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와 소통하는가
<레프트21> 22호 | 발행 2010-01-02 | 입력 2009-12-31
소통 : ①막히지 않고서 통함 ②생각하는 바가 서로 통함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소통이 한국 사회의 화두다. 언론과 각종 논평은 끊임없이 소통을 언급하고 있다. 최근 고려대학교나 몇몇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소통”을 내건 후보가 당선하기도 했다.
이토록 소통이 화두가 된 이유는 MB 시대가 불통과 먹통 시대이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10일 광화문에 어청수가 세운 거대한 콘테이너 바리케이드, 일명 “명박산성”은 불통 MB의 상징이었다. MB의 안하무인 독주 정치가 소통을 열망하게 하고 있다.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이 열망하는 소통에는 민주주의 염원이 반영돼 있다. 따라서 우리가 먹통 MB를 폭로하는 것은 정당할 뿐더러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과거에 비해 더한층 불통 정부이긴 하지만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때도 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김대중은 평화를 바라는 한국인들과 불통하고, 조지 부시와 소통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했고, 대자본가들과 소통해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우파들과 소통해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좌파를 마녀사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도 마찬가지다. 2004년 여름, 노무현은 살고 싶다며 파병하지 말라던 김선일의 절규를 무시하고 조지 부시와 소통했다. 한 청년은 불통 때문에 그렇게 죽었다. 한미FTA 체결, 국가보안법 개폐 사기극, 비정규직 확대, 노동자 대량 구속. 노무현도 철저히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과는 불통했다.
지배자들의 이런 불통은 근본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와 관계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계급 적대와 계급 지배에 근거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계급 간 소통은 근본에서 불가능할 뿐더러, 그것을 추진하는 것은 계급투쟁에 장애가 된다.
간혹 지배계급이 직접 나서 피억압자 운동과 ‘소통’하는 경우가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만든 ‘노사정위원회’나 최근 전교조 지도부가 불필요하게 참석한 교원평가 ‘6자 협의체’, 노동조합법을 둘러싼 ‘8인 협의회’ 등.
이는 지배계급이 질질 시간을 끌면서 우리 편 투쟁 동력을 약화시키고 김을 빼기 위한 수법이다. 대화나 협상은 대립물들의 투쟁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지, 투쟁의 목적이 되거나 투쟁이 그것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
촛불 항쟁이 마지막 불꽃을 사르던 2008년 7월 초 광우병대책회의 일부 지도자들이 청와대와 비밀리에 ‘소통’하려다 공개돼는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촛불의 악몽을 끝내고 싶어 하던 청와대와 운동을 연착륙시키려던 일부 지도자들의 부적절한 시도가 낳은 해프닝이었다. 비밀 회동 추진은 에피소드로 끝났지만 지배계급과의 소통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 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민주당이나 <한겨레>, <경향신문> 등 자유주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MB를 비판하며 소통을 말할 때, 그것의 핵심은 “대화와 타협”이고, 그 통로와 방법은 흔히 국회를 뜻한다.
소통하지 않는 MB와 그에 맞선 투쟁을 모두 겨냥한 양날의 검인 셈이다.
2008년 촛불 항쟁, 용산 참사 항의 투쟁, 미디어악법 저지 투쟁에서도 이 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이들이 강조하는 소통이란 기껏해야 투쟁의 수증기에 가느다란 빨대를 꽂아 국회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어서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이 열망하고 쟁취해야 할 민주주의에 한참 못 미친다.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
그렇다면 어떤 소통이 필요한가? 우리 계급 안에서 소통해야 한다. 저 불통 정부와 체제에 맞서 우리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거리의 정치 시위가 노동자 파업과 소통해야 하고, 학생들의 투쟁이 노동자 투쟁과 소통해야 한다. 한국 노동자가 이주노동자와 소통해야 하고, 한국의 투쟁이 국제적 투쟁과 소통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계급과 피억압자 민주주의의 출발이다. 이는 서로의 의견을 내놓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다른 집단들의 운동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기도 하고, 함께 어깨 걸고 투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이룰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는 바로 공동전선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과 소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레프트21> 같은 신문이 필요하다. 신문은 사회주의자들과 피억압자들과 노동계급의 소통의 장이고 서로를 연결하고 고무하고, 투쟁을 나아가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불통 좌파 ─ 공동전선에 종파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대중과 소통을 무시하는 ─ 에게는 미래가 없다.
글의 제목에서 던진 물음에 답하며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나는 누구와 소통하는가. 나는 MB와 소통하지 않는다. 나는 이 체제의 지배계급과 소통하지 않는다. 나는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소통을 의심하며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과 소통한다. 그리고 이들이 민주적으로 소통하면서 운영하는 체제를 위해 투쟁하고 또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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