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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평가 논쟁:
5060 세대에 밀리고 중도층을 놓쳤다?

대선 결과를 두고 몇 가지 잘못된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가장 유행하는 것은 ‘보수적인 5060 세대 결집론’인데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가 산산이 무너진 까닭을 설명하려는 시도인 듯하다. 즉, 야권이 너무 좌클릭해서 중도층을 놓치고, 보수적 ‘5060 세대’가 박근혜 쪽으로 몰리도록 방기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대개 고령화로 인구 구성에서 50대 이상의 비율이 많이 늘어난 데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 결과 50대의 투표율이 무려 90퍼센트에 육박했다는 것을 근거로 삼는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 중 62.5퍼센트가 박근혜를 찍었다.

1997년(16대), 2002년(17대) 대선에서 진보가 독자 완주해 의미있는 득표를 하고도 우파 정당을 패퇴시킨 것은 당시 벌어진 거대한 투쟁들 덕분이었다. 사진은 2002년 여중생 사망 항의 촛불 시위. ⓒ레프트21

그러나 이처럼 사회 집단을 단순히 나이별로 나눠 놓고 세대별 투표 성향을 따지는 설명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거나 기존 사회의 편견만 강화하기 십상이다.

50대의 투표율은 이미 15대 대선 때도 88.9퍼센트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노무현이 당선한 2002년에도 50대의 투표율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83.7퍼센트였다. 지금 50대고 당시 40대였던 사람들의 노무현 지지율은 이회창 지지율을 훨씬 웃돌았다.

좀 더 진지하게 50대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살펴보려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 왜 박근혜를 선택했는가 하는 문제에 이르면 하나같이 나이 들면 보수화한다는 ‘상식’을 되뇔 뿐이다.

그러나 나이에 따른 보수화가 선거에서 그토록 중요한 변수라면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유럽 나라들에서는 보수당 정부만 들어섰어야 했다. 또, 이런 논리는 “젊은이들이 더 많이 출산해야 한다는 허무한 결론에 이를 뿐”(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이명박 정부 당선 때와 달리 박근혜조차 ‘복지’나 ‘경제민주화’ 같은 구호를 내걸 정도로 진보적 의제들이 주류 정치로 많이 흡수된 점도 이번 선거 결과를 단순히 ‘유권자의 고령화와 보수화’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이런 피상적인 세대론은 ‘노인 세대를 부양하느라 청년 세대가 허리가 휜다’거나 ‘주로 정규직인 40~50대 때문에 88만 원 세대인 20~30대가 피해를 본다’ 하는 지배자들의 이간질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노인 빈곤이나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자 증세와 정부 투자로 복지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세대를 넘어선 노동계급의 단결이 필요하다. 지배자들은 노동계급 내에서 세대 간 반목을 부추겨 이런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세대론은 더 나아가 “[고령화 때문에] 앞으로 한국 정치가 보수 지향적 투표성향을 보여 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노회찬 의원)는 비관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진보가 선거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성장’이나 NLL 등 안보 문제에서 진보의 기존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는 완전히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실제로 김기원 교수는 “중도층[을] … 획득하려면 극좌는 당연히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좌파 진영은 중도를 중심으로 새롭게 진화할 것이냐 아니면 도태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섰다”며 이를 부추기고 있다.

피상적인 세대론을 버리고 계급적 관점에서 전체 투표 결과를 보면 아주 다른 인식과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선거 결과는 왜곡되고 뒤틀린 방식으로나마 당시 사회세력들 사이의 세력 관계를 반영하는데, 이를 제대로 살피려면 사회세력 중 가장 강력한 양대 세력인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관계를 봐야 한다.

결집

경제 위기와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열강의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국내 정치에서도 첨예한 양극화가 벌어졌다. 그 오른쪽 축을 차지하고 있는 자본가들은 박근혜를 중심으로 단단히 결집했다. 이명박이 1987년 이후 최초로 탈당하지 않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만큼 이들의 결속은 물샐 틈이 없었다.

반면 왼쪽 축을 담당해야 할 진보정당은 지난 총선을 전후로 극심한 분열을 겪었다. 심지어 대선에서는 네 명의 진보후보가 출마했고 이들 사이에서도 서로 비난이 오갈 정도로 분열의 골이 깊었다. 민주노총은 지지 후보도 정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민주당이 왼쪽 축을 담당하게 됐다.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대거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고 수만 명의 노동자들과 진보적 인사들이 지지 선언을 했다.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가 대선을 앞둔 12월 11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에서 다수가 문재인을 지지했다.

그럼에도 이는 우파 결집에 못 미쳤다.

중간계급의 다수가 이 양대 축 사이에서 훨씬 단호하게 결집한 세력으로 견인됐다. 위의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도 ‘자영업자’와 ‘농림·임업·어민’의 다수가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 속에서 ‘민주정부’ 때 정리해고·명예퇴직을 당한 뒤 빚을 지고 장사를 해 온 가난한 50대 자영업자들이 박근혜에게 기대를 거는 현상도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중도화와 계급 동맹을 통해 이들을 획득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노동자 계급과 진보진영이 우파들보다 훨씬 강력히 단결해서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 줄 때에만 이들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진영은 박근혜 시대에 예고되는 여러 공격에 맞서며 노동운동의 단결과 공동 대응을 건설해야 한다. 그런 단결과 투쟁이 발전할 때 진보의 독자적 정치 대안도 발전할 수 있다.

작고한 영국의 사회주의자 크리스 하먼은 투쟁의 발전이 진보정당의 성장에도 결정적 구실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영국의] 노동자 계급은 세 번에 걸친 산업투쟁을 거치고 나서야 ‘집단적’ 가치를 쟁취하고 노동당에 투표했다. 노동자 계급을 이 방향으로 이끈 것은 투쟁의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