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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가 끊이지 않는가:
잔혹하고 질환에 걸린 체제가 낳는 참극

전쟁터도 아닌 초등학교에서, 6~7세 아동, 교사, 교직원 등 총 28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12월 14일 미국 코네티컷 주 뉴타운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는 단일 사건으로는 사상 둘째로 많은 사망자를 냈고, 대부분이 어린 아이들이었다.

어떤 아이는 무려 11발이 넘는 총탄을 맞았다고 한다. 아이들을 지키려다 희생된 교사,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총소리 쪽으로 달려간 상담치료사 등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비극이다.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은 깊은 슬픔 속에서 의문을 갖게 된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가?

가장 흔한 제기는 범인인 아담 랜자가 정신질환자라는 것이다. 많은 언론은 랜자가 자폐아라거나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둥 추측을 남발했다. 총기수집광인 랜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학대했기 때문에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실업과 가난, 소외 정신병과 컴퓨터 게임에 총기 난사의 책임을 미루는 지배자들의 말은 가증스런 거짓말이다. ⓒ사진 JOSALEE THRIFT(플리커)

랜자의 정신은 분명 온전치는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28명을 잔혹하게 학살한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총기 난사의 원인이라는 설명은 상황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

사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범죄의 가해자기보다는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정신질환자가 저지르는 살인은 전체 살인 사건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반대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미국인의 약 25퍼센트는 한 번 이상 강력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컴퓨터 게임을 탓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연구 결과는 그 반대를 보여 준다. 사상 최대 규모의 희생자를 낳은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를 비롯해 여러 총기 난사를 연구한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와 미심쩍은 연구 조사 결과와는 달리, 총격 가해자들과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 간의 상관관계를 보여 주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한편, 미국에서 민간인이 소유한 총기 수는 공식 통계로도 2억 5천만 정 이상으로, 전 세계 민간인 보유 총기 수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유통 총기까지 생각하면, 모든 미국인이 한 자루 이상의 총을 갖고 있는 꼴이다.

이렇게 총이 많으니 총기에 의한 살해가 일어나기 더 쉬운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올해에만 9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총에 맞았다.

그런데도 미국 공화당은 총기 규제에 한사코 반대한다. 미국 민주당이 제안하는 총기 신청 절차 강화, 대용량 탄창 추가 생산 금지 등도 몹시 꾀죄죄한 수준이다.

미국 지배자들은 ‘총기와의 전쟁’을 꺼린다. 아마도 전미총기협회와 군수회사들의 대대적인 로비의 영향이 클 것이다.

공포

총기 사용 지지자들은 공포와 범죄에 노출된 평범한 사람들이 자위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을 품도록 부추기고, 서로 믿지 못하게 만든다. 불신이 사회에 만연하면, 노동계급이 단결하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의료 과실 사망자가 있다고 해서 의학이 죽음의 원인은 아니듯, 총은 살해의 도구일지언정 원인은 아니다. 미국처럼 총기가 합법이고 총이 수백만 정 풀려 있는 캐나다의 총기 살해 희생자 수는 미국의 1.5퍼센트밖에 안 된다.

쥐를 박멸하려면 쥐가 번식하는 하수구도 청소해야 한다. 총기 범죄를 박멸하려면, 왜 사람들이 절망과 고통 끝에 무차별 범죄를 저지르는 지경으로 내몰리는지를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노동자·서민은 열심히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든데다, 인종·성에 따른 차별에 늘 시달린다. 실업과 빈곤은 범죄를 낳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가난 그 자체가 노동자·서민에게 절망이고 공포다. 가난은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소외감을 깊게 한다.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인 네 명 중 한 명은 정신치료가 필요한 상태고, 17명 중 한 명은 ‘심각한 정신병’에 시달린다고 한다. 절망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일 때 사람들은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가난과 소외가 만연한 나라에서 국가 당국이 앞장서서 군사주의적 문화를 구축해 왔다. ‘서부 개척 시대’ 이래로 수백 년 동안 갈등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해소해 온 ‘미국적 전통’은 제국주의 역사 속에 더 강화됐다. 빈곤과 소외에 찌든 개인들이 이런 문화에 동조하면서, 무차별 총기 난사와 같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증오를 ‘해소’하려 들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뉴욕 시장 블룸버그 같은 자들이 총기 규제를 떠들면서 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것은 위선적이기 짝이 없다. 사실, 범죄를 방지한다며 범죄를 부추기는 꼴이다. 블룸버그는 개인 재산이 2백50억 달러(약 27조 원)에 달하는 갑부로, 자신이 삭감한 복지 예산에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버락 오바마는 감동적인 연설로 심금을 울렸지만, 무인전투기로만 파키스탄 아이 1백68명을 학살한 ‘총기 난사 국가’의 수장이 이 비극을 중단시키겠다고 하는 것도 큰 신뢰가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총기 난사 같은 비극을 진정으로 방지하려면, 그 뿌리인 가난과 소외를 쓸어내야 한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에 맞설 때, 모두에게 절망만 낳는 비극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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