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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파업:
미래의 투쟁을 위해 곱씹어봐야 할 것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산하 서울대병원 분회가 파업 13일 만에 병원측과 합의안을 체결하고 복귀했다. 조합원의 78퍼센트가 투표해 그중 83.4퍼센트가 합의안을 지지했다. 전체 조합원의 65퍼센트가 지지한 셈이지만, 90.3퍼센트가 투표에 참여해 94퍼센트가 지지한(전체 조합원의 85퍼센트) 파업 찬반투표에 견주면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병원 측의 임금동결 방침과 단협상 각종 휴일 폐지, 수당 삭감 시도를 막아 내고 2.8퍼센트의 임금 인상을 쟁취한 점을 성과로 꼽았다. 2.8퍼센트는 정부의 공공부문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이다. 무기계약직 2백여 명 가운데 1백 명을 2014년까지 정규직화하기로 했고, 모호한 표현으로나마 병원 측이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문구가 합의안에 포함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진료비 감면제 축소는 일부 받아들였다.

아쉬움은 남지만 노동자들의 분노와 염원이 얼마나 큰지 보여 준 서울대병원 파업. ⓒ이미진

서울대병원 노조는 6년 만에 파업을 해 어느 정도 소득을 얻은 셈이다. 특히, 병원은 업무에 따라 최대 1백 퍼센트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돼 파업권에 커다란 제약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1987년 이래 병원 노동자들의 맏언니 구실을 해 온 서울대병원 노동자들도 2008년에 이 제도가 도입된 뒤 파업 한 번 해 보지 못했고, 그 결과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지키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에도 조합원 1천5백 명 중 최대 5백 명만 합법적으로 일손을 놓을 수 있었다. 간호부 등 병원의 핵심 업무를 담당한 노동자들이 대부분 불참해야 해서 파업 효과는 크지 않았다.

이처럼 불리한 조건임에도 조합원의 94퍼센트가 파업 찬성표를 던진 것은 노동자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보여 준 것이었다. 2008년 경제 위기 직후에는 임금이 동결되기도 했고, 지난 몇 해 동안에도 임금 등 노동조건이 악화돼 더는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올해 초 새로 취임한 병원장 오병희는 병원 적자를 이유로 ‘비상 경영’을 선포하며 노동자들에게 임금 동결 등 양보를 요구했다.

따라서 파업 참가자들이 ‘어쨌든 파업에 나섰으니 이 정도라도 얻어낼 수 있었다’ 며 일부 아쉬워하면서도 합의안을 받아들인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필수유지업무가 없던 시절 만큼은 아니어도 파업이 일정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1백40여 명이 노동조합에 새로 가입하기도 했다.

소득

이 파업의 효과는 전체 계급투쟁 상황과 맞물린 덕분에 그 자체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에서 새로운 폭로가 이어지며 박근혜 정부가 불리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전교조 조합원들은 정부의 시정명령에 맞서 거부 입장을 밝히며 노동자 운동의 자존심을 지켜냈고 이는 다소 억눌려 있던 노동계급 전체의 사기를 높이는 구실을 했다.

또한 박근혜 취임 직후 시작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진주의료원 투쟁은 공공의료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였고 이는 서울대병원 노조 파업에도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줬다.

노동자들을 무릎 꿇리려 한 병원장 오병희는 되레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파업 1주일이 넘도록 협상을 거부하던 오병희는 국정감사에서 집중 포화를 맞은 이튿날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정치 상황 속에서 서울대병원 노조는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전체 정치 상황과 서울대병원노조가 가지는 상징성, 그리고 파업 찬반 투표에서 드러난 노동자들의 불만 등을 고려하면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먼저 정부의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2.8퍼센트는 치솟는 전셋값 등 물가 인상을 고려하면 전혀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합의안을 두고 “노사는 이날 임금 정률의 1.3퍼센트 인상과 정액 1만 5천 원 인상에 합의했다”며 비교적 문제 없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 결과가 다른 병원 노동자들에게 끼칠 영향은 작지 않다.

민주노총도 경제 성장률과 물가상승률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악화된 노동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할 때 최소한 8.9퍼센트(평균 임금 기준 21만 9천8백13원) 인상을 요구한 바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의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도 20만 9천 원 인상을 요구했다.

서울대병원 노조 지도부도 공식적으로는 13.7퍼센트 인상을 요구했었다. 다른 국립대병원이나 보건의료노조의 임금협상 결과(2.8퍼센트 안팎)를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목표였지만, 스스로 그 수준을 요구할 필요성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임금 등 노동조건은 지난 몇 년 동안 악화했고 노동강도는 세졌다. 오죽하면 많은 간호사들이 2~3년 만에 직장을 떠나겠는가. 다른 부서의 대의원들도 대부분 파업 기간에 이런 고통을 호소했다.

맏언니

그럼에도 적잖은 조합원들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을 비난하는 정부와 주류 언론, 그리고 이런 비난에 맞서기보다 동조하는 자유주의자들과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주장에 주눅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야 다른 병원 노동자들도 그만큼 요구하며 싸울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복지제도를 예로 들며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철밥통’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른 노동자들의 밥그릇을 뺏기는커녕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파업 기간 내내 임금인상 요구를 전면에 내 건 단체는 노동자연대다함께뿐이었다. 한 노동자는 이런 주장을 듣고 “움츠러들어 있었는데 어깨를 펼 수 있게 해 줬다”며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비춰 보면 노조 집행부가 파업 기간 내내 임금인상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려 한 점은 아쉬운 점이었다. 파업 현장 곳곳에 내걸린 조합원들의 메모에도 임금인상 요구가 두드러졌는데, 이를 그저 여러 가지 요구 중 하나 수준으로 격하시킨 것은 민주적이지 못한 처사였다. 노조 집행부는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한 조합원들의 견해를 그저 일축해선 안 된다.

또 많은 조합원들이 파업으로 인한 여러 어려움과 경제 상황, 다른 병원의 임금협상 등을 떠올리며 복잡한 심경 속에서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다.

노조 지도부가 가장 강조한 공공의료 요구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얻어 내지 못한 점도 아쉽다. 아마도 많은 조합원들이 이 문제 때문에 찜찜함을 느꼈을 듯하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노조가 제시한 공공의료 요구를 실제로 쟁취하려면 진주의료원의 사례처럼 전국적 수준에서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했다.

그러려면 임금 등 노동조건 개선 요구 같은 조합원들의 즉각적 요구를 뭔가 떳떳하지 못한 것처럼 부끄러워해서는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전투성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진주의료원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 문제를 수줍게 여겨 후퇴하면서 진주의료원 투쟁의 동력이 한때 약화된 것은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임금 등 경제적 요구를 부차화시킨 것은 공공의료 요구를 쟁취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필자의 평가가 이번 서울대병원 투쟁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다만, 여론 ― 본질적으로 사용자들의 가치관을 벗어나지 않는다 ― 에 주눅 들어 투쟁 참가자 대다수의 자신감과 투쟁성, 대의명분에 대한 확신 등을 충분히 끌어낼 줄 모른다면, 미래에는 불필요한 후퇴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노동운동의 역사적 교훈을 상기시키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