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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삼성 직업병 인정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받으며:
진실은 통한다는 걸 깨달은 소중한 경험

보험회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한 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회사 동료 80여 명에게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인정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받은 경험을 보내 왔다. 이 노동자는 그 자신이 삼성 직업병 피해자이기도 하다.

얼마 전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이 법원에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인정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이미 반올림을 통해 많은 반도체 노동자들이 고통 속에 지내고 있음을 접하면서 가슴이 아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지난 여름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이종란 노무사를 직접 만나 내가 삼성에서 겪었던 경험들을 나눈 적도 있다.

나는 20대 초반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검사실 공정 중 유기용제를 다루는 일을 했는데, 이로 인해 얼굴 전체가 심한 화농성 여드름으로 덮여 힘든 시기를 보냈고 지금까지도 후유증을 앓고 있어서 반도체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이 남 일 같지가 않았다.

탄원서에 서명해 준 한 회사 동료는 그 자신이 삼성 반도체 공정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이 분은 “클린룸”의 추악한 이면과 삼성이 얼마나 악독하게 반도체 노동자들을 착취했는지를 얘기하면서, 자기 주변의 지인들도 탄원서에 서명할 수 있도록 독려해 줬다.

또 다른 동료도 “정말 가슴 아프고 꼭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은 일은 무조건 다 해야 한다”며 자기가 속한 팀 동료들에게도 탄원서를 주면서 함께해 줬다.

많은 동료들이 뉴스와 신문을 통해서 반도체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인정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또, 얼마 전 구미에서 불산 유출로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어서, 불산이 반도체칩을 세척할 때 사용된다는 얘기는 탄원서를 받는 데 도움이 됐다. 내 얼굴에 생긴 흉터와 화농성 여드름 또한 삼성전자에서 근무할 때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라는 점을 얘기하자 더 많은 동료들이 지지해 줬다.

처음 동료들에게 탄원서를 내밀 때 ‘어떻게 얘기할까’,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부끄러운데…’ 하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용기 내서 내민 그 손을 동료들이 적극 잡아 줘 마음 한편에 있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게 됐다. 자신 있게 손을 내밀 수 있게 함께해 준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내가 동료들에게 서명을 호소하고 지지를 부탁하는 과정은 엄청 멋진 연설을 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사회에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진실을 얘기하면 통한다는 걸 믿었기에 탄원서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