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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학 총학생회 선거 결과:
‘운동권’ 후보들의 대거 당선, ‘비권’의 좌향좌

올해 총학생회 선거 결과는 촛불이 총학생회 선거 판도를 바꿨던 지난해의 연장선상에 있다.

‘운동권’ 총학생회의 부활과 ‘비권의 운동권화’라는 지난해 선거의 핵심적 특징은 올해도 나타났지만, ‘운동권’ 총학생회 당선이 올해의 훨씬 더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주요 대학들이 집중돼 있는 서울의 경우, 대부분의 대학에서 한대련 등 조직 운동세력이 배출한 후보가 당선했다.

이명박 불신임 운동 선포 대학생 기자회견(위), 등록금 인하 촉구 집회(가운데),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던 교수들의 시국선언(아래) 올해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억압과 대학 기업화에 맞선 저항을 조직했던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총학생회 선거에서 대거 당선했다.
이명박 불신임 운동 선포 대학생 기자회견(위), 등록금 인하 촉구 집회(가운데),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던 교수들의 시국선언(아래) 올해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억압과 대학 기업화에 맞선 저항을 조직했던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총학생회 선거에서 대거 당선했다.
이명박 불신임 운동 선포 대학생 기자회견(위), 등록금 인하 촉구 집회(가운데),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던 교수들의 시국선언(아래) 올해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억압과 대학 기업화에 맞선 저항을 조직했던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총학생회 선거에서 대거 당선했다.

지난해에 당선한 ‘운동권’ 후보들이 올해도 큰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고(한국외대, 경희대, 숙명여대 등), 지난해 ‘비권’ 경향이 당선했던 연세대, 중앙대, 광운대 등에서는 ‘운동권’ 후보들이 ‘세력 교체’에 성공했다.

올해 ‘이명박 불신임 총투표’를 성사시키고, 비정규 교수 대량 해임을 막아 낸 부산대 총학생회는 같은 경향의 선관위가 학생회칙을 어기고 휴학생도 피선거권을 갖도록 세칙을 개정하는 무리수를 둬 선거가 무산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방의 주요 국공립대 학생회 선거에서도 대부분 ‘운동권’ 후보가 당선했다.

선거 부정 논란의 이면

주류 언론들은 올해 총학생회 선거의 핵심적 특징을 ‘기성 정치판이나 다름 없는 선거 부정’으로 꼽으며 핵심을 흐렸지만, 선거 파행은 진보 후보에게 총학생회를 내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비권’ 경향 선관위의 부정행위와 편파적 결정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았다.

서울대에서는 올해 ‘비권’ 총학생회를 운영했던 선관위원들이 패배를 예감하고 표계산을 위해 미리 투표함을 개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진보 성향 선본이 선관위실에 몰래 녹음기를 설치해 이들의 대화를 엿들은 것이 문제가 됐지만, 명백히 더 큰 문제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선관위쪽에 있었다). 이화여대에서는 ‘기독교 우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올해 총학생회 출신 선관위원들이 사소한 흠을 잡아 진보 후보를 퇴출시키는 유례 없는 징계를 내려 선거가 파행으로 치달았다. 성균관대 선관위도 진보신당 당원이 주요 선거운동원이었던 선본의 경미한 세칙 위반을 문제삼아 후보 자격을 박탈했는데, 정작 이를 추진한 선관위원과 같은 경향의 후보는 성추행 혐의로 사퇴했다.

‘운동권’ 후보의 당선 배경

‘운동권’이 대거 당선한 올해 선거 결과는 전반적 사회 분위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억압과 기업을 닮아가는 대학의 행태는 대학생들의 반감과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이명박의 대표적인 조삼모사식 ‘친서민’ 가면극이었던 ‘등록금 취업후 상환제’, 대학들의 등록금 펀드 투자, 진중권 교수 해임, 한예종 사태, 비정규직 강사 대량 해고 등에 맞서 한대련 등 조직된 학생운동이 선두에서 반대 목소리를 냈고,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용산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대학 교수들이 주도한 시국선언 물결,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맞선 투쟁의 상징이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공장점거 농성도 학생들이 급진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명박 불신임 운동을 앞둔 부산대 학생 여론조사 결과에서 58퍼센트가 “총학생회가 학생 권익 문제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반대해 정치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고려대학교 학생들도 올해 총학생회 활동 중 사회참여 활동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고대신문〉 조사 결과).

올해 선거 결과는 반정부 정서가 학생들 사이에서도 강하게 존재했고, 이런 불만을 잘 대변하고 조직하려 한다면 좌파적인 후보가 얼마든지 학생들의 지지를 결집시킬 수 있음을 보여 줬다.

특히 ‘비권’에서 ‘운동권’으로 ‘세력 교체’가 있었던 대학에서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났다. 연세대학교 ‘YOU’선본은 ‘부자학교 펀드 감시단’, 등록금 인상 반대 활동 등을 주도하며 등록금 문제에서 총학생회나 다름없는 활동을 했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좌파의 존재를 선명하게 각인시킨 결과 여섯 선본이나 출마했는데도 31퍼센트나 되는 지지를 얻었다.

중앙대는 올해 두산재단이 들어서면서 학생들과 충돌을 벌인 대학이다. 총장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신이다. 이들이 대학을 지배하면서 진중권 교수 해임과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에 대한 징계 시도, 교지 수거 사건 등이 벌어졌다. 이것은 상대평가 전면 도입, 총장 직선제 폐지, 학내 구조조정 등을 위해 학생들의 반대 목소리를 막으려는 시도였다. 진보 성향의 ‘강한 총학생회’ 선본은 “두산을 위한 변화냐, 우리를 위한 변화냐” 하는 물음을 던지고 두산 재단에 맞서 싸우겠다고 선명하게 밝혀 당선했다.

‘비권’의 좌향좌

‘비권’ 후보들도 ‘운동권’과의 차이만 강조하기보다는 필요할 때는 진보적 목소리를 내고 싸우겠다고 주장했다.

고려대학교에서 당선한 ‘소통시대’ 후보는 ‘외부 세력’에 흔들리지 않겠다며 ‘운동권’과의 차이를 강조하면서도, “등록금만큼은 결코 말랑말랑하지 않”고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비권’ 후보로 분류됐던 ‘함께, 멀리’ 후보들도 “총학생회는 … 대사회적으로 진보적인 방향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통시대’가 ‘소통’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대상에는 ‘운동권’ 총학생회도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도 있었다. 고려대학교 선거에 출마한 네 선본 모두 학내 미화 노동자들의 “폐지 투쟁”에 함께했다. 좌파들이 주도한 쟁점이 선거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물론 ‘소통시대’가 투쟁이라는 방식과 학생들의 연대기구인 한대련을 깎아내린 것은 이들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질지 의문스럽게 만든다. 정부나 사립재단들에 양보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소통’보다 ‘투쟁’이 필요한 법이다.

연세대학교에서 2년간 총학생회를 운영해 왔고 자신들을 운동권도 비권도 아닌 ‘학생권’이라고 부르는 ‘연세36.5 CON-Action’ 선본도 자신들이 그동안 “복지공약에 치우친 결과 사회참여에 소극적인 한계를 드러”냈다고 자기반성적 평가를 하며 “사회운동도 하겠다”고 밝혔다.

5개나 되는 선본이 경합했던 서울대의 경우, 모든 후보가 서울대 법인화 반대를 내걸었고, 우파적 목소리를 드러내는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 어느 대학이든, ‘운동권’이건 아니건 등록금 인상 반대 활동을 하겠다는 공약을 부각시켜야만 하는 압력이 존재했다.

진보 후보 석패의 경우

한편, 고려대에서는 좌파가 아쉽게도 낙선했다. 지난해, 2년 만에 ‘비권’ 경향의 총학생회를 제치고 ‘운동권’이 당선해 주목 받았던 고려대에서는 올해 좌파 후보들이 고배를 마셨다.

고려대 다함께는 올해 총학생회를 운영했던 고려대 ‘반미청년회’ 경향, ‘학생행진’(이하 행진) 경향에 진보연합선본을 제안했지만, 행진이 거절해 성사되지 못했고 진통끝에 ‘반미청년회’와 다함께의 연합(‘희망충전’ 선본)만 성사됐다. 결국 좌파는 2위(행진)와 3위(‘희망충전’)에 그쳤다. 행진이 독자적 선전보다 진보적 학생들의 단결을 좀 더 비중 있게 고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것이 좌파 후보들에 대한 지지가 줄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진보후보들이 받은 표를 합치면 당선한 ‘비권’ 경향의 ‘소통시대’ 지지표보다 훨씬 더 많았다. 즉, 진보단일선본이 출마했다면 당선할 수도 있었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도 좌파 후보가 얻은 총표수는 큰 변동이 없었다. 따라서 고려대의 진보적 활동가들은 낙담하지 말고 지지를 쌓아 나가야 한다.

한편, 올해 총학생회의 지지 기반이었던 곳의 표는 ‘비권’으로 옮겨가지는 않았지만 같은 좌파 내에서도 행진쪽으로 더 쏠렸다. 진보적 학생회 활동가들조차 올해 총학생회가 ‘선봉대식 사업을 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래서 ‘비권’이 ‘소통’을 핵심 화두로 내세워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은 좌파가 분명한 진보적 주장과 실천을 회피하지 말고, 필요하면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논쟁도 벌여야 하지만, 동시에 개방적인 태도로 운동을 건설해야 그 지지를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과제

올해 총학생회 선거는 전반적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운동이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줬다. 경제 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정치 위기 상황은 내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위기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려는 시도도 계속될 것이다.

학생운동은 이런 시도에 맞서 저항운동의 진지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억압과 민주주의 문제에 민감한 학생들은 다른 투쟁을 촉발하는 방아쇠 구실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조직된 학생 좌파들이 이 과제를 잘 수행한다면 이명박 정부하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억압감과 분노를 느끼는 진보적 학생들의 지지를 성공적으로 결집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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