 지배자들을 자극했음은 물론이다. 즉, 이명박은 ‘불난 집에 부채질’해 온 셈이다.

이에 대한 반발 속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한겨레〉는 “갈등하는 두 거인 사이에서 … 어느 때보다 입체적이고 균형있는 외교가 절실히 요청된다”고 촉구한다.

이런 주장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등장한 바 있다.

심지어 일부 보수파들도 “연미화중(聯美和中)”, 즉 변화한 정세에 맞게 미국과의 동맹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중국과도 화합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인다. ‘뼛속까지 친미’라는 새누리당이 올해 초 새로운 정강·정책에 “평화 지향적인 균형외교”를 넣기도 했다.

이는 탈냉전 이후 20여 년 동안 동아시아의 경제적·정치적 관계가 일정하게 변해 왔음을 보여 준다. 2000년대 아시아 국가들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매우 커졌고,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의 외화 획득 원천과 시장으로서 미국의 구실을 대체하고 있다.

즉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지배자들은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도, 중국을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두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나 일본 하토야마 정권의 “아시아 중시 외교”가 나왔던 것이다.

“아시아 중시”

그러나 과거 노무현 정부의 경험에서 드러나듯이, 지금의 균형외교론자들도 결국 한미동맹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친미적 자주”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균형자 구실을 말하면서도 현실에서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전략적 유연성’ 합의 등 친미 노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죽하면,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선임보좌관이었던 마이클 그린이 “한미동맹에 대한 그[노무현]의 기여는 전두환, 노태우 이상”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한국 지배자들의 처지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통상 규모로만 따질 수 없는 중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고, 달러는 여전히 기축 통화며, 미국은 전 세계 군비의 절반을 차지한다. 노무현 정부도 결국 이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이 설사 다자안보체제를 지향한다고 해도 그것이 평화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중국, 일본 등 이 지역의 열강 모두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군사력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즉, 이들도 동아시아를 불안정에 빠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이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각 국민국가의 발전 정도는 불균등하고, 자본주의의 역동적 발전 과정 자체가 이런 불균등의 분포를 수시로 바꿔 버린다. 이것이 제국주의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변하게 하고, 이들 간에 쟁투와 갈등이 일어나게 한다. 즉, 자본주의 경쟁 속에서 열강의 협력은 항구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이 때문에 균형론에는, 열강의 각축전 속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포함돼 있다. 임동원·이종석·정세현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인사들이 주축이 된 한반도평화포럼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한국의 국방비가 2배로 증가했다”며 강력한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것이 동아시아 불안정에 한국도 제대로 한몫하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이미 한국은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군비 증강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그러므로 균형외교론은 어떤 의미에서든 평화를 위한 진보의 노선이 될 수 없다. 이것은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동아시아에서 살아남아 제 몫을 챙기려는 한국 지배자들의 고민을 보여 줄 뿐이다.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과 동맹을 가깝게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고도 성장에서 이익을 얻는 ‘균형’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2008년 경제 위기로 국가들 간에 경쟁적 성격이 점차 강해지면서 모순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진보진영은 민주당 등이 주장하는 균형외교와는 다른 독립적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제국주의 열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려는 지배자들의 외교 전략에 기댈 게 아니라, 반제국주의적인 국제 연대를 건설해 진정한 평화를 쟁취해야 한다.

일본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미군 신형 군용기 ‘오스프리’ 배치에 반대해 10만여 명이 시위에 나선 것이나 홍콩에서 중국 지배 체제를 옹호한 국민교육 도입에 반대하는 12만 명의 시위대가 보여 주듯이, 점증하는 위기에 맞서 희망도 싹트고 있다.

이런 운동이 각국에서 더 크게 성장하고 국제적 연대가 구축된다면,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지배자들을 패퇴시킬 진정한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