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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협상을 촉구하는 것은 위기에 몰리면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협상을 제안했다. 이스라엘인 인질 33명의 석방과 10주간 휴전 및 팔레스타인인 포로의 석방을 교환하는 안이다.

해안 도로 따라 가자 북부로 돌아가는 피란민들. 이스라엘은 이런 귀환 행렬도 공격하고 있다 ⓒ출처 @UNRWAes 영상 캡쳐

미국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은 “하마스가 받아든 제안은 이스라엘로서는 매우 후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협상 제안은 선심을 베푸는 게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이스라엘과 미국의 위기를 반영한다.

대학생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미국 전역을 휩쓸고 이스라엘의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자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라파흐 침공을 지연시키려 한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휴전 협상을 원하지 않았다. 전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파흐 지상전을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작전으로 삼으려 한다. 도하 대학원연구소의 모하마드 엘마스리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최근에 이스라엘이 이란과 확전하지 않는 대가로 미국이 라파흐 침공을 승인했음을 시사하는 보도들이 나왔다.

[이스라엘이 가자 전쟁을] 군사적으로 만회하려 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인질을 구출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하마스 지도자들을 살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스라엘이 승리의 증표로 내세울 수 있는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더 냉소적으로 보는 다른 관점이 있는데 … 이스라엘의 최종 단계는 가자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만들어 대(大)이스라엘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것이다. 즉, 팔레스타인인들을 가자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다.”(알 자지라, 4월 21일 자)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도 협상을 가로막은 것은 이스라엘과 미국이라고 비판했다.

“협상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과 미국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아무런 압박도 넣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오직 인질들을 되찾은 다음에 가자지구에서 다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피란민들이 가자지구 북부로 귀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제한적이고 점진적인 귀환만을 인정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튀르키예 국영 통신사 아나돌루 아잔시, 4월 21일 자)

실제로 4월 14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로 돌아가려던 피란민 수천 명을 공격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엑스(옛 트위터)에 “가자지구 북부는 여전히 전쟁 지역이며, 이스라엘군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올렸다.

이스라엘 극우파는 휴전 협상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집트 휴전 안에 합의하면 굴욕적인 항복이 될 것이며 … 네타냐후가 항복하고 라파흐 공격 명령을 거둔다면 그가 이끄는 정부는 존재할 권리가 없다.”(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

이스라엘군은 물밑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라파흐 인근에 탱크와 장갑차 수십 대를 배치했고 공중 폭격을 퍼붓고 있다.

“지속 가능한 평온”?

만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이 합의되더라도 그것이 항구적 휴전(“지속 가능한 평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와 중대위협프로젝트(CTP)에 따르면, 미국은 4월 1일과 18일에 이스라엘 고위 관리들과 화상 회의를 열어 “라파흐에서 하마스를 제거한다는 목표를 공유”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전쟁을 끝내라고 요구하는 게 아닌 것이다. 오히려 미국은 자신들이 용인할 수 있는 라파흐 공격의 수위를 공개했다.

블링컨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G7 외교장관 회의가 끝난 뒤(4월 19일) 이렇게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라파흐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지지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제한적”이거나 “점진적”인 공격은 지지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블링컨의 말인즉슨, 이스라엘이 민간인 피해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라파흐를 공격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내놓은 유일한 민간인 보호 대책은 12인용 텐트 4만 동을 구입한 것이었다.

미국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대피한 민간인들에게 피난처뿐 아니라 물·음식·의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협상을 압박한 것은 민간인을 덜 죽이는 지상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 벌기일 뿐이다.

미국 등 서방이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기라도 하는 양 위선을 떠는 것에 어떤 기대도 걸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미국의 핵심 동기는 이스라엘을 지키고 하마스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보복 공격하던 4월 18일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을 거부했다. 미국의 “두 국가 방안”이 얼마나 헛된 약속인지를 보여 준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호세프 보렐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 그리고 모든 회원국들은 ― 그런 일[라파흐 공격]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군대를 통솔할 위치에 있지 않다.”

이란도 위선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란 외무장관은 핵 협상을 재개할 요량으로 4월 셋째 주 뉴욕을 방문했다. 이란은 최근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충돌을 미국과의 핵 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부활시키는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은 오바마 정부 때 체결됐다가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면서 파기됐다.

유일한 해결책

유일한 해결책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확고하게 지지하며 국제적인 연대 운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매일매일 목숨을 걸고 저항하고 있고 이스라엘군은 이를 분쇄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으로의 확전을 시도한 것도 가자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미국·영국·유럽이 확실하게 자기를 지지하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일 테다.

그러나 이란에 대한 제한적 대응은 이스라엘의 취약성을 더 두드러지게 드러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방어자”로 보이도록 국제 여론을 반전시키려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자지구의 나세르 병원과 알시파 병원에서 발견된 시신 집단 매장지는 이스라엘의 인종청소와 전쟁 범죄의 잔혹성을 다시 환기시켰다.

서안지구에서도 이스라엘은 저항을 분쇄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4월 18일부터 서안지구 북부 툴카름시(市) 인근의 누르 샴스 난민촌을 공격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 14명을 살해하고 수배자 15명을 체포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장 투쟁과 총파업으로 대항했다.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툴카름여단은 50시간 넘게 이스라엘군과 전투를 벌여, 이스라엘 군인 9명과 국경 경찰 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4월 21일에는 총파업이 벌어져 서안지구 내 상점과 은행, 학교 등이 문을 닫고 대중교통 운행도 전면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