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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복지 국가 없이 유지될 수 있을까?

세계 주요 정부들이 공공서비스와 복지 국가에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그러나 이 정부들은 얼마나 삭감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에서 복지 국가가 하는 구실을 살펴보는 이 글은 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에 실린 것을 번역한 것이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이 요구해 온 복지 국가를, 최근에 박근혜, 민주당 지도자들까지 나서서 그 필요성을 언급하는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영국] 보수당 장관인 이언 던컨 스미스는 사회보장제도가 붕괴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복지 국가를 공격하려고 이런 주장을 했다.

싱크탱크와 언론 전문가들은 공공서비스를 현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을 우리에게 강제로 주입하려 한다. 그러나 복지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20세기 초 영국 런던 동부의 한 구빈원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빈민들

한 장관은 최근 〈타임스〉에게 그런 공격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말했다. 기사화하지 말라고 요청하면서 말이다. “가치 없는 빈민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복지 지출을 줄이려는 시도는 새롭지 않다.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논리도 새롭지 않다. 노동당 우파인 프랭크 필드는 지난 20년 동안 똑같은 논리를 펴 왔다.

보수당은 경제 위기를 이용해 공격의 속도를 높였을 뿐이다. 보수당은 복지를 크게 줄일 뿐 아니라 남은 복지에서 민간 기업과 시장 메커니즘이 하는 구실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보수당이 복지 구조조정으로 성취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대다수 주류 언론은 “충족시킬 수 없는” 복지 수요 증가 때문에 전후 복지 국가 체제에서 당연시된 “관대한” 국가 지원이 더는 유지될 수 없다고 말한다.

영국 복지 국가의 아버지로 불리는 개혁주의 정치인 베버리지

이제 복지는 더는 1945년 베버리지 경과 노동당 정부가 생각했던 것처럼 모든 이가 국가 보험에 납부하고 나중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조야한’ 평등의 문제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안전망

자원이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복지는 안전망 수준으로 제한돼야 하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이들이 자기 복지를 지불하도록 “고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지 국가가 탄생기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세계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건강 수준과 교육 수준이 향상된 것은 오히려 축하할 일이다.

이런 진보를 문제로 본다는 사실은 이 체제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다.

물론, 복지 국가를 유지할 돈이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복지 체제를 운영할 재원은 있다. 그러나 재원을 재분배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려면 다수의 사람이 임금을 벌기 위해 일하면서 자본가 계급과 국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이런 사회 모델에서는 임금 노동을 하지 않는 이들, 즉, 나이든 부모, 장애인, 실업자 등은 빅토리아 시대식 표현을 빌리자면 “가치 없는 빈민”이 된다.

이 이데올로기가 하는 구실 중 하나는 노동계급을 두 부류 ― 복지 혜택을 받아 마땅한 책임감있는 좋은 노동자와 일하지 않고 국가의 혜택을 받으려는 ‘게으름뱅이’ ― 로 분열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조직하는 ‘복지’는 동시에 굉장히 복잡하고 중요한 계급투쟁의 장이었다.

지배계급은 대중의 노동을 착취해야 번영할 수 있다. 그 노동력은 질병, 사고와 영양실조로 망가질 수 있다. 그래서 사장들은 노동자들의 신체를 건강하고 활동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려면 건강보험이나, 실업 기간에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실업 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 경기가 회복됐을 때 노동자들이 생산에 투입돼 착취당하기 알맞은 신체와 조건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복지 국가의 또 다른 용도는 자본주의가 기층의 불만을 관리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 국가 덕분에 자본주의 체제는 이 사회가 모든 사회 구성원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더 손쉽게 퍼뜨릴 수 있다.

또, 현대 자본주의는 신세대 노동자들을 양육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신세대 노동자들이 이윤을 위해 착취당하려면 적당한 교육과 훈련을 받고 노동 규율을 몸에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사장들은 농민들이 젖소를 달래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노동자들을 달랜다. 정년에 이르러 굶어 죽을 일만 남는다면 노동자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 일하지 않을 것이다.

혁명가 칼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노동력 재생산 비용은 생물학적 요소뿐 아니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자본주의 나라가 복지 수준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 필요한 것이 변해 왔다는 점과 노동자들의 저항에 따라 이런 차이가 생겨난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의 복지 수준은 많은 유럽 나라들보다 낮다.

19세기에 영국 지배계급은 수송, 보건, 하수 설비와 교육에 돈을 써야 했다. 기업들의 이윤이 계속 증가하려면 자본주의는 적당히 건강하고 숙련되고 교육받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본가의 눈에] 쓸모없어 보이는 이들은 구빈원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영양 상태

영국 국가는 1899~1902년 남아프리카 보어 전쟁 당시 혼란에 빠졌다. 많은 청년이 참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과 영양 상태가 나빴기 때문이었다.

영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려면 체계적인 복지 국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더 많은 지배계급이 깨달았다. 그래서 1906년 자유당 정부가 학교 급식과 연금을 도입했다.

본가들은 영국이 독일과 미국과 성공적으로 경쟁하려면 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논쟁은 빈곤이 보통 사람들에게 주는 고통보다는 주로 빈곤이 자본주의의 경쟁적 이해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수동적으로 사고 팔리는 다른 상품 같은 물건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보통 임금뿐 아니라 ‘사회 임금’을 쟁취하려고 투쟁한다. 이 두 임금이 모두 어느 정도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말이다.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를 계기로 영국 지배자들은 복지 제도 확대가 필요하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복지 국가가 등장한 것은 기층의 압력 덕분이었다.

보수당 의원인 퀸틴 호그는 당시의 분위기를 잘 요약하는 발언을 했다. “만약 우리가 국민들에게 개혁을 선사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혁명을 선사할 것이다.”

노동당은 보편적 복지 제도를 도입했다. 이것과 국민의료보험(NHS) 덕분에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사장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원활히 잘 돌아가고 이윤이 많이 창출될 때만 이런 개혁들을 용납할 준비가 돼 있었다. 1970년대 중반 자본주의 장기 호황이 끝나자, 복지 국가는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저항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는 여전히 일정 수준의 복지 국가가 필요했다. 또, 하루아침에 노동자들의 저항을 억누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부 시장”, 하청, 민영화, 민간 연금 확대 등이 도입된 것이다. 이들은 사회보장 기능을 탈정치화하려는 시도들이다.

이런 조처들은 한편으로는 복지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지원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기 쉽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 부문의 노동자들을 단속하는 데 이용할 수 있었다. 몇몇 기업주가 여기서 돈을 버는 부수 효과도 있었다.

우리 지배자들은 지금 복지 비용을 깎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일정 수준으로 사회 지출을 유지해야 한다.

그들은 영국을 저임금 경제로 내세우려 한다. 이것은 영국의 상당히 높은 숙련 수준을 낮은 임금과 결합시키려는 것이다.

심각한 구조조정은 지출을 줄이려는 의도와 건강하고 숙련된 노동자들을 원하는 산업의 필요 사이에 심각한 긴장을 유발할 것이다.

사회 지출은 계급 체제를 반영한다. 노동자들은 복지 서비스 유지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은 돈을 지불한다. 노동자들이 내는 세금은 불비례적으로 많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동시에 복지 국가를 가능케 하는 사회의 부를 생산한다.

오랜 공격이 있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복지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거의 대다수 사람이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배자들은 복지 서비스를 삭감하는 데 성공할 때마다 자신이 승리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보수당이 복지 혜택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일정 수준의 사회 지출이 필요함을 잘 안다. 자본주의는 복지 국가를 완전히 해체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적 위기의 심각성과 영국 자본주의의 취약성 때문에 우리 지배자들은 사회 지출을 줄이고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성공할 것인가는 우리편의 저항이 얼마나 강하냐에 달렸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