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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영 교수 특별 기고:
핵을 원자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최무영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이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겸임 교수다. 과학분야의 베스트셀러인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의 저자이며, 《서울대 명품 강의》를 공저했다.

핵이란 핵에너지를 줄여서 쓴 것으로, 말 그대로 핵에 근원을 지닌 에너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핵에너지를 우리 사회에서 신문을 비롯한 매체에서는 흔히 원자력이라고 표기한다. 원자력이란 글자 자체는 원자힘, 곧 원자와 원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뜻하며, 따라서 핵에너지를 원자력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잘못된 용례다. 그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관련된 물리학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힘과 에너지

무엇보다도 힘(force)과 에너지(energy)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엄밀한 정의를 사용하는 물리학에서 에너지는 크기만을 지니고 있으나 힘은 크기와 함께 작용하는 방향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물체가 힘을 받아서 움직이면 그 에너지가 변할 수 있으나, 힘을 받아도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힘의 방향에 수직으로 움직이면 에너지는 변하지 않는 반면에 힘을 받아서 움직이지 않아도 에너지가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료를 지불하고 쓰는 전기나 석유는 물론이고, 살기 위해서 먹는 음식물도 힘이 아니라 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이다. 사실 에너지는 사용해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다만 쉽게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바뀌는 것이므로 에너지 문제란 전체 양의 문제가 아니라 그 형태, 곧 등급의 문제이며 이는 이른바 엔트로피에 관한 열역학 둘째 법칙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아무튼 에너지를 힘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완전히 오류다.

다음으로 원자와 핵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대 물리학의 이론 체계에서 모든 물질은 결국 원자(atom)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원자는 제일 가벼운 수소부터 제일 무거운 우라늄까지 모두 92 종류로서 물질은 이러한 원자들이 직접 구성하거나 또는 몇 개의 원자들이 적당히 묶여진 분자들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쇠는 철 원자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며, 산소는 두 개의 산소 원자가 묶여진 산소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묶이면 물 분자가 되는데 이러한 물 분자가 10의 22제곱(천억이 천억 개 모인 것) 개가 모이면 물 0.3그램쯤 된다.

한편 모든 원자는 가운데에 핵(nucleus)이 있고 주위에 하나 이상의 전자를 지니며 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 들로 이루어져 있다. 양전기를 띤 양성자의 개수와 음전기를 띤 전자의 개수는 같아서 전체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인데 원자번호라 부르는 이 개수에 따라 원자의 종류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수소는 하나의 양성자로 핵이 이루어져 있어서 원자번호가 1이며 산소는 8, 가장 무거운 우라늄은 92이다.

원자와 원자 사이에는 전자를 매개로 해서 전기적인 힘이 작용할 수 있고, 이에 의해 묶여져서 분자와 물질을 이루게 된다. 또한 중성 원자 사이에도 양전기와 음전기의 중심이 살짝 나뉘는 극갈림 현상에 의해 약하지만 힘이 작용하며, 일반적으로 이를 원자힘(atomic force)이라 부른다. 이를 이용해서 거의 원자 수준의 크기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장치가 원자힘 현미경(atomic force microscope)이다.

한편 원자 자체는 보통 변하지 않아서 그것이 구성하는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유지하는데, 그 이유는 원자를 결정하는 핵이 매우 안정하기 때문이고 이는 결국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핵력(nuclear force)이라고 부르는 매우 강한 힘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라늄 같이 무거운 원자는 적당한 상황에서 핵이 쪼개져서 다른 원자들로 바뀔 수 있다. 이를 핵분열이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이를 핵에너지(nuclear energy)라고 부르며, 이는 결국 (약한 원자력이 아니라) 강한 핵력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일단 한 원자의 핵분열이 시작하면 그 결과물이 다른 원자들의 핵분열을 이끌게 되는 사슬 반응이 일어나고, 따라서 원자들의 핵분열은 급속히 진행한다. 이에 따라 엄청난 양의 핵에너지가 급격하게 방출되므로 가공할 파괴 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핵폭탄 등의 핵무기다. 흑연이나 물 등을 써서 적절한 방법으로 사슬 반응을 늦추면 핵분열의 진행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천천히 방출하는 핵에너지를 이용해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에너지를 얻는 시설이 핵발전소(nuclear power plant)다.

오류의 근원

원자력발전은 약한 힘인 원자힘을 이용해서 발전을 한다는 뜻이 되는데, 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고리, 월성, 울진, 영광 등에 있는 시설은 물론 핵발전소다. 이러한 오류의 근원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아마 역사적으로 핵과 원자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곧 원자와 핵의 구조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에너지가 뭉뚱그려서 원자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원자에너지(atomic energy)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이는 현재에도 사찰로 유명해진 ‘국제 원자 에너지 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등 일부 이름에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이는 물론 잘못된 관습에 의한 것이며, 원자력이란 용어는 이보다도 더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핵과 원자력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단순한 혼동이 아니라 어떤 일관성이 있는 듯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원자력 발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원자력 병원, 원자력 문화 등에서 보듯이 원자력이라는 용어는 대체로 긍정적인 뜻을 심어 주려는 곳에 쓰이는 것 같고 반대로 핵 사찰, 핵무기, 핵폭발, 핵 실험, 핵폐기물, 핵 오염 등 무엇인가 나쁜 뜻으로는 원자력 대신에 핵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억지로 해석하더라도 조절하지 않은 핵분열 반응에 관련되면 핵, 조절하는 반응에 관련되면 원자력이라고 쓰는 것도 아니다(예를 들어 필자는 원자력 폐기물, 원자력 오염 같은 용어를 들어 본 기억이 없다). 마치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으로 오인하도록 만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드는데, 만일 굳이 잘못된 관습을 따라 원자력이라는 용어를 고집한다면 북한의 핵 개발도 원자력 개발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