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민주대연합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인가
지난해 10월 재보선 때 진보진영은 쓰라린 경험을 했다. 안산에서 민주당과 후보단일화 하는 데 목매달며 다른 지역에서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들을 스스로 사퇴시킬 수 있다는 제안까지 했다가, 민주당의 차디찬 외면 속에 헛물만 켜고 만 것이다.
이것은 “국민들이 볼 때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교보재용 후보’라는 인식만” 심어 주면서 “민주당 2중대 2소대 2분대가 되어 버린 우리 후보의 표를 박살 내는 아주 치명적인 우”(김창희 민주노동당 남양주시위원장)가 됐을 뿐이었다.

△2006년 민주노총 집회 한나라당과 손잡고 개악을 해 온 민주당과 동맹해서는 일관된 반MB가 어렵다. ⓒ사진 임수현 기자
이 쓰라린 패배 이후 이명박을 심판하기 위해 민주당(과 친노신당)까지 포함한 연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민주대연합 주장보다는 진보정당들의 단결과 통합이 필요하다는 진보대연합 주장이 힘을 얻는 듯했다. 민주노총은 공개적으로 “진보정치운동의 대단결과 대통합”을 촉구했고, 진보정당들은 이에 대해 나름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민주대연합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선 민주당이 밑밥을 던지고 있다. 민주당은 1월 7일 “민주개혁진영이 힘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선거 공조와 연대”를 통해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지역에서 다른 야당과 함께 공동지방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등 5당과 ‘희망과 대안’, ‘민주통합시민행동’, ‘시민주권’, ‘2010연대’ 등 4개 시민사회단체가 몇 차례 물밑 접촉을 통해 반한나라당 선거 연합을 구성하려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일부 사람들이 10월 재보선의 쓰디쓴 경험에서 잘못된 교훈을 끌어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실제로 <민중의 소리>는 10월 재보선 이후 “이번 … 실패를 교훈으로 연합을 위한 전략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했다. ‘희망과 대안’의 하승창 상임운영위원은 “강기갑 대표의 [민주노동당 후보를 사퇴시킬 수 있다는] 제안 같은 것이 좀더 일찍 나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절벽?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별 차이가 없지 않으냐고 묻[지만] … 작은 차이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실개천’이 [아니라] ‘절벽’이라는 게 드러났[다]”고 했다. 이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크게 보는 사람들은 “연대하지 않고 거대한 수구 기득권 세력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없다”(전 국무총리 이해찬)는 논리에 따라 민주당까지 포함한 민주대연합을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거나 심지어 ‘절벽’이 놓여 있을까? 현실은 명백히 둘 사이에 ‘사소한 차이’만 있다는 것, ‘절벽’이 아닌 ‘실개천’이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명박이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추진하기 전에, 민주당 정부의 이라크 파병이 있었다. 이명박의 노조법 개악 전에, 민주당 정부의 비정규직 악법이 있었다. 이명박의 쌍용차 살인진압 전에 민주당 정부의 쌍용차 해외매각이 있었다. 이명박의 4대강 삽질 전에 민주당 정부의 새만금 삽질이 있었다.
이명박이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선진화’라고 포장하기 전에 이미 민주당 정부의 ‘노사관계 선진화’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휘두르기 전에 이미 ≪자본론≫을 판 서점 주인을 국가보안법으로 잡아간 민주당 정부가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중요한’ 질적 차이가 아닌 ‘사소한’ 양적 차이일 뿐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그토록 동요하면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다 거듭 진보진영의 뒤통수를 쳤던 것이다. 민주당 정책위의장 박지원도 “지난해 미디어법, 세종시, 4대강, 노동법, 예산이라는 5대 쓰나미에 한 가지도 승리하지 못하고 싸우지도, 타협도 못했다”고 인정했다.
반면 민주당과 힘을 합쳐 이명박의 개악을 막으려 했던 사람들은 거듭 “믿는 도끼에 가슴을 찍힌 격”(2009년 연말 정국 때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이 됐다. 이것은 민주당의 문제점이 단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보여 주며, 따라서 ‘과거를 묻지 말고 현재를 보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민주당의 반성과 변화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대표 정세균은 그동안의 민주당 행태에 대해 “한치의 부끄럼도 없[고] … 별로 반성할 지점을 못 찾겠다”(<민중의 소리> 1월 4일치)고 했다.
물론 민주당이 선거 승리와 민주대연합 성사를 위한 속임수로 몇 가지를 약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믿는 것은 악마의 기독교 개종 약속을 믿는 것처럼 헛된 일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자본가 정당이기 때문이다. 자본가 계급에 기반해서 그 인력과 재정으로 주로 운영되는 당이라는 이유 때문에 민주당은 그동안 자본가 계급의 이해에 부합하는 신자유주의ㆍ친제국주의 정책을 펼쳐 왔고 그것은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계급적 이해관계는 쉽게 바뀔 수 없다.
주고받기?
따라서 민주대연합을 위해 민주당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진보정당들은 반대급부를 제공한다는 ‘주고받기’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조국 교수는 “연합의 공통분모를 만들려면 … 개혁정당들이 좌로 한 걸음 [가고] … 진보정당들도 우로 한 걸음”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 계급적 한계 때문에 제스처 수준 이상으로 좌로 갈 수 없고, 기득권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세균은 “최고의 선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그러면서 진보진영에게는 “선거에 승리하기 위한 양보와 결단과 포기”를 요구했다.
결국 이런 민주대연합에서 진보진영이 얻을 것은 없고 잃을 것만 있다. 진보진영이 민주당과 연합을 하려면 민주당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요구와 강령을 낮춰야 한다. 이미 ‘희망과 대안’의 하승창 상임운영위원은 “민주당도 합의할 수 있는 정책을 찾아 [내야 한다]”며 파병과 한미FTA 등 “지나간 것을 지나치게 따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레디앙> 2009년 10월 26일치)
또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차단당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재보선 때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을 비판하려 하자 민주당은 “단일화를 얘기하면서 상대방을 비난ㆍ부정하는 행위는 예의가 아니다”라며 “무엇이 같은지 왜 같이 가야 하는지 그것만을 생각하라”고 큰소리쳤다. 이처럼 진보진영의 요구가 축소되고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입막음당하면 선거보다 훨씬 중요한 노동자 투쟁에서 진보진영은 손발이 묶이게 된다. 이것이 민주대연합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선거에서도 민주대연합을 통한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면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진보정당이 ‘민주당의 2중대’라는 이미지와 사표 심리만 부추기게 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진보진영이 스스로 민주당 선거 승리를 위한 거름이 되는 격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거름으로 썩어 가도 누군가가 나를 딛고 올라서 더 잘할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을 내놓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설사 진보진영을 거름 삼아 당선해도 한나라당에 굴복ㆍ타협해서 신자유주의ㆍ친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며 진보진영을 배신할 것이다. 이것은 한나라당을 심판하려고 민주당에 투표했던 사람들의 사기를 꺾고 냉소와 환멸을 조장할 것이다. 그 결과 다시 한나라당과 이명박의 기가 살아날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따라서 민주당을 포함한 민주대연합 추진은 진보진영이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다. 그 점에서 민주노동당이 1월 10일 중앙위원회에서 ‘진보정치 대통합 추진’을 결정한 것은 반갑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대연합을 위한 불쏘시개나,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을 동시에 추진하려는 ‘투트랙 전략’이 돼선 결코 안 된다.
진보진영과 진보정당들은 민주대연합과 분명히 선을 긋고 쉽지 않더라도 진보진영의 단결 투쟁과 통합, 선거연합 추진으로 분명히 방향을 정해야 한다.
<레프트21>은 정보공유라이선스2.0:영리금지를 따릅니다.
<레프트21> 첫 화면으로ⓒ<레프트21> 23호 | 발행 2010-01-16 | 입력 2010-01-14
<레프트21> 23호 | 발행 2010-01-16 | 입력 2010-01-14
을 후원해 주세요




대표 : 김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