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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김태훈 씨의 독자편지에 대한 반론:
북한의 군사 공격을 우선적으로 비판한 것이 부적절했는가

이 글은 김태훈 독자의 독자편지에 대한 반론이다.

김태훈 씨도 지적했듯이 〈레프트21〉 기사는 대북 압박이라는 요인을 무시한 채 북한 내부에서만 원인을 찾으려 하는 이른바 ‘논평가들’의 견해를 공유하지 않았다. 또, 그 기사는 “북한의 군사 공격을 분명히 비판해야”한다는 김태훈 씨의 주장에 부합하는 글이었다. 그 기사는 이 두 가지 점 – 북한 군사 공격 비판과 미국 대북 압박 비판 - 를 결합시켰다.

그러나 김태훈 씨는 그 기사에 이견이 있다고 말한다. 김태훈 씨는 “북한의 내부 사정을 주요(그것도 첫째) 원인으로 분석하는 게 적절할까?”하고 질문한다. 김태훈 씨가 이런 문제제기를 한 것은 단지 사실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닐 것이다. 이른바 ‘논평가들’에 대한 김태훈 씨의 지적에서 볼 수 있듯이, 아마도 〈레프트21〉의 입장이 뜻하지 않게 우익의 대북 악선동에 힘을 싣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노파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파심일 뿐이다. 일단 그 기사의 제목 자체가 북한이 아니라 우익을 공격하는 것이다. 또, 글의 절반 이상을 미국 정부, 이명박 정부와 우익의 대북 위협에 반대하는 주장을 펴는 데 할애했다.

다른 한편, 사실 자체를 보자. 구체적 상황을 봤을 때, 이번 사건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북한 내부 사정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사건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일상적으로 미국 제국주의와 한국 정부의 협공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서해교전과는 달랐다. 3차에 걸친 서해교전에서 한국 해군 함정의 직접 공격과 위협이 충돌을 발생시키는 주요한 계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전 상황이 아니었고, 한국 해군과 무방비 상태의 연평도 민가가 기습 공격을 받았다.

또, 북한 정부의 주장처럼 북한군이 제국주의 군대의 침략에 맞서 ‘자위권’을 행사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컨대, 미군 침략 아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이 반침략 투쟁 과정에서 미군과 동맹들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비판할 순 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런 외부 공격에 맞선 불가피한 대응이 아니었다.

김태훈 씨도 이 점은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김태훈 씨가 “북한의 군사 공격을 분명히 비판”하고 사망자들이 “무고한” 희생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대중의 분노는 이해할 만하고 정당”하다고 여길 근거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혹시 김태훈 씨가 이른바 ‘북한 문제’를 볼 때 한 측면만을 보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나는 북한 문제를 볼 때 미국 제국주의의 약소국 북한 압박이라는 의심의 여지 없이 “압도적이고 근본적인” 점뿐 아니라 또 다른 “압도적이고 근본적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북한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축적을 사회의 최우선 순위로 두는 자본주의 계급 사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지배자들이 현재 북한 계급 지배 체제의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인 3대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군사적 모험을 벌였다고 보는 것은 전혀 무리한 추측이 아니다.

북한 지배자들의 행동을 언제나 미국 제국주의의 대북 압박이라는 프리즘으로만 보면 이들이 ‘외부 위협’을 근거로 자본주의 계급 체제 유지를 위해 내부적으로 벌이는 온갖 일들에 적절한 입장을 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올바른 반제국주의 투쟁 전략을 내놓을 수도 없다.

이것은 단지 북한만이 아니라 이란 등 미국 제국주의의 압박을 받고 있는 다른 약소국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예컨대, 이란 정부는 툭하면 변경 지역의 소수민족들(쿠르드족 등)을 탄압한다. 근거는 소수민족 지역이 미군 침투의 근거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이란 정부의 반복적 소수민족 탄압 덕분에 소수민족 지역에 미국에 동조하는 세력이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사실, 이란 정부의 소수민족 탄압은 제국주의 위협을 빌미로 내부 억압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인데, 그것이 오히려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비슷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김태훈 씨가 올바르게 “무고한 희생’이라고 말한 그런 희생자들을 발생시키는 행동을 북한 정부가 반복하면서 자기 통치를 정당화하려 하면 할수록 한국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정서가 확산되는 것이 저해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또 한국 지배자들이 북한 정부의 행동을 빌미로 국내 계급 투쟁을 억누르기 더 손쉬워 진다.

따라서 〈레프트21〉의 논조는 단지 북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경우에는 (미국의 대북 압박을 잊지 않으면서도) 북한 지배자들을 분명하게 비판하는 것이 한반도의 반제국주의 운동을 전진시키는 데서 반드시 필요한 입장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