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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노동자·활동가의 죽음:
벼랑에 몰린 사람의 등을 떠미는 게 누구인가

대선 직후 며칠 동안 노동자 4명과 사회단체 활동가 1명이 목숨을 잃었다. 12월 21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 씨, 그 다음 날에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이운남 씨와 민권연대 활동가 최경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2월 25일에는 대학노조 한국외대 지부장 이호일 씨가 목숨을 끊었고, 그 다음 날에는 이호일 지부장의 빈소를 지키던 이기연 수석부지부장이 스트레스성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연이은 죽음에 비통함을 금할 길 없다.

‘더는 죽이지 마라’ “어제까지 강서라고 부르던 동생이 하루 아침에 열사가 됐다”며 오열하는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이미진

노동자들의 죽음과 이들이 남긴 유서를 보면, 사측의 탄압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그리고 희망을 찾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절절하게 다가온다. 최강서 열사는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운남 열사는 “더 이상 좁은 방에 갇혀서 흐느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최강서 열사가 일했던 한진중공업은 악질적인 노동탄압으로 유명한 사업장이다. 지난 20여 년간 노조 탄압과 압박 속에서 무려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도 한진중공업 사측은 정리해고와 노조 파괴로 고통을 전가하려 했다.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을 시작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연대가 확산되면서 압력을 느낀 사측이 일시적으로 양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측은 곧장 약속을 뒤집었다.

순환휴직제를 실시했고, 노조에 1백58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백58억 원은 노조가 조합비를 2백70년간 모아야 하는 규모였다. 이런 사측에 대항할 만한 동력이 충분치는 않았던 듯하고, 최강서 동지는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백58억 … 죽어서도 기억한다” 하며 목숨을 끊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이운남 동지도 사측의 악랄한 노동자 탄압에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정몽준의 왕국 현대중공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인간 취급을 못 받고 있다.

이운남 동지는 2003년 사내하청노조 건설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고, 2004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의 분신으로 촉발된 크레인 점거 농성에 동참했다가 사측의 경비대에게 폭행당하고 구속됐다.

그 이후에도 사내하청노조 활동을 계속했지만, 어려워진 생계 때문에 근근이 생활해야 했다. 이운남 동지는 최근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측에 의해 탄압 당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최강서 동지가 절망감에 목숨을 끊은 것을 보면서 좌절한 듯했다.

한국외대 노조 이호일 지부장의 죽음도 한국외대 당국의 노조탄압이 낳은 비극이었다.

한국외대 총장 박철은 2006년에 취임하자마자 학생과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박철은 학생들에게는 고액의 등록금 인상을 강요하고, 노동자들에게는 노조 탈퇴 종용과 단체협약 파기, 해고 등의 공격을 감행했다. 이호일 지부장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과 영혼의 상처를 얻은 것이다.

이렇듯 최강서·이운남·이호일 동지 모두 기업주들의 엄청난 노동자 탄압에 내몰린 상황에서 그나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대선에서 박근혜가 패배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한테 국가보안법 탄압을 받은 최경남 동지의 마음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 결과마저 실낱 같은 희망을 앗아가자, 절망이 엄습했던 듯하다.

고립감

정신과 의사 정혜신 씨가 “벼랑에 몰린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대기표를 받아쥐고 있다” 하고 경고한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당선을 폭력과 탄압으로 나가도 좋다는 신호탄으로 여긴 정몽구 등의 행태가 좌절감을 더욱 부추겼다. 그래서 최강서 열사는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 라고 했다.

물론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고립감을 느끼는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적잖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사측의 양보를 얻어내고, 그 과정에서 조직과 자신감을 어느 정도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기업주들과 정부가 자행하는 노동탄압에 단결해 맞서지 않는다면, 현장의 투쟁 동력이 약해지는 부문이 늘 것이고 그 결과 절망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더 심화할 경제 위기 상황에서 지배 계급의 고통전가에 제대로 맞서 싸우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사업장과 부문의 경계를 넘어 단결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자들의 단결 투쟁을 어렵게 하는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 차별에 맞서 공동 대응을 해야 한다.

최근 진보정당들과 정치단체, 노동조합 상급단체 등이 모여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파괴 긴급대응 비상시국회의”(이하 비상시국회의)를 소집했다.

물론 진보정당들의 분열과 반목, 직선제 쟁점을 둘러싼 민주노총의 지도력 공백 등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정치적 구심을 형성하며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더니, 죽음의 행진에 해결책은커녕 눈길도 주지 않는 박근혜 세력에 맞서며 희망을 지켜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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