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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좌파는 팔레스타인 해방에 한몫을 할 것인가

이 기사는 4월 24일 노동자연대TV 온라인 토론회 ‘이스라엘 좌파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한 축이 될까?’(영상 보기)에서 롭 퍼거슨이 한 발제와 토론 정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롭 퍼거슨은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유대인으로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해 왔다. 퍼거슨은 영국 전쟁저지연합 전국 운영위원이자 팔레스타인연대캠페인(PSC) 활동가이며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이다. [ ]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팀이 덧붙인 것이다.

롭 퍼거슨

오늘날 우리는 세계 정치의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더는 지난해 10월 7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가자지구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악의 민간인 학살이 실시간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자지구의 인종 학살을 목도하고 있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 핵심부의 정치인들, 주류 언론들 사이에 거대한 심연이 생겨났습니다.

냉전 종식 후 미국과 동맹국들은 인도주의와 민족 자결권 수호라는 미명하에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개입하고, 걸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쟁을 연거푸 벌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명분이 거짓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가자지구에서의 인종 학살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신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그들은 국제법이나 이른바 “규칙 기반 국제 질서”라는 허울도 벗어던질 태세가 돼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력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과 저항이 직면한 물음은 ‘어떻게 팔레스타인 해방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물음을 특정한 각도에서 접근하고자 합니다. 이 토론회의 제목, 즉 ‘이스라엘 좌파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한 축이 될까?’ 하는 물음을 통해서 말이죠. 이 물음은 지난해 1~10월과 최근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위기

이 물음에 답하려면 지금의 인종 학살이 이스라엘 국가의 성격과 이스라엘 식민 정착자 사회의 성격을 반영한다는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최근 가자지구 나세르 병원에서 발견된 집단 매장된 시신들

지금 상황을 봅시다. 가자지구에서 끔찍한 인종 학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병원이 있던 자리에서 이스라엘군이 집단 매장한 시신 수백 구가 발견됐습니다. 네타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인 난민 150만 명이 있는 라파흐를 지상군으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죠.

이스라엘은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고, 이란은 보복 공격을 했습니다. 이는 중동 전역으로 전쟁이 확대될 위험을 키웠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란 영사관을 공격한 목적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스라엘에 가하는 압력을 완화시키려는 것임이 뚜렷했습니다. 여기서 네타냐후는 분명 어느 정도 성과를 냈습니다.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과 확전 행위는 서로 연관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두 행위는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핵심 특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시온주의 프로젝트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강탈을 기초로 정착자 식민 사회를 세우고 중동에서 제국주의 질서를 지키는 요새 구실을 한다는 프로젝트입니다.

시온주의 프로젝트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이스라엘 내의 반응을 살펴봅시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전기·식량·연료 무엇 하나 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인간 짐승들과 싸우는 중이니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노동당식 시온주의 전통의 정치인이자 이스라엘 대통령인 아이작 헤르조그는 무고한 민간인이 살해당하지 않았냐는 문제 제기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거기에 있는 민족 전체가 책임이 있다. 민간인들은 몰랐다거나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당 ‘유대인의 힘’의 지도자이자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인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성들과 아이들이 국경에 접근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가까이 오는 자는 그게 누구든 머리에 총알을 박아 줘야 한다.”

극우이자 국가안보부 장관인 벤그비르가 경찰 산하 민간인 부대에 총기를 지급하고 있다 ⓒ출처 Itamar Ben Gvir

이스라엘 주요 방송사의 한 기자는 이스라엘군이 초장부터 팔레스타인인 10만 명을 죽였어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종 학살을 부추기는 이런 언사는 권력 핵심부의 정치인과 주류 언론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인의 70퍼센트가 가자지구에 구호 물자 반입을 허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화력을 너무 아끼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58퍼센트였습니다. 37퍼센트는 지금 정도 화력이면 적당하다고 답했습니다. 지나친 화력이 동원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8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인의 3분의 2는 군대가 없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것조차 원칙적으로 반대합니다.

‘이스라엘 좌파’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면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80년대에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반대해 [이스라엘에서] 수십만 명을 거리에 동원한 ‘피스 나우’ 운동은 쇠락한 지 오래입니다.

2022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에서는 극우인 ‘종교적 시온주의당’ 등이 참여한 선거 연합이 돌풍을 일으켜 선거 정치의 변두리에서 핵심부로 진출하고 네타냐후 연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건국의 주도 세력이자 30년 넘게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 그 밖의 국가기구를 주도했던 노동당식 시온주의자들은 4퍼센트를 득표했습니다. 오늘날 ‘두 국가 방안’과 가장 자주 결부되는 ‘시온주의 좌파’ 정당인 메레츠는 의석 확보에 필요한 최소한의 표도 얻지 못했습니다.

인종 학살과 인종 학살적 이데올로기의 역학은 그저 10월 7일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굴욕과 민간인 사망에 대한 광기 어린 보복으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역학의 근원은 시온주의 프로젝트와 이스라엘 사회 자체에 있습니다.

정착자 식민 지배

이스라엘 정치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사회와 국가의 물질적 토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모든 유대계 이스라엘인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빼앗은 땅 위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많은 수는 팔레스타인 마을의 폐허 위에 지은 집이나, 1948년 “나크바”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에 삽니다.

지난해 12월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파괴하는 이스라엘군 ⓒ출처 Activestills

처음부터 시온주의 프로젝트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강탈에 기초한 정착자 식민 지배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는 나름의 고유한 특성도 있습니다.

시온주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알제리에서의 정착자 식민 지배 사례와 비교될 때가 많은데 그런 비교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남아공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는 소수인 백인들이 압도 다수인 흑인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것에 기초한 지배 체제였습니다. 프랑스령 알제리의 정착자 식민 지배 체제는 노동력과 자원을 수탈하는 수단이었고, 프랑스의 직접적인 식민 지배로 유지됐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강탈과 배제에 기초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착자들은 정착자 국가의 생존과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강탈에 물질적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데서 결정적이었던 사건은 1948년의 “나크바”였습니다. 아랍어로 “재앙”을 뜻하는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한 인종청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은 “나크바”를 1948년에 완료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강탈과 인종청소 과정을 일컫는 말로 씁니다.

이스라엘 국가에는 또 다른 핵심적 성격이 있습니다. 바로 중동에서 제국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요새 구실을 한다는 것이죠. 처음에는 영국 제국, 1948년 이후에는 프랑스,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에는 미국의 지원 속에서 그런 구실을 수행했습니다.

우경화 궤적

1930년대와 1940년대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정착자가 급증한 것은 유럽에서 파시즘이 부상하고 유대인 박해, 특히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그 정착자들 다수의 동기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시온주의 프로젝트는 식민 지배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노동당식 시온주의는 새 국가의 군사적·경제적 구조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독특한 이데올로기적 응집력을 제공했습니다. 노동당식 시온주의는 당시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것에 부합했습니다. 국가가 산업·토지·자산을 통제하고 노동력을 배분하는 것이 국가를 수립하는 데서 결정적이었습니다. 농업 공동체로 일컬어지는 키부츠는 사실 새 국가의 영토를 구획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빼앗는 군사적 전초 기지로서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노동당식 시온주의는 이스라엘 정착자 식민 지배의 물질적·이데올로기적 지주 구실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가 성숙하고 경제·사회적 토대가 발전하자, 노동당식 시온주의의 기초를 이루던 기구들도 변화하고, 노동당식 시온주의 자체도 뒤쳐진 것이 됐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경제는 미국의 경제 원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자본 축적의 주요 중심을 구축했고, 미국의 군사적 지원과 투자를 발판으로 하이테크 산업의 세계적 중심지가 됐습니다. 이것이 노동당식 시온주의와 ‘이스라엘 좌파’가 몰락한 한 요인입니다.

또 다른 요인은,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인의 끊임없는 저항에 직면했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이 분출할 때마다 이스라엘에서는 시온주의의 인종차별적 논리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세력이 힘을 키웠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1967년 중동 전쟁은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추방(완곡어로는 “이주”)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967년 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은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사는 땅을 지배하게 됐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땅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의 수는 유대인 정착자의 수와 거의 같습니다.

1960년대부터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은 계속됐습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초 사이에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무장 저항이 전개됐습니다.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해 PLO를 분쇄했다고 믿었지만, 불과 몇 년 후 제1차 인티파다가 분출해 이스라엘과 중동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제 팔레스타인 소국가라는 신기루를 쫓는 고분고분한 PLO를 데리고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고, 이스라엘은 그 협정이 제공하는 위장막 아래에서 서안지구의 정착촌을 크게 확장해 그곳을 잘게 쪼개고 그곳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통제했습니다.

이에 대응해 2000년 제2차 인티파다가 분출했고, 2005년에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잇따라 가자지구를 공격했습니다. 서안지구에서도 끊임없이 저항이 분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네타냐후는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당국(PA)을 협조자로 두고,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인종 분리 장벽을 세우고, 하마스와 PA의 싸움을 부추기고, 무엇보다도 아랍 국가들과 어느 때보다도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억누르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2018~2019년 가자지구 국경 지대에서 ‘귀환 대행진’ 운동이 벌어졌고, 무엇보다 2021년 5월 ‘단결 인티파다’가 일어나 사상 처음으로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단결해서 저항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에 남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갖게 된 팔레스타인인도 저항에 나선 것이죠.

그럼에도 네타냐후는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잠재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10월 7일 공격이 벌어진 겁니다.

이런 저항은 PLO나 하마스와 같은 특정 운동이나 특정 단체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 저항은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한 강탈이 지속되는 현실의 산물입니다. 그런 점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정착자 식민 지배 사회에 항구적인 위협인 것입니다.

제2차 인티파다 이후 극우가 이스라엘에서 부상하고, 2021년 ‘단결 인티파다’ 이후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극우가 돌파구를 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우익적인 연령층은 18~24세입니다. 이 젊은이들은 우익 집회에서 춤판을 벌이고 “아랍인들에게 죽음을!”이나 “너희 마을이 불타기를!” 하는 구호를 외칩니다.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도전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인종차별과 폭력성을 갈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우경화 궤적을 밟아 왔습니다.

2023년 이스라엘 우익 집회를 이끌고 있는 국가안보부 장관 벤그비르 ⓒ출처 Itamar Ben Gvir

팔레스타인 독립을 쟁취할 주체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이런 큰 그림 속에서 이스라엘 내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들을 살펴보고 그 시위들이 무엇을 반영하는지 따져 봐야 합니다.

일단 그 시위에는 팔레스타인인이 없습니다. 그냥 없는 정도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오는 사람들은 시위 참가자들에게 공격당합니다.

이스라엘의 정착자 식민 지배 사회가 세속 대 종교, 또 사회적·정치적 노선에 따라 분열돼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정착자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유입되는 과정에서, 식민 정착자 국가가 제공하는 특권과 이득의 배분을 두고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갖게 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상충하는 이 집단들을 규합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한 강탈입니다.

지난해 10월 이래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시위들은 결코 전쟁 반대 시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사회의 다수는 하마스와 포로 석방을 협상하는 것조차 반대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내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는 용기 있는 개인과 소수의 단체가 있습니다. 비록 그중 다수는 ‘두 국가 방안’으로 자신의 전망을 한정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착자 식민 지배 사회 구조가 존재하는 한 그들이 결코 실질적인 세력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온주의 프로젝트는 온갖 참상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1967년 이래로 이스라엘은,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팔레스타인인들에 직면해 왔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은 중동 전역에서 아랍 정권들과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를 모으는 피뢰침 구실을 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거 학살할 수 있지만, 하마스를 궤멸시키지는 못합니다. 이스라엘 극우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인종청소를 완수한다는 꿈을 실현하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서 벌여 온 정착촌 확대와 군사 점령을 아무런 저항 없이 가자지구로 확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한편, 서안지구를 이스라엘에 공식 병합한다면 그것은 유대인 국가라는 이스라엘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스라엘만 위기인 것이 아닙니다. 아랍 국가들과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정착자 식민 지배 사회 내에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쟁취할 주체를 찾으려는 시도는 어리석고 헛된 것입니다. 역사상 어떤 식민 정착자 국가도 그 내부로부터 붕괴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이간질 전략이 실패했음을 보여 준 2021년 ‘단결 인티파다’ ⓒ출처 Activestills

지금의 역사적 순간은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을 흘낏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해법은 정착자 식민 지배의 물질적 토대를 제거하는 데에 있습니다.

또, 그 해법은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적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캠퍼스에서도 점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아랍 대중의 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흥해도 제국주의 질서의 요새로서 흥하고, 망해도 제국주의 질서의 요새로서 망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중동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반제국주의의 피뢰침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혁명가와 반제국주의자들의 임무는 그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에 일조해서, ‘요르단강에서부터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이 해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발제자의 토론 정리

매우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토론에 감사드립니다. 풍부한 질문과 주장에 온전히 응답하지 못할 수 있음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의견도 많았고, 제가 발제에서 주장하려 한 바를 뒷받침해 줬다고 봅니다.

팔레스타인인 난민의 귀환권에 대한 이스라엘 좌파의 입장을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문제의 핵심으로 향하는 질문이라, 이에 먼저 답하겠습니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스스로를 이스라엘 좌파로 여기는 사람 대다수는 팔레스타인인 난민의 귀환권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귀환권 지지는 유대인 국가라는 이스라엘의 존립 근거 자체를 허무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저는 역사상 어떤 식민 정착자 국가도 스스로 해체된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착자 자신의 행동으로 정착자 식민 지배 체제를 해체한 적은 없다는 것이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백인 주민들이 결국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끝내는 쪽에 투표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더는 흑인 노동계급의 항쟁을 저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경제가 어떻게 발전하고 성숙했는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제국주의 강대국의 군사 지원뿐 아니라 경제 원조에도 의존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지원에 의존했고, 1980년대까지 그랬습니다.

오늘날 더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미국은 이스라엘에 (군사 지원 말고는) 경제 원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다른 아랍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본 축적의 중심을 구축했습니다.

한 발언자가 미국의 영향력 쇠퇴에 관해 발언했는데, 여기에 한마디 보태고 싶습니다.

바이든은 네타냐후를 온전히 통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1982년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당시 이스라엘 총리 메나헴 베긴을 통제했던 것과 달리 말이죠. 이 점은 제가 발제에서 얘기한 위기를 추동하는 모순의 일부입니다.

정착자 식민 지배 사회로서 이스라엘의 목표는 팔레스타인인을 짓밟는 것입니다. 반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이스라엘의 그런 목표를 지원하다가 중동 전역으로 항쟁이 번질까 봐 두려워합니다.

미국도 이스라엘도 이런 긴장에 대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한 발언자는 히스타드루트, 하가나, 키부츠가 한 구실을 지적하며 그 기구들이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공동체라는 주장을 반박했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세 가지 논점만 더 다루겠습니다. 모든 논점을 다루지 못하는 것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첫째, 이타마르 벤그비르, 베잘렐 스모트리치 같은 극우의 위상을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창립자들과 오늘날 이스라엘 극우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동시에 시온주의 프로젝트 내부에는 매우 중대한 분열과 긴장이 있습니다.

종교적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한 강탈을 완수하고 요르단강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모든 땅을 이스라엘에 병합하는 것을 해법으로 여깁니다.

이들은 국가의 요직을 차지하려 하면서도, 기층 정착자의 일부를 대규모 폭력과 팔레스타인인 박해에 동원하려고도 합니다.

이런 노선 때문에 극우는 시온주의의 핵심 권력층과 충돌합니다. 이를 보여 주는 사례 하나로, 네타냐후는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의 각료 회의 참석을 허용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열은 시온주의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존속시킬 방법을 두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또, 이런 분열은 시온주의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둘째, 시온주의가 이스라엘 바깥의 유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국가가 두려워하는 시온주의의 잠재적 약점이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밖 유대인들 중에도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프로젝트와 그것이 수반하는 인종차별, 인종청소, 인종 학살을 지지하는 반동적인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바깥에 사는 유대인의 다수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이유는 십중팔구 유대인 국가가 유대인 혐오로부터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것은 미국에서 운동에 참가하는 유대인들, 특히 젊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스라엘 지지와 거리를 두고, 공공연히 시온주의에 반대하거나 자신은 시온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을 이룰 잠재력이 있는 주체에 관한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제 발제에서 분명하게 얘기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발제에서 주장하고자 했던 바는 대중적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과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이 단지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아랍 세계 노동계급에게 제국주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러면서 시온주의 프로젝트를 무너뜨릴 힘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좌파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좌파 내에서 스스로를 시온주의 반대자로 여기는 사람이 더 늘어난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이것이 핵심 문제점입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노동계급, 특히 아랍 노동계급을 변혁의 주체로 봅니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인이 그저 아랍 혁명의 수동적인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인의 반란은 거듭해서 아랍 세계의 반란을 촉발해 왔습니다. 예컨대 2011년 이집트 혁명 때는 시위대가 카이로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을 습격했죠. 팔레스타인인의 대의는 2011년 아랍 세계에서 일어난 혁명들을 관통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단지 연대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팔레스타인인이 겪는 고난에 가슴 아파하고 그들과 연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아랍 대중은 자신의 통치자와 대결할 때마다 중동의 제국주의 질서와 대결하게 됩니다. 처음에 그들은 식량 가격이나 임금 문제, 또는 정치적 요구를 걸고 싸울 수 있지만, 그럼으로써 그들은 아랍 정권들과 제국주의와 대결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시온주의 정권과도 대결하게 됩니다.

제국주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의 저항과 아랍 노동계급의 계급투쟁 사이에는 역동적인 변증법이 있습니다.

또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런던, 워싱턴 DC, 베를린, 파리, 서울 등 야수의 심장에서 제국주의 질서에 대한 도전을 제기합니다. 이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우리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매우 거대합니다. 이렇게 운동이 대규모로 분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팔레스타인 문제가 이 체제와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착취에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이 체제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운동을 심화시켜서 억압과 인종차별, 전쟁, 식민주의가 없는 사회를 위해,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이 해방된 사회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