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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 건강보험 보장성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보장성 확대하려면 정부ㆍ사용자 부담 대폭 늘려야

지난 호 〈레프트21〉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송홍석 회원이 기고한 글(‘보험료 인상을 무기로 싸우겠다고?’)에 대해 같은 단체 회원인 김종명 씨가 반론을 보내 왔다. 그리고 〈레프트21〉 기자 장호종이 김종명의 반론에 재반론을 폈다. 복지국가 논의가 점차 활발하게 벌어지는 지금 그 실현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운동에, 그리고 〈레프트21〉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선거를 앞두고 한 여론조사 결과 “개발보다 복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의견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했다. 어느 집이나 아픈 사람 하나쯤 있기 마련이고 절반을 간신히 넘는 건강보험 혜택에 불안과 불만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없다.

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증가율

실제로 지난 5월 14일 〈한겨레〉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세금을 더 내더라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70퍼센트를 넘는 것으로 나왔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한국에서도 무상의료가 실시된다면 이를 위해 보험료를 조금 더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한국의 다른 복지 제도들과 달리 건강보험 혜택이 보험료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이 세금이나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복지를 늘릴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 엘리트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이런 여론과는 달리 보장성이 확대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정부와 기업주들이 보장성 확대를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단지 보험자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요 자본가 대다수와 정부가 보장성 확대를 반대한다. 대형 병원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는 일부 중소병원들을 제외하면 큰 이견은 없었다.

그래서 해마다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돼 왔다.

민주노총 등은 보장성을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병원협회와 의사협회 등은 수가를 인상하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이 요구들을 충족하려면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리되면 기업주들의 부담도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기업주들의 대표 자격으로 회의에 참가한 자들은 두 요구 모두 반대했다. 그러나 비(非) 보건의료 부문 다른 자본가들은 보험료 인상이 투자 의욕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엄살을 떨면서도, 실제로는 경쟁 상대인 다른 나라 자본가들보다 그 부담이 훨씬 낮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0.8퍼센트

실제로 이뤄진 일은 정부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줬다.

경제 위기로 보험료 인상에 부담감이 컸던 2008년(2009년 적용분) 한 해를 제외하면 건강보험료는 해마다 큰 폭으로 올랐다.

몇만 원 정도 되는 보험료조차 부담스러워 내지 못한 생계형 체납자들에 대한 압류도 늘어났다. “건강보험공단의 압류 건수는 2008년 62만 8천 건에서 지난해 1백2만 8천 건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늘어난 수입으로 병원에 지급하는 수가는 올려 주면서도 보장성을 확대할 조처는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보험료 인상분은 대부분 약값과 수가 인상분으로 새 나갔고 건강보험 적용 대상을 늘려도 병원들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 항목을 늘리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올해에도 건강보험료는 4.9퍼센트 올랐지만 “이 중 국민들에게 급여확대 혜택으로 돌아오는 금액은 보험료 인상률 중에서 0.8퍼센트밖에 안 된다. 나머지 4.1퍼센트의 건강보험료 인상액은 수가인상으로 사실상 의료계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다.”(건강세상네트워크)

게다가 정부는 이미 수백조 원을 금고에 썩히고 있는 자본가들에게 1백조 원에 이르는 감세 혜택을 준 바 있다.

자본가들에게는, 보험료 인상이 복지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할 뿐만 아니라 경제 위기의 대가는 노동자 개개인이 떠맡아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도 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런 일들이 단지 이명박 정부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기본 방향은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복지 ‘개혁’의 핵심은 이처럼 복지 혜택을 줄이고 비용 부담은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 정부들이 비슷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래서 한국의 진보진영과 보건의료 운동은 이런 방향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해 왔다. 기업주들의 부담을 늘리고 정부 재정 투자를 확대해 보장성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노총 등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정부가 약속한 조처들 — 재정 지원, 약값 통제 등 — 만 제대로 실행해도 당장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오히려 진보진영이 지난 몇 년 동안 보장성 확대를 위해 보험료 인상 압력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뼈아프게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방향 선회

나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종명 회원이나 그가 참여하는 ‘모든 진료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제안 모임’(이하 시민회의)의 제안이 근본에서는 보장성 확대를 위한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민회의는 정부와 기업주들의 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들이 보장성 확대에 동의하도록, 혹은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지가 핵심인데 말이다.

이 문제를 회피한다면 ‘보험료 인상을 통한 보장성 확대’ 제안은 둘 중 하나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하나는 정부와 자본가들이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반대해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고 4대강 삽질하고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이명박 정부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지금까지 해 온 대로 ‘보험료 인상’만 받아 챙기고 보장성 확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나쁜 상황이다.

그리되면 보험료 ‘먹튀’의 책임은 정부뿐만 아니라 ‘보험료 인상을 통한 보장성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한 진보진영 일부에게도 돌아오게 된다. 시민회의의 제안이 가진 치명적 약점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두고 벌어지는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을 없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솔직하지 않아 보인다. 앞서 말한 보장성 확대 운동의 경험을 시민회의에 참가하는 인사들 대다수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민회의는 기왕에 있는 ‘의료 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범국민운동본부’에서 오른쪽으로 분열해 생겨난 단체다. 국가와 기업의 부담을 늘리고 이를 강제하는 대중 운동을 건설하는 방식보다 노동계급의 양보를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위해서 말이다.

“국가 전복”은 고사하고 제도 개혁을 요구하던 ‘기존 운동방식’조차 ‘원리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래서 시민회의 측의 주장에서는 지금의 조세제도나 복지제도가 불공평하다는 비판도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보장성 강화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시민회의의 제안에 동의할 수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