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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혁명 발발 2주년:
튀니지에서 가자지구까지

12월 17일은 북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튀니지에서 26살 청년 부아지지가 분신한 지 2주년 되는 날이었다. 그의 죽음은 튀니지 민중이 투쟁에 나서게 했고, 23년간 호령한 독재자 벤 알리를 끌어내렸다.

튀니지 혁명에 영감을 받아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연쇄적으로 혁명이 벌어졌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아랍의 맹주’를 자임한 이집트에서는 30년을 철권통치한 무바라크 정권이 18일 만에 무너져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2년 동안 혁명을 밀어붙이며 거듭 급진화한 아랍 민중 2012년 2월 군부에 반대하는 이집트인들의 시위. ⓒ사진 출처 호쌈 엘하말라위

리비아, 예멘에서는 독재자가 비참한 죽음을 맞거나 외국으로 쫓겨났다. 시리아 민중은 맨주먹으로 혁명을 시작해 21개월 동안 싸운 결과 수도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나라들은 모두 30~40년 동안 독재에 시달렸다.

친미왕정이 다스리고 있고 미국 제5함대의 근거지인 바레인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이 밖에도 ‘아랍의 봄’ 기간에 쿠웨이트, 요르단, 모로코, 알제리 등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처럼 혁명이 삽시간에 이웃 나라로 확산된 것은 아랍 전역에서 민중이 겪는 고통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극단적인 양극화와 청년 실업, 억압적인 독재 정부와 이를 지탱하는 국가 폭력에 시달렸다.

2008년에 본격화한 세계경제 위기가 양극화와 실업을 더 악화시켰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량 등의 물가가 오르면서 더는 참을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은 오랜 두려움을 떨치고 싸움에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한 나라에서 혁명이 성공하자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다른 나라로 번져 나갔다.

혁명이 발발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아랍 민중은 계속 싸우고 있다.

최근 이집트인들은 새 정부에 반대해 수십만 명이 전국적인 시위를 연거푸 벌였다. 현재 이집트에서는 새 헌법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실시 중인데, 정부는 거센 반대 여론 때문에 경찰뿐 아니라 군인까지 12만 명을 동원해 투표소를 지키고 있다.

12월 초 튀니지에서도 계속된 실업과 빈곤, 혁명 전과 똑같은 국가 폭력 때문에 벌어진 시위가 삽시간에 주변 도시로 확산됐다. 대통령은 12월 17일 혁명 기념 행사 도중 돌세례를 맞아 황급히 피신하는 수모를 겪었다.

리비아는 서방의 간섭 속에 정부를 구성했지만, 혁명의 중심지였던 벵가지에서 미 대사와 치안 책임자가 잇따라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요르단에서는 연료 보조금 삭감에 항의하며 시작된 시위가 수십만 규모로 발전해 왕정을 위협했다. 쿠웨이트와 바레인, 레바논, 수단에서도 정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주류 언론은 이처럼 아랍에서 투쟁이 계속되는 것을 두고, “부족과 종파 간 분열”, “보수적 이슬람주의” 때문이라고 치부한다. 여기에는 아랍 정치의 후진성을 강조하고, 아랍인들이 서방의 자유시장 제도와 이른바 ‘국제 사회의 질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아랍 전체의 축소판’ 이집트

그러나 진정한 혁명은 독재자 퇴진 같은 사건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몇 년에 걸친 과정을 겪으며 발전한다. 지난 2년은 아랍 민중이 자신의 대안을 실험하고, 지배계급이 껍데기만 양보한 현실을 간파해 더 근본적인 혁명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기간이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 준 것은 ‘아랍 전체의 축소판’이라는 이집트다. 이집트 민중은 지난 2년 동안 반혁명의 장벽을 거듭 넘으며 급진화했다.

이집트인들은 혁명 직후 군부가 “혁명의 수호자”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군부는 전체 산업의 20퍼센트를 소유하고 독재를 지탱했던 자들이다. 결국 군부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혁명가들을 수차례 학살했고, 이 때문에 군부의 위선이 드러났다. 군부는 또 혁명가들을 고립시키고 콥트교와 이슬람 사이의 종단 간 갈등을 부추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 결과, 이슬람주의 정치운동 단체이자 수십 년간 군부의 탄압을 받은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했다. 2012년 6월에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출신 대통령 무르시는 초기에 80퍼센트에 이르는 지지를 받았다. 불과 반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는 지배계급에 도전하는 대신 그 일부가 돼, ‘치안 질서를 회복’하고 ‘기업하기 좋은 이집트’를 만들려고 한다. 최근 그들이 기업가와 군부에 많은 권한을 주는 헌법안을 ‘날치기’하고 국민투표를 강행한 까닭이다.

현재 반정부 시위대는 “무르시가 혁명을 훔쳐 갔다”며 형식적인 민주화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와 여성의 권리, 노동조합 권리, 복지, 사회 정의 등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튀니지 민중도 독재 시절 탄압받던 이슬람주의 정당을 정부로 선출했으나, 일자리가 줄어들고 국가 폭력이 계속되자 실질적인 사회 정의를 요구하며 다시 싸우고 있다. 요르단에서는 시위대가 왕정 타도를 외치고 있다. 1970년 요르단 군대가 팔레스타인 게릴라 수만 명을 학살한 이후 유지된 금기가 깨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아랍 민중은 빈곤과 국가 폭력을 몰아내고, 모든 종교와 종파, 부족이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들 잠재력을 보여 줬다. 그 잠재력은 노동계급의 주도 하에 민주주의적 요구를 성취하며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연속혁명으로 발전할 때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