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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보장성 논쟁:
양보로는 정부 공세에 맞설 수 없다

“모든 진료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지방선거 직후 준비모임을 발족하고 건강보험 통합 10주년인 7월 1일을 전후로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시민회의를 준비하는 인사들은 현재 60퍼센트 정도에 불과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는 ‘새로운’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5월 30일 대학로에서 열린 ‘의료민영화 반대·건강보험지키기’ 공동행동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으로 단결해야 한다 ⓒ최규진

시민회의 측은 사용자와 정부의 부담도 늘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용자 정부 부담 비율 인상보다 보험료 인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회의 제안자들은 정부와 사용자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의료 공공성 운동을 ‘당위적 활동’, ‘메시아적 비전’, ‘원리주의적’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보건 운동판 양보론이라 할 수 있는 ‘시민회의’ 제안자들은 크게 봐 네 가지 배경을 갖고 있는 듯하다.

첫째 그룹은 참여정부 인사들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시민사회정책수석을 역임한 김용익 서울대 교수, 이성재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이 그렇다.

둘째 그룹은 진보신당 친화적인 지식인들이다. 정태인 교수와 이진석 교수, 박형근 교수 등이다. 2008년 분당 전에 민주노동당에서 사회연대전략을 주창했던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도 있다.

셋째 그룹은 최근 보편적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이상이 대표와 최병모 이사장)다.

마지막 그룹은 일부 노조 지도자들이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의 주축인 보건의료노조의 나순자 위원장과 사회보험노조의 김동중 위원장이 시민회의 제안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후퇴

‘복지 확대를 위해 정부·사용자뿐 아니라 국민도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의 핵심 내용이었다. 당시 진보진영은 복지 확대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다고 비판했다. ‘시민회의’의 제안이 ‘새로운 운동’이 아니라 민주당 식 ‘제3의 길’로 향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이재훈 민주노총 정책부장은 ‘시민회의 준비모임’에 우려를 표하며 “대중운동과 동떨어진” 대안이라고 비판했다.

“시민회의 준비모임은 보험료 인상액이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지금처럼 낭비적 지출 구조를 내버려 두고 정부가 약속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으로 보장성을 확대하면 내년에도 그 이듬해에도 또 보험료를 대폭 인상해야 할 겁니다. 아니면 다시 보장성을 축소하던가요.

“당장 올해 하반기에 정부가 보험료를 올리겠다고 할 텐데 그때 시민회의는 뭐라고 할 겁니까? 정부가 10퍼센트 제시하면 거기에 30퍼센트 더해서 올리자고요?

“명백히 운동의 후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보험료를 더 내고 덜 내는 문제가 아니죠.”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도 지난해 11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보험료 인상은 보험자에게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경제양극화로 인해 서민경제가 어렵고 정부의 사회보장지출이 지극히 낮아 보험료 인상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국가 지원비율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준으로 상향조정하고, 보험료 상한선 폐지 등 소득재분배 효과를 강화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보건의료노조와 사회보험노조가 조직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위원장 개인 명의로만 함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노조들 안에서도 만만찮은 이견이 있는 듯하다.

한편, ‘시민회의’ 출범을 앞두고 공공서비스노조는 산하에 있는 사회공공연구소 오건호 실장이 보건 운동판 양보론을 적극 주창하는 것에 시급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공서비스노조가 ‘시민회의’의 제안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 내에서 지지가 늘지 않아 ‘시민회의’가 언제 출범할지 그리고 보험료 인상 ‘운동’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나 ‘시민회의’는 기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에 반대해 오른쪽으로 분리해 나간 것이다. 이런 우경적 분열 시도는 운동에 해롭다.

지배계급의 경제 위기 부담 전가 공세가 강화되는 상황에서(지방선거 후 공공 지출 삭감 시도가 더한층 강화될 것이다), 양보론을 내세워 우리 편의 전열을 흐트러뜨릴 뿐 아니라 지배계급 공세에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공해 줄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운동 대열을 단단히 유지·확대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