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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을 돌아보며:
유로존 ? 위기와 함께 저항과 좌파도 성장하다

2012년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와 그에 맞선 저항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지역은 바로 유럽이었다. 유럽 경제는 전체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때때로 큰 악재들이 터지면 부랴부랴 땜질해서 한숨 돌리다가 이내 또 다른 공포가 엄습해 오는 상황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게다가 위기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으로 전염되고 그리스 등의 정부 부채는 줄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실상 유럽 경제를 지탱하는 독일 경제의 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유로존 제조업 생산이 감소 추세에 있다.

긴축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고양되면서, 반자본주의 좌파의 구실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스페인 반긴축 시위 ⓒ사진 출처 Jan Slangen (플리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위기 속에서 타개책을 둘러싼 유럽 지배자들 사이의 갈등이 점점 더 심각해졌다. 그리스에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문제를 놓고서도 합의를 하지 못해 회의가 두 차례나 연기됐다.

물론 지배자들이 다투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결국은 위기의 책임을 노동계급에 떠넘기자는 데에는 모두 의견을 같이한다.

경제 위기와 지배자들의 긴축 강요에 유럽 민중의 삶은 점점 비참해졌다. 실업률은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4명당 1명이 실업자고, 청년들은 절반이 실업자다. 유럽 인구의 거의 4분의 1이 빈곤층이다. 특히 거의 10명 중 1명은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거나 겨울철 난방을 할 수 없는 등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경제적 어려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계속 늘었다.

다른 한편, 유럽 민중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긴축에 맞서 인상적인 투쟁을 벌이며 희망도 있음을 보여 줬다. 연초부터 반긴축 시위의 압력에 밀려 루마니아 정부가 무너졌다.

사실 경제 위기가 자동으로 투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배자들의 내분, 민중이 느끼는 고통과 분노의 심화가 맞물리면서 몇몇 나라에서 강력한 운동이 성장했다.

여기에는 2011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아랍 민중의 혁명과 반란도 한몫했을 것이다. 예컨대 스페인에서는 2010년 말 노조 지도자들이 배신적 타협을 하면서 스페인 노동자 사이에 비관적 정서가 확산했다. 그러나 이집트 혁명에 영감을 받은 청년들이 2011년 5월 도심을 점거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를 배경으로 지난 3월 총파업이 일어났다. 이 분위기는 6~7월 광원 노동자 파업, 마드리드에서만 10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반긴축 시위로 이어졌고, 9월에는 다시 총파업이 일어났다.

투쟁 수준이 가장 높았던 곳은 그리스였다. 2010년 이후 평균 6~7주마다 총파업이 일어났다.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점거하고 어떤 경우에는 직접 운영을 하면서 노동자 통제의 맹아를 보여 주기도 했다. 이런 강력한 투쟁으로 2011년과 지난 2월 두 차례나 정부가 무너졌다. 6월 총선에서 가까스로 집권한 신민당 중심의 연립정부도 오래지 않아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 민중의 투쟁은 하반기에 매우 고양됐고, 11월 14일에는 유럽 23개 나라에서 국경을 가로질러 긴축에 맞선 공동총파업과 시위가 일어나면서 노동자 국제주의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경제 위기 해법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으로 정치적 양극화도 더 첨예해졌다.

양극화

오른쪽으로는 파시스트가 성장했다. 그리스에서 황금새벽당은 6월 총선에서 7퍼센트를 득표해 사상 최초로 의원을 배출했다. 프랑스에서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대선에서 사상 최다인 18퍼센트를 득표했다. 파시스트들은 서방 제국주의 지배자들이 퍼뜨린 이슬람 혐오증, 주류 우파 정당들의 우경화와 인종차별 정책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왼쪽에서도 정치적 양극화가 나타났다. 대표적 사례는 프랑스 사회당이다. 전통적 개혁주의 세력인 사회당은 17년 동안 야당으로 밀려나 있다가 반긴축 여론에 힘입어 지난 5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왼쪽으로의 급진화를 분명히 보여 준 것은 유럽 급진좌파의 성장이다. 프랑스 좌파전선의 장뤼크 멜랑숑은 긴축 반대, 최고임금제 도입 등 급진적 강령으로 대선에서 11퍼센트를 득표했다.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의 총선 득표율은 2009년 4.6퍼센트에서 지난 6월 27퍼센트로 껑충 뛰었다.

유럽 급진좌파는 그동안 주류 개혁주의 정당들의 우경화(신자유주의, 긴축 정책 시행)로 생긴 공백을 메우며 성장할 수 있었다.

급진좌파는 현재 유럽 노동계급의 반긴축 정서와 투쟁을 표현한다. 따라서 우리는 급진좌파의 성장을 환영한다. 그러나 동시에 급진좌파는 개혁주의의 일반적 한계도 공유한다. 개혁주의는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 국가 기구들을 장악해 그 안에서 조금씩 개혁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아무리 급진적이어도 노동계급의 저항이 체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제약하려 든다.

예를 들어, 시리자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긴축 정책을 맹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긴축을 강요하는 EU와의 합의를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연합 안타르시아의 존재와 적극적 활동은 그리스 운동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 안타르시아는 그동안 대학과 작업장에서 운동을 건설하고 투쟁을 더 확대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민중을 위한 디폴트’라는 급진적 대안을 제시하며 파시스트인 황금새벽당에 맞선 투쟁에서도 주도적 구실을 하고 있다.

2012년 유럽의 경험은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첫째, 위기의 영향으로 아래로부터 투쟁이 분출하고, 이 운동들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조직이 성장할 수 있다. 둘째, 위기로 말미암아 양극화가 첨예해지고 개혁주의 세력이 가장 먼저 그 수혜를 입을 수 있다. 셋째, 혁명적 좌파 조직이 존재하고 이들이 운동에 잘 개입한다면 투쟁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통탄할 일이게도 ‘유신 공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한국 민중의 눈에 유럽 노동계급의 강력한 투쟁은 어찌 보면 커다란 영감은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림의 떡’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초장부터 강경한 태도로 운동을 탄압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노동계급은 오래지 않아 반격에 나설 수 있다. 성장 논리가 어느 정도 먹혀들던 이명박 정부 초기와 달리, 지금은 박근혜마저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입에 담아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한국 노동운동은 조직과 의식이 건재하기 때문에 경제 위기의 고통을 99퍼센트에 전가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시도는 만만찮은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현재 우파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스페인에서 총파업을 비롯한 강력한 투쟁이 일어나듯 말이다.

이명박 집권 초에 있었던 극좌파들의 조직적 행동들이 이후 촛불항쟁이 일어나는 데 발판 구실을 한 것처럼, 한국의 혁명적 좌파는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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