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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계급 대중 속에 파고 들어가야 ‘사회주의 정치 전면화’도 가능하다

이 글은 '노동자대통령 학생선거투쟁본부'가 노동자연대다함께의 대선투표 관련 성명반박한 것에 대한 노동자연대학생그룹 이화여대모임의 답변이다.

‘노동자연대다함께’는 최근 “박근혜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문재인에게 투표하는 심정에 공감한다. 하지만 아무런 환상도 없어야 한다”는 18대 대선 투표 전술을 발표했다.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이, 최악(박근혜)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차악(문재인)을 찍겠다는 다수 조직 노동 대중과 소통하면서 대선 이후 그들과 함께 투쟁을 건설하기 위한 전술적 타협이다.

그런데, 이 입장에 대해 ‘노동자대통령 학생선거투쟁본부’(이하 학투본)가 “‘대중의 일반적 정서’를 넘어서지 못하는 운동으로는 백년이 지나도 사회주의 정치의 전면화는 불가능하다”는 반박글을 발표했다. 문재인에 대한 비판적 투표는 있을 수 없고 좌파는 당연히 김소연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사회주의 정치의 전면화”가 필요하다는 학투본의 지향에 공감을 보낸다. 노동자를 배신해 온 민주당과 문재인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학투본이 그토록 강조하는 “사회주의 정치의 전면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소수의 사회주의자들이 선거에 출마해 선언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노동 대중 속에서 기반을 넓히며 거대한 투쟁을 건설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노동 대중이 처음부터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적 원칙과 전략에 동의할 리는 없다. 그랬다면 혁명은 벌써 일어났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의 원칙과 전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노동 대중의 정서에 맞게 그것을 적용하기 위한 전술이 필요하다. 원칙으로는 임금 제도의 철폐를 지향하지만 전술에서는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을 지지하듯이 말이다. 투표 전술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자들은 원칙적으로 선거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대중 행동을 통한 자본주의 근본 변혁을 지향하지만, 전술적으로는 선거에 개입해 비판적 투표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 투쟁보다 부차적인 선거에서 어떻게 투표할지는 노동 대중의 정서가 주요 잣대가 돼야 한다. 물론 무차별 대중이 아니라 조직 노동자들의 정서가 중요하다. 이 나라에는 170만 명의 조직 노동자가 존재하는데, 이중 특히 70만 명에 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야말로 1987년 이후 투쟁 속에서 단련돼 온 계급의 선진 부위이다.

안타깝지만 현재 이들의 다수가 김소연 후보에게 투표하려는 상황이기 보다는, 박근혜를 막기 위해 내키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문재인에게 투표하려는 상황이다. 현재 약 2천1백 개 노조(조합원 수로는 60만 명)가 문재인 지지 입장을 밝혔다. 최근 대규모 집회를 열며 자신들의 요구를 부각시키려 한 많은 노조들도 문재인을 불러서 약속을 받아내려 했다. 반면 좌파 후보들의 지지율은 다 합쳐서 1∼2퍼센트 정도에 그치고 있다.

도식과 현실

그러나 학투본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며 문재인에게 투표하려는 것은 “계급의 후진부위와 노조 관료들”뿐이라고 말한다. 반면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어야 한다는 데 이미 공감하고 김소연 동지를 노동자대통령 후보로 추대해 대선투쟁을 전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재인 지지자 = 투쟁하지 않는 노조 관료와 계급의 후진 부위’, ‘김소연 지지자 = 투쟁하는 계급의 선진 부위’라는 도식은 현실과 맞지 않다. 적어도 수십 만 명에 달할 조직 노동자들을 ‘후진 부위’라고 내칠 수는 없다. 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에 맞서 싸우는 많은 노동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박근혜보다는 문재인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단지 노조 간부들의 강요 때문에 그러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심지어 투쟁하는 조직 노동자들의 의식조차 모순되고 불균등하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서 비롯한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도 말했듯이 ‘한 쪽에는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서 있고, 한 쪽에는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서 있는 그런 순수한 혁명은 없다.’

그리고 문재인에게 투표하려는 노동자들이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환멸감을 깨끗이 잊은 것도, 문재인에 대한 무비판적 환상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유신독재를 미화하는 자와 그것을 비판하는 자와의 차이를 생각하며 문재인 하에서 싸우기가 더 수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학투본은 이런 사실에 대한 이해도, 효과적 전술 제시도 못하고 있다. 학투본은 “문재인은 박근혜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폭로”, “대선 국면을 반자본주의 정치를 선전선동하고 조직하는 기회로 삼[는 것]” 등을 전술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모순된 의식은 단지 선거에 출마한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는 대안이 아니다’, ‘문재인과 박근혜는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노동 대중은 스스로의 경험과 행동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며, 세상도 변혁할 수 있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인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사상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문재인을 차악으로 찍겠다는 노동자들을 ‘후진부위’라고 내칠 것이 아니라 그들과 소통하고 함께 행동을 건설하려고 해야 한다. 조직 노동자 대중의 일반적 정서를 파악하고 접점을 만들면서도 대중을 한발 더 나가게 하려 해야 한다.

그러나 학투본에게는 이런 자세가 없다. 학투본은 조직 노동자 대중과 소통하며 행동을 건설하려는 우리의 시도를 “대중추수적 행보”라고 깎아내리며, “문재인에게 투표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운동을 시작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처럼, 투쟁보다 부차적인 투표에서 굳이 조직 노동자 대중의 정서와 선을 그으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어야 한다는 데 이미 공감하고” 있는 소수만이 앞장서 나가는 식으로는 정말로 “사회주의 정치의 전면화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교적 부차적인 문제인 투표 전술에서 이견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학투본에 참가하고 있는 좌파적이고 전투적인 동지들과 투쟁에서는 함께할 것이고 운동의 전진을 위해 협력할 것이다.

2012년 12월 14일

노동자연대학생그룹 이화여대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