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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몰리뉴의 마르크스주의로 세상읽기:
대중매체는 전능한가?

존 몰리뉴는 저명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로, 특히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을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설명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한국에서 그는 ‘다함께’에서 발행한 신문 <맞불>과 <저항의 촛불>에 ‘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 칼럼을 연재해 왔다. ‘다함께’와 컨텐츠 제휴를 맺은 <레프트21>은 기존의 존 몰리뉴 칼럼들을 인수해 온라인에 두었고, 새로 창간된 <레프트21>을 위해 칼럼을 써줄 것을 존 몰리뉴에게 부탁해 고맙게도 허락을 받았다. 존 몰리뉴 칼럼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 편집자

어디서나 사회주의자들이 직면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대중매체의 압도 다수가 사회주의를 적대시하고 자신의 강력한 영향력을 이용해 현상 유지, 즉 자본주의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이런 편향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대다수 독재 정권 치하의 대중매체나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미국의 〈폭스 뉴스〉는 단지 자본주의뿐 아니라 현 정부를 지지하는 선전 매체 노릇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런 편향이 더 미묘해서, 영국의 BBC처럼 공정성이라는 방패막이 뒤에 숨거나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우거나 다양한 관점을 대변하는 척 행세한다. 그러나 항상 근본적 태도는 똑같다. 즉, 자본주의는 합리적이고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생산 조직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기껏해야 괴짜이거나 아니면 십중팔구 사악한 ‘과격파’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온건파’는 좋고 ‘과격파’는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고, 자본주의 폐지를 원하는 사람은 용어의 정의상 과격파에 속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대중매체인 TV를 보면, 이런 근본적 태도가 뉴스 보도뿐 아니라 토론 프로그램의 출연자 선정, 다큐멘터리의 주제와 해설, 연속극의 줄거리와 등장인물, 오락 프로그램의 성격과 분위기, 요컨대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그들의 견해는 무엇을 보도하는가 하는 데서 맨 먼저 드러나고 무엇을 보도하지 않는가 하는 데서 가장 중요하게 드러난다. 그뿐 아니라 어떻게 보도하는가, 사설과 칼럼 등에서 뭐라고 논평하는가 하는 데서도 드러나고 심지어 만평이나 스포츠 기사에서도 드러난다. 영화 산업이나 라디오나 그 밖의 대중매체에서도 근본적 태도는 다르지 않다.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중매체는 소수가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해 주는 소통 형태다. 대중매체는 모두 상당한 자본 지출이 필요하고, 따라서 막대한 자본을 가진 사람들 ― 자본가들 ― 이나 근본적으로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중매체의 친(親)자본주의 편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전히 필연적이다. 그것은 지배계급이 이데올로기를 지배하는 일반적 현상의 일부인데, 칼 마르크스는 (현대적 대중매체가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던) 1845년에 그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설명한 바 있다.

어떤 시대에나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다. 즉, 사회를 지배하는 물질적 세력인 지배계급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정신적 세력이기도 하다. 물질적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이 정신적 생산수단도 통제한다. 따라서, 대체로 말해서, 정신적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사상은 그것[물질적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에 종속된다.(《독일 이데올로기》)

따라서 문제는 대중매체에 대한 지배계급의 통제가 얼마나 강력한가 그리고 그런 통제력에 어떻게 도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부터 살펴보자. 사회주의자들이 독자적인 소통 수단, 즉 〈레프트21〉 같은 신문이나 포스터·리플릿·잡지·웹사이트·블로그·영화 같은 각종 소통 수단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과 가능하다면 어디서든 자본주의 매체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존속하고 자본가 계급의 권력이 유지되는 한은 사회주의 매체가 부르주아 매체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고 사회주의 교육이 국가의 초중등 학교나 부르주아 대학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므로 사회주의 사상은 주변적 영향력 이상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결정적인 문제는 부르주아 매체가 근로 민중 다수의 정신을 얼마나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지배력을 어떻게 분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분명히 대중매체는,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영향력이 있고 때로는 그들 마음대로 사람들을 조작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을 선동하고 더 나아가 전쟁의 광기를 부추기기도 하고, 사람들이 체제에 대한 도전을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사회에는 대중매체가 선전하는 세계관을 대부분 거부하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항상 있기 마련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런 소수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지배적인 세계관을 (아직) 거부하지 않은 사람들과 우리가(나도 그중 일부이다) 근본적으로 또는 태어날 때부터 달랐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체제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은 단지 우리가 겪은 경험들 때문이다.

둘째, 대중매체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압도 다수조차 그런 주장을 하나에서 열까지 다 믿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20세기 내내 대다수 신문이 보수당을 지지하고 극소수만이 노동당을 지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당이 여러 차례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에서도 대중매체의 압도 다수는 월스트리트를 지원하기 위한 부시 정부의 7천억 달러 구제금융 방안을 지지했지만, 그럼에도 그 방안은 평범한 미국인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없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설득하려 애써 봐야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것을 대중매체 스스로도 잘 아는 매우 인기 없는 쟁점들이 있다. 예컨대, 대량 실업이 그렇다. 때때로 지배계급은 대량 실업이야말로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노동계급의 저항을 분쇄하기에 딱 좋은 처방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지배계급이 가장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모종의 속죄양(이주노동자들, 난민들, 탐욕스런 노동조합원들 등)을 비난하도록 몰아가는 것이지만, 항상 지배계급은 실업을 걱정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대체로, 현실이 대중매체의 주장과 가장 심각하게 어긋나고 특히 사람들의 일상적 경험과 직결된 쟁점이 불거질 때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가장 약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 경제 위기가 사회주의자들에게 기회가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들이 경제 위기의 고통으로 급진화하기 때문일 뿐 아니라 경제 위기로 자본가 계급 자신들의 주장이 극적으로 폭로되고 허물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로 민중이 대중매체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고 거부할 가능성이 특히 높은 경우는 그들이 집단적 투쟁을 벌일 때다. 왜냐하면 그럴 때는 그들 자신이 뉴스의 초점이 되고 그들 자신의 행동과 경험이 거짓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집단적 투쟁이 대중 투쟁이기도 할 때, 집단적 투쟁이 압도 다수의 노동계급을 행동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할 때, 예컨대 총파업 투쟁이 벌어질 때,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정말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특히, 노동계급이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충만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위기 상황과 대중 투쟁의 결합뿐 아니라 한 가지 요인이 더 필요하다. 사회주의 세계관을 대안으로 주장할 수 있는 독자적 매체를 가진 혁명적 노동자 대중 정당이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방정식을 완성하면, 우리는 근로 민중의 정신에 대한 대중매체의 지배력뿐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권력 전체 ― 대중매체에 대한 지배력을 포함한 ― 도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