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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바다출판사):
여든 살 페미니스트가 돌아본 미국의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의 공과

이 책은 1960년대 말에 등장한 미국의 여성해방운동(‘제2세대 여성운동’ 혹은 ‘제2물결 여성운동’이라 불린다)의 주요한 활동가인 필리스 체슬러(1940~)가 쓴 회고록이다. 미국에서 2018년에 출간됐고, 한국에는 2021년 번역돼 나왔다.

필리스 체슬러는 페미니스트 정신분석학자로, 1969년 여성심리학회를 공동 설립하고, 1970년 뉴욕시립대학 리치먼드칼리지에 최초로 여성학 과정을 개설했다. 그의 첫 책인 《여성과 광기》(1972)는 세계적으로 300만 부 이상 팔렸고, 현재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여겨진다.

여든의 노장 페미니스트 체슬러는 이 책에서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빛나는 순간들과 함께 어둡고 미숙했던” 과거도 돌아본다. “우리가 한 최선의 작업이 보존된다면, … 미래 세대는 우리의 어깨를 딛고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필리스 체슬러 지음, 바다출판사, 460쪽, 18500원

1960~1970년대 미국의 여성해방운동은 제2세대 여성운동의 선구자로서 국제적 영향을 미쳤고, 급진 페미니즘을 부상시켰다.

급진 페미니즘은 사회의 근본 분열이 남녀 사이에 있다고 보며, 여성 차별의 근원을 남성 지배 시스템, 즉 계급사회와 별개로 작동해 온 가부장제로 설명한다(가부장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람마다 달랐다).

급진 페미니즘은 오늘날에는 다양한 조류로 분화했는데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 2015년 이후 등장한 페미니스트들 중 일부는 스스로를 “래디컬[급진]”이라고 칭하며 미국의 제2세대 페미니즘을 자신의 본류로 삼았다. 이들은 생물학적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분리주의 성향이 강하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진아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교차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들 중에 상당수가 급진 페미니즘을 수용한다. 예컨대 지난 2월에 열린 ‘체제전환운동포럼’의 페미니즘 세션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닻별 활동가는 2세대 페미니스트 수잔 브라운밀러를 긍정적으로 인용하며 발제했다.(수잔 브라운밀러는 그의 책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1975)에서 ‘강간은 남성 지배를 위한 수단’이라는 유명한 주장을 했다. 이 회고록에도 등장한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주디스 오어가 말했듯이 “제2물결 여성 해방운동은, 그것을 비판하고 또 다른 전망을 제시하고자 할 때도, 여전히 활동가들과 이론가들에게 핵심적 기준이다.”(《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책갈피))

이런 점에서 미국의 제2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경험을 돌아보는 것은 오늘날에도 의의가 있다.

개척자들

1960년대 말 미국에서 여성운동이 부상한 배경에는 그 이전 세대보다는 나아졌지만(여성의 고등교육 확대, 노동시장 진입 확대, 피임약 개발 등), 지금 사람들이 보면 충격을 받을 정도로 성차별이 심각한 현실이 있었다.

당시 낙태는 완전 불법이었다. 체슬러는 19세 때 처음 낙태를 한 자신의 경험을 회고한다. 그는 혹시라도 죽을까 봐 겁이 났지만 펜실베니아 애실랜드의 유명한 의사에게 진료받기로 예약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는 없었다. “끊임없이 뒤를 쫓는 당국보다 한발 앞서 도망친 것이다.” 결국 체슬러는 의사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마취제도 없이 시술을 받았다.

그가 페미니스트가 되자마자 했던 활동은 여성들의 낙태를 돕는 일이었다. “낙태는 그야말로 첩보 작전 같아서, 발각당해 체포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여자들은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며 시술을 받았다.”

체슬러는 1970년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국심리학회 연례회의에 참석해 정신건강 분야 전문가들이 여성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여성을 낙인 찍고 학대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신분석학에서는 남성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반면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선천적으로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정의돼 있었다. 청중석에서 “이 여자들은 남근 선망이 있구먼” 하는 야유가 나왔다.

직후 체슬러는 《여성과 광기》를 출간했다. 그는 억압과 혐오를 경험하며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갖게 된 여성들이 종종 ‘정신질환’이 있다고 진단되는 반면, 가해자들의 물리적·성적 폭력은 대부분 축소됐다고 폭로했다. 취약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사의 만연한 성폭력 문제도 폭로했다. 이후 체슬러는 미국 전역에서 남편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갇히거나 강제로 ‘정신질환’ 치료를 당한 여성들에게 수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또, 체슬러와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강간 문제를 공론화하고, 포르노그래피를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또한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양육권을 빼앗기거나 강간범을 살해해 기소된 여성 등을 도왔다.

체슬러는 2세대 페미니스트들을 “개척자”라고 말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씨발년’, ‘미친년’[.. 이었던] 우리가 갑자기 역사를 움직이는 주요 세력이 되었[다.]

여성들 간의 잔인성

그런데 이 회고록은 당시 페미니스트들 간 행해진 트래싱*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을 다룬다. 책 제목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인 이유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들이 종종 “자매애는 강하다”라고 선언하지만, 그런 자매애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체슬러는 고백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질투의 대상이 되는 여자를 헐뜯거나 따돌렸다. … 그런 경험은 때로 사람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

“재능 있는 여성들을 공격하는 것은 페미니즘 운동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기량이 뛰어나고 표현에 능통한 여성들 ― 유명하고, 기명 기사를 쓰고, 출간 계약을 하고, 그야말로 어떤 것이든 능력이 있는 여성들 ― 은 혁명에 대한 반역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책에는 여러 사례가 나온다. 체슬러가 《여성과 광기》를 본인 이름으로 출간하려고 했을 때 그는 페미니스트 동료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만일 모든 여성이 평등하다면, 어떤 여성도 다른 여성보다 더 환영받거나 더 많이 알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책 발간으로 유명해진 뒤로 그는 한동안 왕따가 됐다.

1970년대 중반 레드스타킹스는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저명한 저술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CIA 첩보원이라고 몰아세웠다.(체슬러는 이 책에서 글로리아가 CIA에게서 후원은 받았지만 첩보원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글로리아에게 각종 언론 매체의 관심을 빼앗긴 NOW(전미여성기구) 초대 회장 베티 프리단은 진실이 뭐든 이 문제를 일부러 키웠다.

서로 간 적대가 얼마나 심했던지 당시 NOW의 회장이 되려는 후보자는 무장한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녔고, NOW의 캘리포니아 지부에서는 분회장 자리를 두고 경쟁 후보를 살인 혐의로 신고하는 일도 있었다(신고당한 후보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체슬러는 “다들 부인하지만, 60년대 말부터 70년대에 행해진 트래싱은 결국 우리의 운동을 멈춰 세운 이유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오늘날 페미니스트 간에도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온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넘어선 비방, 특정 견해를 두고 무리를 지어 캔슬하는 문화 등.

예컨대 2020년에 윤김지영 교수와 은하선 씨는 각각 예정된 대학 페미니즘 특강을 취소당했다. 전자는 윤김지영 교수가 트랜스젠더 비판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트랜스젠더 포용적 페미니즘 단체들이 항의했기 때문이었고, 후자는 정반대로 은하선 씨가 트랜스젠더 비판적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한 것을 두고 ‘여성 혐오’라며 숙대 내 트랜스젠더 비판적 페미니스트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전주 페미니즘 예술제에서는 페미니스트 작가 3인이 ‘성노동’ 지지 입장이라는 이유로 성매매 반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퇴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체슬러는 “여성 간의 잔인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묻고 이렇게 (부정확하게) 답한다.

“심리적으로 우리 2세대에게는 페미니스트 여성 선배들이 없었다. 어머니 또한 없었다. 우리에게는 오직 자매들뿐이었다.”,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인간[이다.] … 잔인함과 질투심을 가졌음과 동시에 관대함과 연민도 지녔[다.]

분열과 파편화의 요인

그러나 제2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이런 분열주의와 파편화라는 핵심 특징은 단지 경험 미숙의 결과는 아니었다. 이 운동의 계급적 기반과 이론, 정치에서 비롯한 문제였다.

체슬러가 “선배가 없었다”다고 말한 것처럼, 미국에서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과거 여성 차별에 반대해 온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전통과 단절돼 있었다.

당시 미국의 사회주의와 계급투쟁의 전통은 매우 약화된 상태였고, 사회주의가 스탈린주의나 사회민주주의 같은 것으로 왜곡된 탓에 그 안에는 여성해방 사상이 차지할 자리가 거의 없었다. 체슬러 자신도 ‘좌파’와 “계급투쟁”의 관점을 스탈린, 마오, 피델의 독재와 동일시한다.

이런 이유로 당시 성차별적 인식이 만연했던 (신)좌파 학생운동에서 분리해 나온 2세대 페미니스트 대부분은 계급과 여성 차별의 연관성을 이해하지 못했고(또는 그러기를 거부했고) 노동계급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체슬러의 회고록에서도 동일임금이나 보육 문제, 그 밖의 여성 노동자 조건 문제들은 거의 강조되지 않는다.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그보다는 남성(편견에 찌든 개별 남성이든, 남성 중심 문화나 체제이든)을 여성 차별의 원인으로 여기고, 모든 여성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환상을 좇았다.

차별이 계급을 고스란히 반영하지 않고 계급을 가로질러 작동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급은 이 체제의 핵심 분단선으로 삶의 모든 측면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며, 모든 차별은 특정 계급 사회에 토대를 두고 있다. 오늘날 여성 차별은 자본주의 작동 방식(특히 재생산 방식)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무엇보다 계급에 따라 기존 사회를 수호하느냐 마느냐의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따라서 계급 문제를 회피하고서는 여성 차별의 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여성 해방을 위한 진정한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다.

또한, 계급은 차별과 불평등·착취에 맞선 여러 운동을 자본주의라는 공통의 적에 맞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단결의 기반을 제공하기도 한다. 차별받는 사람의 다수는 노동계급에 속해 있고, 노동계급이 승리하려면 차별을 극복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런데 당시 페미니스트 대부분은 중간계급이었고, 이것이 이 운동의 정치와 실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노동계급의 계급적 관점은 집단주의적인 반면 중간계급의 계급적 관점은 개인주의적이다. 이런 처지 때문에 중간계급은 집단적 이익과 행동보다는 개인의 의지와 능력으로 출세하는 것에 이끌린다. .. 그들이 경험하는 교육과 삶 전반이 개인주의를 강화한다.”(《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의미》(폴 더마토, 책갈피), 강조는 서평자)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대중 행동 건설보다는 소수 집단에서의 의식 고취나 언론의 주목받기와 같은 실천에 주안점을 뒀다.

또, 당시 미국 여성운동에서는 도덕주의가 만연해 ‘누가 더 억압받는가’를 두고 탓하기와 끊임없는 분열이 있었다. 수많은 여성 조직이 이성애자와 레즈비언으로, 백인과 흑인으로 분리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1970년대 말에 1960년대의 반란과 계급투쟁이 쇠퇴하자 페미니즘은 점점 더 개인적인 문제에 몰두하며 내향화했다. 결국 2세대 페미니즘 대부분은 여성 해방이라는 큰 포부를 잃은 채 라이프스타일·문화를 바꾸기에 주력하거나, 학계에 정착해 실천과 무관한 일련의 사상이 되거나, 민주당에 의존해 소수 여성들의 지위 상승에 만족하게 됐다.

이슬람 혐오

한편, 체슬러는 이 책에서 이슬람이 반여성적이라는 편견을 드러낸다. “나는 베일이 여성의 종속을 뜻하는 기호이자 상징이라 본다.” 그는 다른 저서 《페미니즘의 죽음》(2005)에서 이슬람에 반대하지 않는 서구 페미니스트를 비난했다.

그는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편든다. 시온주의 비판이 곧 유대인 혐오라고 보고, 인종차별국가인 이스라엘이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젊은 시절 아프가니스탄 출신 남성과 카불에서 불행하고 억압적인 결혼 생활을 한 경험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결혼 생활 동안 그는 여권을 빼앗겨 거의 감금 상태에 있었고,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 압박을 받았다(체슬러는 유대인이다).

그러나 이슬람뿐 아니라 기독교, 유대교 등에서도 종교가 여성 차별에 이용돼 온 사례는 수두룩하다. 종교가 발 딛고 있는 사회 자체가 여성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이슬람도 단일체가 아니다. 이슬람도 기독교 등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보수와 급진, 그 중간에 여러 스펙트럼이 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지배자들의 이슬람은 반동적이고 억압적이지만, 착취받고 차별받는 무슬림들의 이슬람은 “진통제”이자 “현실의 고통에 대한 항의”일 수 있다.

지금 서구에 사는 많은 무슬림 여성(특히 청년들)은 다양한 이유로 히잡을 착용한다. 일부는 인종차별 사회에 항의하는 상징 행위로 히잡을 착용한다.

사실 국가가 여성의 복장에 간섭하는 것 자체(강제로 씌우든, 강제로 벗기든)가 억압이다.

체슬러의 오류에는 급진 페미니즘이 차별을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중심으로 보는 것과 이어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개인의 경험이 곧 진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오늘날 서구의 많은 페미니스트가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에 반대한다. 하지만 체슬러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이슬람을 혐오하는 것은 급진 페미니즘 정치가 여성 차별 문제를 계급과 자본주의·제국주의라는 더 넓은 맥락과 결합시키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 주는 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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