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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노후 보장성 강화에 반대하는 윤석열 정부, 보험료 인상 동의해 주는 진보 단체들

4월 22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의 숙의토론 결과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이 다수안으로 선택됐다.

숙의토론에는 두 가지 안이 올라갔다. 소득의 9퍼센트인 현행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퍼센트까지 인상하고 평균 소득대체율(생애 소득 대비 노후연금 비율)을 현행 4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늘리는 1안과, 보험료율만 12퍼센트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40퍼센트를 유지하는 2안이 그것이다. 이 중 1안이 56퍼센트의 지지를 받았다.

연금 지급액을 늘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보험료 인상에 동의하면 노동자 개혁 의지가 꺾이게 된다 ⓒ출처 참여연대

결과가 발표되자, 정부·여당과 보수언론들은 ‘미래 세대에 부담 떠넘기기’, ‘기금 고갈’ 등을 부르짖으며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두 안 중 국민연금 지급액을 늘리는 안에 찬성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노후를 걱정하며 국가가 노후 생활을 책임을 져 주길 바라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0.4퍼센트로, OECD 평균(14.3퍼센트)의 2.8배나 될 정도로 최악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연금(국민연금·기초연금·공무원연금 등) 지출 규모가 3.7퍼센트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기 때문이다(2020년 기준).

이번에 채택된 안대로 소득대체율을 높여도, 생애 월급 평균이 300만 원(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인 사람은 (예상 평균 납입 기간인 27년 납입을 전제로 했을 때) 국민연금이 8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다.

여전히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납입 기간이 평균에도 못 미치는 노동자들의 연금은 이조차도 못 될 것이다.

우파들은 이 정도 증액도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앞으로 30년 후쯤에는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고, 그러면 마치 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양 협박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 고갈은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낸 사람한테만 주는 방식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금이 쌓이다가 받는 사람이 늘어나면 기금이 소진될 수밖에 없다.(이처럼 보험료를 내는 사람한테만 준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은 애초부터 시장주의라는 문제점이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기금이 소진되면 그해 필요한 돈을 그해에 걷어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게 예정돼 있던 것이다. 이미 상당수 유럽 국가들은 이런 식으로 연금을 지급하고 있고, 한국의 건강보험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 채택된 안대로 소득대체율을 50퍼센트로 올려도 기금이 거의 고갈되는 2060년에 공적연금 지출은 GDP의 13.5퍼센트에 그칠 것이다. 이는 2013~2015년에 유럽연합(EU) 28개국이 GDP의 11.3퍼센트를 연금 지급에 사용한 것과 비교해도 대단한 수준이 아닐뿐더러 2060년 유럽연합의 연금 지출 예상치 평균인 13.9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그때쯤에는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 비율이 유럽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진정한 쟁점은 기금 고갈 문제가 아니라 국민연금 지급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이다.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도 정부와 기업주들이 더 많은 부담을 진다면 노동자들(현 세대든, 미래 세대든)의 부담이 늘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내고, 조금 더 받자’는 방안도 개악안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다수안으로 채택된 방안도 노동계급을 위한 개혁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44퍼센트(소득의 9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나 오르기 때문이다.(반면 국민연금 지급액은 25퍼센트만 오른다.)

300만 원 봉급 생활자 기준으로 보험료가 (사용자가 절반 부담을 한다고 해도) 13만 5000원에서 19만 5000원으로 월 6만 원이나 늘어난다. 개인이 보험료를 전부 부담하는 지역 가입자는 월 보험료가 12만 원이나 오르는 것이다.

지금 노동자 등 서민층 대다수는 물가 인상으로 고통받고 불안정·저임금 노동으로 근근이 먹고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월 보험료가 수만~십수만 원 늘어나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불행히도 민주노총·한국노총·진보당·녹색정의당 등 주요 개혁주의(진보) 단체들은 모두 이번 보험료 대폭 인상안에 찬성하고 있다. 이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마찬가지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21대 국회에서 신속하게 다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애초에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다뤄진 1안과 2안이 모두 보험료 대폭 인상안이었던 것도 이 단체들이 보험료 인상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양대노총,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녹색정의당 등은 국민연금의 노후 보장성뿐 아니라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노후 보장성이라는 ‘국민적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도 보험료 인상으로 고통을 분담하거나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 안정을 위한 보험료 인상 불가피론을 받아들이면,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노후 복지를 사회경제적 권리로서 요구하는 데 자기 제한이 생긴다.

그러면, 연금의 재원을 어느 계급으로부터 거둘 것인지 하는 진정한 문제가 흐려지게 되고, 노동자들이 연금 개혁을 위해 투쟁에 나설 의지가 꺾이게 된다. 자기의 보험료 부담을 대폭 올리라고 투쟁에 나설 노동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중시하지 않게 되면, 개혁주의 단체들이 애초에 목표로 한 연금의 노후 보장성 강화도 달성하기가 어려워진다. 경제가 지지부진해 자본가들이 좀체 양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대폭 올려 보장성을 조금 올리느니, 보장성을 낮추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자랄 수 있다. 노동자들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면, 노동자 중 어느 세대가 고통을 더 져야 하는지 등의 기회주의적 생각도 자라나기 쉽다.

실제로 우파들은 이미 이 점을 노리고 ‘청년들의 보험료 부담은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고 이간질에 나서고 있다. 4월 29일 열린 영수회담에서 윤석열도 ‘22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더한층의 개악안 통과를 준비하고 있다.

의회 협상을 중시하며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으로는 개혁 동력을 일궈 낼 수 없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어 복지 지출을 늘리고 기업주들의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을 높이라며 싸워야, 단결해서 대규모로 싸울 수 있고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