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이 남긴 교훈

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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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다함께> 15호 | 발행 2003-09-20 | 입력 2003-09-20

8월 20일부터 파업을 벌여 온 화물연대 지도부는 9월 5일 파업 철회 선언과 함께 사실상 ‘백기 투항’을 했다. 바로 전날 총회에 모인 조합원의 압도 다수가 파업을 계속하자고 투표했는데도 그랬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던 김종인 화물연대 의장은 “추석을 앞둔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파업을 끝낸다고 말했다.      

5월에 화물연대는 정부와 화주ㆍ고용주에 맞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의 열쇠는 항만 봉쇄, 도로 점거 등으로 물류를 마비시킨 데 있었다.

당시에 <조선일보>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물류를 마비시켜 나라를 결딴낼 수 있는 강자들”이라며 두려움을 나타냈다.  

노동자들은 포스코, 부산의 주요 부두, 의왕 내륙 컨테이너 기지 등 물류의 심장과 동맥을 봉쇄했다. 자본가들은 하루에 1천5백억 원의 손해를 봤다.

파업 초기에 노동자들이 포항 진입 도로를 장악했을 때, 업체 사장들과 심지어 포항 시청도 노조의 통행증을 받아가야만 했다.

2만 명의 화물연대 노동자가 20만 대의 화물차 운행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과단성 있는 이런 행동 때문이었다. 포항에서만 1인당 12만 원을 내며 하루에 1백30명씩 화물연대에 가입했다.    

당시에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싸우지 않으려는 지도부를 통제하고 갈아치우면서 투쟁했다. 부산에서 ‘선 복귀 후 협상’을 내세운 지도부의 안은 두 번이나 부결됐고 지부장은 교체됐다.

‘막가는’ 노무현   

화물연대 파업은 노무현의 반노동자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노무현은 부시에겐 나긋나긋한 ‘이지맨’이지만 노동자에겐 ‘막가파’였다.

5월에 화물연대 파업에 당한 뒤 노무현은 곧 화물연대 활동가 13명을 구속했다. 7월엔 한보철강 앞에서 농성하던 화물연대 충청지부에 경찰력을 투입해 88명을 연행했다.

5월에 약속한 것이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7월 27일 화물연대 포항지부 고성학 씨가 빚 독촉에 시달리다 자살한 데서도 드러났다.  

8월 초부터 노무현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공안기관대책회의’의 새 버전인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재파업에 대비했다. 8월 25일 경제신문 합동기자회견에서 노무현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문제를 풀겠다는 계획은 부득이 접고 … 단호하게 법과 원칙으로 대응해 나가겠다. 그 법이 옳든 그르든 이젠 그것도 묻지 않겠다”며 ‘막갔다.’  

파업이 시작되자 노무현은 모든 협상을 거부하고 화물연대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 등 초강경으로 나왔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경유세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고 위수탁 계약은 해지됐다. 거의 1백 개 중대, 2만여 명의 경찰과 2천여 대의 차량이 동원돼 4백여 명의 노동자를 폭력 연행했다. 화물 파업을 공격하는 데서 노무현은 보수 언론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다.  

산업자원부와 양회협회가 ‘태스크포스 팀’을 운영하며 촌지, 광고비, 술값 등 4억여 원을 언론에 뿌리며 화물연대를 마녀사냥하고 복귀율을 조작해 온 것도 드러났다.  

그럼에도 화물연대 재파업은 현장 노동자들의 투지와 힘을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노동자들의 놀라운 투지로 파업이 끝날 때까지 복귀율은 5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화물 노동자들의 투지는 9월 1일 밤과 2일 새벽에 벌어진 일련의 전투로 폭발했다.

9월 1일 서울과 부산에서 총 8천여 명이 참여한 ‘결의대회’가 끝나고 노동자들은 부산 신선대ㆍ감만 부두, 서울 한남ㆍ가양ㆍ성산대교와 의왕 내륙 컨테이너 기지 등에서 수백 대의 화물차를 동원해 도로 점거와 항만 봉쇄를 했다. 부산과 서울의 화물 운송량은 즉각 30∼40퍼센트 줄어들었다.

이것은 화물연대 지도부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에 의해 조직됐다. 화물연대 지도부는 “현장에서 먼저 차량 시위를 시작했고 뒤늦게 지도부가 보고를 받았다”며 “현장 조합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곤혹스러워했다.

화물연대 파업의 효과가 위력을 발휘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이제 화물연대는 기로에 서게 됐다. 계속 산개ㆍ재택 파업으로 스스로 동력을 갉아먹을 것이냐, 아니면 다시 5월의 찬란한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냐.

그러나 화물연대 지도부는 자신들의 방치 하에 일부 간부들이 자진출두하며 조합원들에게 업무복귀를 지시한 것을 이유로 9월 4일 조합원 총회를 소집했다. 이 때부터 지도부가 청와대와 물밑 협상을 하고 있었음을 지도부는 나중에 시인했다.  

총회 결과 경인지역에서 4백41명 가운데 4백19명, 부산지역에서 1천17명 가운데 8백1명이 파업을 계속하자는 데 표를 던졌다.  

사실 파업을 계속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불필요한 물음이었다. 진정한 문제는 계속 산개ㆍ재택 파업을 하느냐 아니면 다시 ‘5월의 전술’을 택할 것이냐였다. 그러나 화물연대 지도부는 조합원들을 다시 산개시켰고 다음 날 오후 파업 철회를 선언했다.

마지막 불꽃

‘막가는’ 노무현에 맞서려면 우리 편도 단호해야 했다. 그러나 두 번이나 파업을 연기하던 화물연대 지도부는 산개ㆍ재택 파업 전술을 택했다. 이것은 우리 편의 힘을 오히려 약화시켰다.  

노무현은 두 팔에 온갖 무기를 들고 휘두르는데 우리는 스스로 한쪽 손을 묶고 싸우는 격이었다.

<조선일보>는 “도로 무단점거, 화물 반ㆍ출입 저지, 공장 출입문 봉쇄, 비조합원에 대한 파업 참가 강권 등 지난 5월 연출됐던 폭력적인 모습이 파업 이틀째로 접어들면서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지난 5월 연출됐던’ 방법을 쓰지 않고서는 화물연대 2만 조합원을 제외한 나머지 18만 대 화물차의 운행을 막을 수 없고, 파업의 효과도 작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동료들과 흩어져(산개) 집에서(재택) 고립된 채 언론의 왜곡과 비난에 시달리던 조합원들 가운데 소수는 하루에 30만 원씩 쌓이는 빚을 카드로 돌려 막다 견디지 못해 복귀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입장도 화물연대 지도부와 다르지 않았다. “수송 방해, 도로 점거, 항만 봉쇄 등 돌발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율하고 있다”는 게 민주노총의 말이었다. 화물연대 재파업 기간에 노무현 정부가 개악된 주5일제 노동법을 통과시켰는데도 민주노총의 항의는 충분하지 않았다.  

철도 파업에 대한 경찰력 투입 이후에 가진 <한겨레> 인터뷰에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가 개혁에 성공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무현 ‘개혁’에 대한 여전한 혼란과 기대, 정권과 체제에 맞선 투쟁에서의 머뭇거림이 민주노총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화물연대와 민주노총 지도부는 자본와 노동 사이에서 중재와 협상의 역할을 맡아 투쟁을 협상에 종속시키고,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흔히 배신적 타협을 하는 노조 지도부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5월과 달리 노동자들이 ‘재택’에 ‘산개’해 있었기에 파업을 철회하는 지도부를 통제할 수 없었다.

화물연대는 처음 투쟁에 나서 승리를 쟁취한 신생 노동자 부문이었고 따라서 낙관적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화물연대 투사들은 지도부의 배신적 타협에 분노했지만 무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법과 여론’에 굴복한 지도부를 대체할 대안적인 정치와 전술과 조직이 필요했다.  

지난 5월의 승리는 현장 노동자들의 전투성과 자신감의 중요성을 보여 주었다. 이번 9월의 패배는 노조 지도부의 체제 타협적 관점과 자기 제한적 전술의 위험성을 보여 주었다.

노동자들의 전투성과 자신감은 노동자들의 힘을 아래로부터 최대한으로 집중해, 체제에 도전하는 정치ㆍ전술ㆍ조직이 필요하다.  

지난 5월의 승리가 워낙 찬란했기에 이번 패배가 더 쓰라리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패배에서 쓰디쓴 교훈을 이끌어 내는 게 필요하다.  

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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