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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 두 달:
윤석열은 의료 개혁의 의지도 능력도 없다

총선 참패 이후 윤석열 정부는 의대 증원 규모 자체에서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립대 총장들의 요청에 따라 대학별로 증원 규모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학병원 교수들마저 진료 축소와 사직을 예고하자 4월 26일에는 “올해 의대 증원 제외한 모든 논의가 가능”하다며 또 한 발 물러섰다.

반면,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백지화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강경파가 당선된 의협도 협상을 일절 거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학병원 교수들은 집단 사직서 제출에 이어 4월 30일부터 주 1회 휴진 등 진료 축소를 이어 가고 있다.

수술과 진료 예약이 연기된 환자와 보호자들은 그동안 의지해 온 의사 개인들과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느낌마저 들 것이다. 평소 다니던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병원에서 급히 수술 예약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불안감뿐 아니라 배신감도 들 것이다.

당장 몸이 아프거나 가족 중에 중환자가 있는 경우가 아니어도 노동자 등 서민층의 입장에서 지금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다.

필수의료·지역의료 공백뿐 아니라 만성적인 의료 인력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를 막겠다며 수가 인상 타령만 늘어놓는 의협 등을 보면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왜 젊은 의사들이 노동계급 대중의 삶은 안중에 두지도 않는 것인지, 그런 사람들이 장차 노동자 등 서민층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 한숨만 나온다.

어떤 노동자들은 또 다른 씁쓸함을 느꼈을 것이다.

윤석열은 화물연대 투쟁 사례 등을 거론하며 이번에도 강경대응을 예고했지만, 실제로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를 유보했다. 이제는 오히려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는 모양새다.

이 정부가 다른 노동자들에게 이토록 관대했던 적이 있던가. 파업하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정부와 일대일로 대화를 하자며 손을 내민 적이 있던가.

소수의 노동자들은 이를 보면서도 적극적인 교훈을 이끌어낼 것이다. 싸울 때는 전공의들처럼 ‘생명’ 운운하는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는 점 말이다.

그러나 더 많은 노동자들은 좌절감이나 무력감을 느낄 듯하다. 의사쯤은 돼야 정부를 상대로 이렇게 싸우고 요구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슬금슬금 물러서는 윤석열 정부, 이재명은 퇴로 만들기 급급

노동계급의 일부

그러나 정부를 일부 물러서게 한 것은 의협이나 대학병원 교수들이 아니라 전공의들이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전공의들은 그들이 미래에 어떤 전망을 갖고 있건 간에 현재 노동계급의 일부다. 대학병원에 집단적으로 고용돼 있는 전공의들은 병원에서 핵심적 구실을 해 왔고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손을 놓음으로써 그 힘을 보여 준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전공의들의 다수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보다 시장에서의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약속받고자 반동적인 요구를 내걸고 있다. 이준석 같은 일부 우파만이 이런 요구를 지지하고 이용하려 할 뿐이다.

한편, 중소병원 개업의들이 주도하는 의사협회는 강경한 언사를 쏟아 내기는 해도 실제로 가진 힘은 별로 없다. 그들에게 파업은 정부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더 부담이 된다.

대학병원 교수들로 보자면 그중 일부는 사실상 병원 경영진의 일부이고, 다른 일부는 중간에 끼인 존재로 약간은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사직 ‘선언’을 한 지 한 달이 다 됐지만 이들은 전공의들 같은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따라서 좌파와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전공의들이 의협이나 교수들과는 독립적으로 노동계급의 일부다운 요구를 내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전공의들의 파업은 한국 의료 체계의 핵심적 문제도 보여 주고 있다.

첫째, 의료를 시장에 맡겨 둬서는 그 주된 서비스 제공자인 의사들로 하여금 이른바 필수의료를 우선하도록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의사들이 돈만 좇는 것은 아닐 지라도 시장 의료 하에서는 필요보다 이윤이 우선시된다. 따라서 공공의료를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필수의료도 회복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윤석열 정부는 물론이고 민주당도 한국 의료 문제를 개혁할 수 없다. 그들 자신이 의료를 시장에 내맡겨 왔고, 의료 이윤 증대와 자본 축적을 위해서는 의료를 계속 시장화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전공의들을 달래겠다며 한 담화에서 오히려 더 많은 의료 시장화로 의사들에게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아도 공공의료 강화에 매우 소극적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조차 단 한 곳도 공공병원을 늘리지 않았다.

민주당이 지역의료, 공공의료를 강화한다며 제출한 법안들은 그 효과가 너무 미미해서 설사 시행되더라도 공공의료에 대한 냉소만 낳을 것이다. 지금도 이재명은 의대 증원 규모를 (문재인 정부 수준으로) 축소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한다.

수십 년에 걸쳐 자리잡고 성장한 시장 의료 체계를 개혁하려면 한국 자본주의의 소유 관계를 뒤흔들 거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전공의와 간호사 등 병원 노동자들은 그런 변화의 중심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