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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과 진보정치:
노동자·민중 후보 전술에 대해

지난 9월 12일에 노동자·민중 후보 추대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첫 회의를 열었다.

현재 통합진보당의 분당으로 진보 정치 세력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고, 대선 무대에는 부르주아 후보들만이 출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선 국면에서 노동 대중의 요구와 진보적 의제가 실종돼 있다. 노동자·민중 후보 전술을 통해 이런 답답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이 연석회의의 출범 배경이다.

9월 5일 노동자·민중 후보 추대 연석회의 제안 기자회견 노동자·민중 후보 운동은 부르주아 후보들이 말하지 않는 노동계급의 요구와 진보적 의제를 선전·선동해 진보 노동 대중을 결집시키기 위한 의미 있는 노력이다. ⓒ사진 출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물론, 연석회의의 노동자·민중 후보 전술의 전망이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진보 정치 세력이 몇 가지 이유로 정치적 주변부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다섯 달을 끈 통합진보당의 위기 사태도 한몫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누가 후보가 될지도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연석회의의 노동자·민중 후보 출마시키기 시도는 의미 있는 노력이다. 연석회의가 제안서에서 밝혔듯이, “이명박 정권의 총체적 파탄이 빚은 참극”은 “야당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민중 운동 진영이 아무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대선에서 민주당이나 안철수의 선거운동을 관망하기만 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다.

연석회의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이 운동을 광범하고 넓게 일으켜야 한다. 현재 노동자·민중 후보 전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이 적잖이 존재한다. 그럴수록 연석회의를 폐쇄적이지 않고 충분히 개방적으로 건설할 필요가 있다.

이때 통합진보당을 참가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적잖은 연석회의의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우려와 불신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비민주성과 종파주의는 확실히 문제다. 그렇다고 통합진보당을 선험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분당으로 통합진보당에서 스탈린주의 색채가 더 강화되겠지만, 동시에 그 당은 노동자 기반을 갖고 있는 노동자 정당이다. 통합진보당을 배제하는 것은 (바로 얼마 전까지) 그 당을 지지한 광범한 대중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패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연석회의를 더 개방적으로, 더 광범하게 건설하는 것이다.

야권연대와 완주 문제

노동자·민중 후보 운동 내에서 후보 완주와 야권연대 여부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돼 있다.

이 문제에 관해 양 편향이 있다. 일부 개혁주의자들은 야권연대 그 자체를 불가피한 타협이 아니라 미덕으로 격상시키는 반면, 일부 좌파는 “야권연대 반대”와 “완주”를 독자 후보 운동의 절대적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야권연대 성사나 독자 후보 완주 둘 다 노동자·민중 후보 운동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노동자·민중 후보 운동의 목적은 민주당이나 안철수의 입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진보적 의제와 노동계급의 요구를 선전·선동해 진보적 대중을 결집시켜 미래의 전투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운동이 성공을 거둘수록 야권 후보 단일화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노동자·민중 후보 운동의 역설이다.

이때 후보 단일화 가능성을 봉쇄하는 “독자 후보 완주” 주장은 박근혜 패퇴를 바라는 진보적 노동 대중의 정서와 접점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박근혜가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 했을 때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이 온몸을 던져 막았다. 만일,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전태일재단을 방문한다고 해도 김 지부장이 그렇게 했을까?

민주당이나 안철수는 결코 철저하게 낼 수 없는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독자 후보 운동이 필요하지만, 그 운동은 박근혜 패퇴를 바라는 진보적 노동 대중의 정서와 소통할 수 있는 신축성이 있어야 한다 – “열린 독자 후보 전술”.

그런 점에서 연석회의가 “후보는 완주를 원칙으로 하되,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주객관적 조건을 고려하여 최종 방침은 추후에 결정”하기로 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다.

일부 좌파들은 이를 두고 “야권연대 변형판”이라고 비난하며 연석회의 참가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완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만 결정한 진보신당과는 함께하겠다고 한다. 연석회의와 진보신당 모두 완주 여부에 대해 신축성 있는 결정을 했는데도, 이중 잣대를 대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진보 정치인들과 노조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연석회의와는 함께 못하겠다는 종파적 태도다.

한편, 야권 후보 단일화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연립정부 참여로까지 이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 전자가 선진 노동 대중의 반(反)박근혜 정서와 소통하기 위한 불가피한 타협이라면, 후자는 부르주아 정당의 하위 파트너로 정부에 참여해 그들과 함께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 정치 세력의 연립정부 참여는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연석회의가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연립정부 논의를 거부”하기로 한 것은 그래서 옳다.

정치적 대비

노동자·민중 후보 운동으로 집결한 세력들의 진정한 과제는 눈 앞에 닥친 대선에만 머무를 수 없다. 더 중요한 과제는 누가 당선하든 다음 정권 하에서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고 건설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간에 커다란 위기와 모순에 봉착할 것이다. 안철수의 다음 말은 한국 지배자들의 걱정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고 내년에는 더 어려울 텐데 걱정[이다.]

격화하는 경제 위기 시기에 새누리당 정권이든 민주당 정권이든 노동계급을 공격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노동자·민중 후보 운동 진영은 노동계급의 저항을 고무하기 위한 정치적 리더십을 건설할 수 있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의 분당이 새로운 대안적 정치 구조물의 건설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진보정당들이 있는데다 새 정당 건설 시도들이 엉켜 있기 때문에 현재의 연석회의가 고스란히 “노동 중심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로 직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연석회의가 새로운 정치적 결집을 자극하는 매개물이 될 필요는 있다.

바람직하게도,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과 ‘노동포럼’ 소속의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중심이 돼 노동 중심의 새로운 진보 정당을 만들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우리는 이 시도를 지지한다. 그리 된다면, 통합진보당의 분당으로 약화된 진보 정치 세력의 영향력을 재구축할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