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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를 거듭하는 의료 개혁과 오바마의 위기

‘변화’에 대한 열망을 안고 대통령에 당선한 오바마의 지지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취임 초 70퍼센트에 이르던 지지율은 어느새 50퍼센트대까지 내려갔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50퍼센트를 밑돌기도 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8개월이 갓 넘은 것을 생각하면 예사롭지 않은 속도다.

그 배경에는 오바마가 약속했던 개혁의 후퇴가 있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오바마 당선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파산한 기업 CEO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경제 정책, 불충분한 서민 지원과 급증하는 실업 등에 실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지부진한 의료 개혁은 사람들이 오바마에게 등을 돌리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에 의료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라”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전국민 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은 국민의 15퍼센트(약 4천6백만 명)가 의료보험 없이 살아간다. 개인 파산 원인 1위가 의료비 부담일 정도로 의료비가 비싼 나라에서 말이다. 지난해 개봉한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는 이런 미국의 현실을 생생히 보여 줬다.

그래서 오바마가 미국 의료 체계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겠다고 했을 때 국민 대다수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6월에 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5퍼센트가 오바마의 의료 개혁을 지지했다. 민주당이 백악관뿐 아니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상황에서 개혁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러나 오바마의 ‘의료 개혁안’은 애초에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었다. 즉,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보험이 민간보험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보험을 일부만 도입해 민간보험과 경쟁하게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민간 보험회사들이 의료 시장에서 얻는 수익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의료 개혁’을 추진하려 한 오바마는 거대 제약회사·보험회사 대표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설득에 나섰다. 또 “초당적 협력”을 강조한 그는 의료 개혁을 극렬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과도 타협점을 찾으려 애썼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의 ‘의료 개혁안’은 그나마 있던 개혁성마저 점차 잃어 갔다. 최근 하원에서 잠정 합의된 ‘의료 개혁안’을 보면, 맨 처음 제출된 안보다 의료보험 제공 의무를 면제받는 중소기업이 늘었고 연방 정부가 저소득층에 제공하는 의료보험 가입 보조금은 줄었다. 심지어 최근 오바마는 “공공보험을 도입할지 말지가 의료 개혁의 전부가 아니”고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며 공공보험 도입을 포기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의료 개혁을 저지하는 데 사활을 걸고 달려드는 우파들의 악선동과 공격에 오바마가 무기력하게 타협하자 사람들은 개혁에 대한 기대를 조금씩 접고 있다. 7월 말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9퍼센트가 오바마의 의료 개혁이 의료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고 조세 부담을 늘리며 의료 서비스 선택폭을 제한시킬까 봐 걱정된다고 답했다.

오바마의 이런 후퇴는 자유주의적 자본가를 대변하는 정당의 정치인으로서 그가 갖는 한계에서 비롯한 것이다. 오바마가 속한 민주당은 자본가 계급에 깊숙이 뿌리내린 정당으로 각종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정치 자금을 받는다. 제약회사·보험회사 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들이 2000년 이후 상·하원 의원들에게 뿌린 돈이 약 3억 7천만 달러이고 그중 절반이 보건 관련 법안들을 처리하는 위원회에 집중됐다. 특히 빌 클린턴이 의료 개혁을 시도했던 1992년과 의료 개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최근에는 공화당보다 민주당에 후원이 몰렸다.

오바마가 시장에 내맡겨진 의료를 공공의 영역으로 되찾아 올 것이라던 기대는 점점 쓰디쓴 환멸과 배신감으로 변하고 있다.

진정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오늘날 미국 복지제도의 대부분은 193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확립된 것들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과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로 표현된 이 정책들이 시행된 배경에는 사회 변화에 대한 광범한 열망과 강력한 대중 행동이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을 배경으로 노동자 투쟁이 활발해지며 오늘날 미국 복지제도의 기본틀인 기업형 복지가 구축됐고 노조법 등 개혁법이 통과됐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과 반전운동 등 사회운동이 활발해지며 오늘날 미국 복지제도의 대표격인 메디케어(노인에게 제공되는 의료보장제도), 메디케이드(빈곤층에게 제공되는 의료보장제도)가 확립됐다.

이런 개혁들은 단순히 위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미국 사회 변화의 열쇠는 오바마가 아니라 그를 통해 변화를 얻고 싶어 했던 평범한 미국인들의 자주적 행동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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