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의 NL 노선 재구성 시도:
의미 있는 물음, 빗나간 답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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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민경우 새세대네트워크 기획위원이 시도하고 있는 이른바 'NL의 재구성'이 자주파 진영만이 아니라 진보진영에도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글은 민경우 기획위원의 'NL 재구성' 시도가 지닌 의미를 분석하고,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을 제시한다. 〈레프트21〉 독자들에게도 매우 유용할 거라 판단해 《마르크스21》 편집부의 양해를 구해 싣는다.
지난 7월 민경우 새세대네트워크 기획위원
그의 이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작정하고 NL 진영에 문제 제기하는 것을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NL의 중요한 리더 가운데 한 명이었다. 특히 그는 통일운동이 분열의 위기와 탄압으로 얼룩졌던 1990년대 중후반 결연하게 범민련을 지킨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NL노선은 20년의 시간을 거치며 현실과 많은 괴리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NL 운동 안에서 잔뼈가 굵어 NL 사상의 핵심과 그 실천적 함의, 그리고 ‘사업 작풍’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답게, 민경우는 NL 노선의 뿌리를 겨냥한 의미심장한 물음들을 던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식민지인가?’, ‘농촌 인구가 급감한 현실에서 노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이 여전히 의미 있는가?’, ‘현대와 삼성은 매판자본인가?’, ‘지사적 풍모와 금욕적 생활 태도가 요즘 청년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가?’, ‘일국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가?’ 등등.
민경우의 NL 노선 재구성 시도는 현실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남한 자본주의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 미국 지위의 상대적 하락, 신자유주의, 두 개혁 정부 경험, 촛불 같은 새로운 운동의 등장 등. 그래서 NL 진영에 포진한 젊은 활동가 상당수는 언젠가 한 번쯤 자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의문의 편린을 민경우의 책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NL 진영 누군가의 비판이라면 인상을 찌푸리며 제쳐버렸을 수 있지만, NL 운동에 헌신적으로 매진해 온 중견 활동가의 진지한 성찰을 보며 미뤄뒀던 고민을 꺼내들 의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민경우는 의미 있는 물음에 걸맞는 훌륭한 답변을 내놓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의 문제 제기가 선구적인 게 아닌 만큼 답변이 더욱 중요한 것일 텐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답변은 개혁주의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가 흔한데, 때로는 NL 노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절충하는 데서 멈추고, 때로는 온건 PD의 변형판과 비슷하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비록 민경우는 이 책이 “NL노선을 견지하며 운동을 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함”이라면서
정치에서 경제로?
민경우는 NL 진영의 무능으로 경제 문제
민경우의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NL 일각에서는 ‘그러니 당신처럼 정책이론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연구소를 만들어 기여하면 되지 않느냐’고 다독이듯이 또는 논쟁 끝 퇴로라도 열어주듯이 말한다. 그러나 민경우가 경제 문제를 강조하고 나선 데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는 NL 노선에 외환·금융 지식을 보태 한국 경제를 분석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경제 현실을 보여 줌으로써 NL 노선이 더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필자가 경제공부를 주장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서민생계를 잘 알아야 한다는 데 있지 않다. 경제공부를 통해 현재 상황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이를 통해 운동이론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노동자 1000만, 농민 800만일 때의 노농동맹과 노동자 1600만, 농민 180만, 도시 소상인 600만일 때의 노농동맹은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기본 통계조차 경시하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돌파하기 위한 수단이 경제공부였고 그런 면에서 보면 필자의 시도는 분명 불순한
경제에 대한 그의 문제 제기가 전략 변화를 의도하고 있다는 건 그가 경제의 중요성을 통일과 맞바꾸고 있는 데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그의 말마따나 “30대의 10년을 통일운동을 하고 보낸” 사람이, 그것도 “통일의 가능성이 훨씬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고 전망하면서도 “통일 대신 경제를 삶의 중심 화두로 올려놓”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꽤 오래 전부터 신자유주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최근까지도 통일을 한국 사회 변화의 고리라고 여겨 왔다. 그가 “통일운동에 전념했던 것은 통일정세의 격변이 한국 정치지형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한국사회의 진보적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런 그의 믿음에 결정적 균열을 낸 것은 2007년 대선이었다. 2005~07년에 그는 소위 “통일정세”의 성숙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중국-러시아의 “반미연대” 강화,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대미 공세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 핵실험 강행 등을 보면서 말이다. “이런 정도라면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민경우의 경제 중시론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그가 NL 이론을 어떻게 재구성하려 하는지 살펴보기 전에 이 점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려 한다. 첫째, 그는 운동 주류는 경제가 약점인 반면 이명박은 경제가 강점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다. 현재의 경제 상황이 이명박에게는 득이 되고 진보진영에게는 어려움을 초래한다고도 보는 듯하다. 이것은 대선 평가와 운동 진영의 과제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이명박이 당선된 이유도, 민주노동당이 빈약한 성과만을 얻은 이유도 모두 경제로 설명했다. 물론 경제가 중요하다. 더구나 경제 악화를 배경으로 치러지는 대선에서 경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이런 조건에서 그 수혜자는 야당이기 쉽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동안 대중의 삶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류 진보진영은 이 정권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민경우가 이명박의 “경제” 또는 “중도 실용”에 대한 지지도를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을 당선시킨 경제가 머지않아 이명박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는 점과 경제 위기가 진보운동에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는 듯하다.
민경우는 서민들이 이명박식 경제 논리에 동의해서, 또는 신자유주의 경제 거품의 떡고물을 기대하고 그를 지지한 것처럼 암시한다. 그러나 이명박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은 노무현 정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하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까지 정확히 지적하는 경우는 드물다. 많은 사람들이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명박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이명박이 좋아서 그를 찍은 게 아니라 노무현 개혁에 실망한 쓰디쓴 심정으로 ‘차라리’ 이명박에게 표를 줬다. 이명박의 등장은 사람들의 보수화와 우파 정당에 대한 지지 확대를 뜻하는 게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점을 보지 못한 적잖은 사람들처럼 민경우도 대선 결과를 암울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대선 한 달 뒤쯤 쓴 글에서 “
그러나 그의 전망은 겨우 석달 만에 현실에서 정면 반박됐다. “거리시위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던 그 서민 대중이 촛불을 들고 “강한 돌”에 다가서 “중도 실용”의 실체를 밝혀내고 이명박을 추락시켰다. 민경우는 그의 책에서 지난해 촛불 운동을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뒤떨어진 운동권”을 비판하는 만큼 자신의 판단 오류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게 공정했을 텐데 말이다. 내가 모종의 품성론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가 “뒤떨어진 운동권”의 핵심 문제를 상당히 공유하고 있었다고 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첫째, 대중이 우경화했다고 판단해 그런 투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둘째, 자발성주의를 추수하고, 이를 변명 삼아 정작 필요할 때 행동을 회피한 것. 셋째, 이명박 퇴진 방침 천명을 회피한 것. 이것은 NL과 민경우의 공통점이지, 차이점이 아니었다.
사실, 한국진보연대는 2007년 대선 이후 정세 전망을 민경우보다 덜 암울하게 절충해서 내놓았지만, 행동은 민경우의 정세 전망에 기초한 듯이 했다. 나중에 정대연 한국진보연대 정책위원장도 인정했듯이, “우리가 가장 먼저 반성할 일은 대중들은 이명박 정권에 맞서서 투쟁하려고 계획을 준비하고 있을 때, 진보진영은 이명박 정권이 밀어붙일 테니까 수세적으로 정세를 바라본 오류가 있었다
그런데 민경우는 지난 1년간 경제 악화와 민주주의 악화, 노동자 투쟁 등을 겪고도 “강한 돌에 무리하게 다가서지 말라”는 ‘전술’을 여전히 되풀이하는 듯하다. 그가 2008년 미디어법 저지 국회 앞 농성을 반대한 것이나 2009년 6월 민주노동당 당대회의 이명박 퇴진 입장에 반대하고 나선 것도 모두 이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즉 한국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평범한 대중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그의 판단이 깔려 있다. 그는 “현재 상당수의 국민대중은 삼성전자·현대자동차가 보여주는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에 깊이 포섭되어 있
둘째, 그는 NL이 정치·군사에 절대적 중요성을 둬 왔다고 비판하며, ‘정치·군사’에서 ‘경제’로 180도 돌아섰다. 정치와 경제의 결합이 아니라 정치 대신 경제라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논쟁의 맥락상 강조점 이동 정도라면 다행이지만 사실 그의 글 곳곳에서 그 이상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2004년 4·15총선의 여세를 몰아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4대 악법을 폐지하라는 단식농성이 국회 앞을 수놓던 바로 그 시각, 생계를 위협받게 된 전국의 음식점 업주들의 솥단지 시위가 여의도에서 벌어졌다.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이 주도한 4대 악법 개폐 투쟁에 대체로 냉담했다. 여전히 냉전의 잔재에 묶여 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경제상황의 악화가 발목을 잡았다.”
사실, 이런 얘기는 PD 진영으로부터 신물나게 들어 왔다. ‘NL은 민생을 도외시하고 민주주의나 통일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식의 주장 말이다. 그러나 대개 NL이 노동자·민중의 생활 조건을 둘러싼 투쟁에 적극 참가한다는 점만 봐도 이것은 온당한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NL의 문제는 민주주의나 통일 문제에서 자유주의자들과 동맹하고, 통일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데 있다. 2004년 하반기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사례만 보더라도 NL의 문제는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후퇴를 거듭하는 열린우리당을 추수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PD 진영은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민생’이라는 식으로 둘을 대립시켰다. 반전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질 때는 ‘반전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고 대립시키는 세력도 있었다. 이런 입장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데, 왜냐하면 민주주의나 분단 문제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들에 대처하는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그저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민경우가 이런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은 그가 PD류의 “87년 체제의 종말”을 되뇌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1980년대 중후반을 계기로 민주화 국면이 마무리되고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하는 양상
민경우는 마치 경제 위기 때는 노동자·민중이 정치 쟁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듯이 암시한다. 그러나 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지난해 촛불 운동에 대거 참가한 것만 봐도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또, 노무현 정부가 2004년 하반기와 2005년에 지지자들을 대거 잃은 것도 경제 문제를 도외시하고 정치 개혁에 매달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의사를 거슬러 이라크에 전투부대를 파병한 것, 국회 다수석을 줬는데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여러 진정한 개혁들을 추진하지 못한 것, 그리고 빈부격차가 확대된 것, 반노동자 정책을 추진한 것 등이 결합한 결과였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연관을 이해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경제 위기는 정치 체제의 불안정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고, 국가 간 갈등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보지 못하는, 정치 없는 경제 중시론은 경제 없는 정치·군사 중시론만큼이나 취약할 수밖에 없다.
셋째, 민경우는 생산보다는 금융과 외환에 분석상의 중요성을 두며 경제 위기의 원인도 여기서 찾는다. 그의 책 전체를 통틀어 이윤율 저하에 관한 얘기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는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이 점도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현실 부정과 혁명 부정 사이에서
민경우는 “식민지반半자본주의론”이 더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NL 노선의 근간을 겨냥한 것이다.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NL의 “기본틀”로, 1988년에 등장했다. 1986년까지 NL은 “식민지반半봉건사회론”을 주장했는데, 이 이론은 “미국의 정치군사적 강점에 의한 한국사회의 식민지성”이 한국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 요인이라고 보았다.6 따라서 운동의 주요 목표는 제국주의로부터의 민족해방이 된다.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은 “한국사회에 대한 구체적으로 실증적인 분석의 결과라기보다는 반제 문제에서 보다 원칙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평가된 북한의 이론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7 1988년에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 식민지반자본주의론으로 ‘수정’된 것도 북한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식민지반자본주의론도 “식민지성”을 한국사회 성격의 핵심으로 봤다는 점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민경우의 지적대로 “봉건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식민지이므로 자본주의 발전도 정상적일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민족모순 때문에 기형성, 파행성을 가진 불구화된 자본주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한국 내부의 독자적인 발전은 불가능”하며
“식민지”, “매판”, “기형성”, “지주-소작 관계”라니 이 저널의 독자들은 무슨 신소설을 읽는 기분이겠지만, 놀랍게도 NL은 1980년대 중반 이래 지금껏 이 분석의 골간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놀라운 현실 부정이다.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1980년대 중반 당시에도 맞지 않는 얘기였지만, 도심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세계 다섯 번째로 이지스 구축함을 자체 제작 보유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 현실과는 더더욱 동떨어진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민경우의 문제 제기도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1970년대나 1980년대 중반이라면 모르겠는데 1990년대가 되면 한국사회의 자본주의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야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했다고 얘기하다니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그는 1980년대 중반 “한국경제 파국론”이 유행했지만 파국은커녕 3저호황을 누렸고, 제국주의적 간섭 때문에 한국에서 독자기술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한국 대자본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대자본은 2009년 현재 세계 굴지의 대자본으로 성장했고 반도체, LCD, 조선, 핸드폰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의 브랜드는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민경우의 뒤늦은 자본주의 발전 인정은 자본주의 발전 지지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삼성에 대해 그가 보이는 태도는 경탄 자체인 듯하다. 1990년대 초 이건희의 신경영전략 이후 삼성은 “초고속 질주를 거듭”했고, 그것은 “기술”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2007년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백대 기업에서 삼성이 46위를 차지한 것, 삼성전자의 연구 인력이 2006년 현재 전체 직원의 38퍼센트에 이르는 것,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기술과 브랜드에서 발생하는 것 등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눈치다.
민경우는 이런 기업들을 “매판자본”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한다’니, 참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그동안 한국 대기업과 국가관료를 미국의 꼭두각시로 보고 미국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결정적인 것으로 여긴 오류를 돌아보며 이제는 한국 대기업과 국가를 당면한 주요 투쟁 상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라면 이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런데 민경우는 경제 파국론의 오류를 신랄하게 비판하려다 이제 어느 때보다 심각한 세계적 경제 위기 한복판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 능력과 포섭력, 위기 관리 능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튄다. 또, 민경우의 주장에는 한국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상황에서는 강제력을 사용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여기에는 민주주의 발전
그래서 그는 “전민항쟁” 방식이 아니라 “선거”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민항쟁”은 그저 대중운동을 뜻하는 게 아니라 민족해방 또는 기존 통치 제도 전복을 위해 전체 인민이 들고일어나서 벌이는 전쟁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민경우는 강제력 없이 선거를 통해
그런데 이것은 NL 진영에서 1980~90년대 유행했던 생각, 즉 제3세계에서나 혁명이 가능하지 선진 자본주의에서는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고스란히 뒤집어놓은 격이다. 한국을 제3세계 국가 목록에서 빼내 선진 산업국 목록으로 이동시켰을 뿐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상당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러시아 혁명에 대해 취한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이 전제정 치하에서나 가능한 예외적 사건이고, 헌법이 확고하게 유지되는 서유럽의 사회 질서 속에서는 그와 같은 혁명적 투쟁이 무의미하다고 봤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서유럽 공산당들도 서유럽 국가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체제이므로 폭력 사용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적 길’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문제는 민경우가 “청산 대상”으로 규정한 “민간 대자본과 보수 엘리트”를 선거로 청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선거는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둘러싼 계급 간의 투쟁에서 일정한 구실을 한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자신의 전장을 결코 선거 공간에 한정하지 않는다. 언론도 활용하고, 선출된 정부가 자신의 이익을 침해할 때 투자 기피나 자본 해외 유출로 대응하고, 종국에는 1973년 칠레에서처럼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 따라서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민간 대자본과 보수 엘리트”를 진정으로 청산하려면 더 효과적으로 그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필요하다. 선진 자본주의의 경험이 거듭 보여 준 것은 혁명의 불필요함이 아니라 오히려 의회를 통해서는 사회를 진정으로 개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흥공업국 발전의 모순
식민지나 옛 식민지 나라들의 산업 발전을 인정한다고 해서 당연히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는 그런 발전의 모순된 성격을 인식했다. 식민지 지배의 첫 번째 효과는 경제적 진보가 아니라 유수의 문명 파괴 같은 약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서구 열강은 옛 사회관계를 해체하고 자본주의적 착취의 여지도 만들었다.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와 대립할 때 자본주의화 과정을 방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 과정을 아예 멈출 수는 없었다. 마르크스는 영국 식민주의가 인도에 가한 충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영국은 인도에서 이중의 사명을 갖고 있다. 하나는 파괴의 사명이고, 다른 하나는 재생의 사명이다.”10 레닌도 혁명 전 러시아의 경험을 토대로 외국 자본이 산업 건설을 시작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식민 통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자본주의 발전을 환영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목했던 것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무덤을 팔 노동계급이 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반면 스탈린주의와 종속이론은 식민지나 옛 식민지 나라들에서 산업 발전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나라들에서 자본주의 질서는 산업 발전은커녕 정체와 기술 낙후, 후진성 등을 강요하므로, 경제 발전을 이루려면 소련이 걸었던 길
남한은 1960년대 초부터 국가가 강력히 개입해 자본주의를 육성하다시피 했다. 국가자본주의는 신흥공업국 발전의 일반적 특징이었다. 국가는 규모도 작고 취약한 민간 자본가 계급을 대신해 축적 과정을 지도했고
물론 이 발전 과정은 모순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남한은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덕분에 선진국의 최신 기술과 경제 편제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후진성의 특권”
이런 모순들, 특히 민중의 끔찍한 생활수준과 독재의 가혹한 탄압 같은 문제 때문에 종종 사람들은 산업 발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형식상 독립은 했지만 식민지 치하와 다를 바 없다고, 여전히
자본주의 발전의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변혁의 성격과 전략에 중요한 함의가 있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끌어올려 계급 폐지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며, 그것을 가능케 할 사회 세력인 노동계급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족 모순 때문에 발전이 가로막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NL 진영은 남한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고 노동계급도 그런 과제를 제기할 만큼 규모와 의식이 성장하지 않았다고 봤다.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변혁 운동의 성격을 민족해방 인민
이 점에서 민경우가 농민에게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NL의 “노농동맹” 전략을 비판한 것은 전적으로 옳다. NL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주의화가 진행되지만 민족적 모순으로 인해 봉건적 모순이 온존하여 농민이 도시 노동자로 흡수되지 않고 이들이 필연적으로 농촌에 광범위한 농민 집단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농민을 주력군으로 생각하는” NL 경향에 날카로운 의문을 던진 민경우는 정작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가장 중요해진 세력인 노동계급으로 눈을 돌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농민들이 도시의 노동자로 이동하여 한국의 계급 관계가 노자 관계로 되었다고 보는 것은 한국사회를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라고 “전통 좌파”
이는 노농동맹에 대한 민경우의 문제의식이 규모 문제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농민은 단지 수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계급적 성격상 주력군이 될 수 없다. 농민은 내부적으로 분화해 있어서, 역사가 보여 줬듯이 결코 독자적인 정치적 구실을 할 수 없다. 농민이 사회 변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때는 다른 계급에 의해 정치적으로 지도될 때다. 농민뿐 아니라 다른 피억압 대중을 지도해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 수 있는 세력은 바로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착취 체제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 덕분에 자본주의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노동계급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 소수일 때조차 집중돼 있다면 그 사회의 결정적 생산력을 손아귀에 쥔다. 노동계급 비중이 큰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이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민중의 거리시위도 위력적이지만, 이것은 자본주의의 심장인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노동자 파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2008년 촛불항쟁에서 진정한 노동자 파업의 불발이 아쉬웠던 이유다.
노동계급이냐 새로운 파워냐
그런데 민경우가 노동계급 중심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는 주장들을 보면, 그는 산업화를 깨닫자마자 탈산업화론에 빠져든 것처럼 보인다. 그는 현재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분절화”에 따라 “포섭”되거나 “배제”된다고 한다. 지식정보화와 서비스산업의 팽창으로 노동자들의 구성이 다양해진 점도 강조한다. 노동자들이 더는 하나의 계급으로서 동질성이 없고 따라서 하나의 계급으로서 싸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세력이 아니라고 시사하는 듯하다.
그는 NL 이론의 식민지적 착취 개념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병영적 통제에 시달리는 균질화된 제조업 노동자”이지만, 실제로는 대자본이 경제적 여력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포섭”
그러나 노동계급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계급보다 더 가난하거나 더 천대받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이윤 체제를 공격하고 자신이 생산한 부를 자기 통제 아래로 되찾을 집단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또,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조건이 나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자본에 “포섭”돼 그들과 한편이 됐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고공행진을 지속한 대기업들의 엄청난 이윤을 감안하면 대기업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들보다 임금은 높지만 사실은 더 착취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대기업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투쟁으로 좀 더 나은 조건을 쟁취해 온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심화된 양극화는 노동자들 사이보다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가 훨씬 더 근본적이고 중요하다.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은 이런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다.
또, 민경우는 지식정보화와 서비스산업이 팽창하면서 “전통적인 제조업 노동자와는 다른 이미지
그는 “전체 노동자 1600만 명 중 제조업 노동자는 400만 명 수준”밖에 안 되는데도 노동운동은 여전히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이라고 불평한다. 교육·언론·보건·공무원·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지만, 그럼에도 제조업의 여전한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제조업 고용의 비중은 1995년에 23.5퍼센트에서 2005년에 19.3퍼센트로 떨어졌다.14 그러나 이것이 제조업의 중요성이 줄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IMF와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000~2005년 평균 27.5퍼센트로 매우 높은 편이다
제조업 고용의 비중이 떨어진 것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제조업의 사양화 효과가 아니라 오히려 제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기업들은 자동화와 기계화 등 기술 혁신을 추구하는데, 이는 대개 노동력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유시민은 제조업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며 “오늘날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10억 원어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종업원은 네 명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17 생산성이 높아진 제조업이 신규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하지 않게 되자, 학업을 마치고 새로 노동시장에 들어온 사람들이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점점 더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가 되기 쉬워졌다. 이처럼 제조업 고용의 상대적 감소 현상은 산업 생산성이 증대한 결과이지, 기존 노동조합이 자신의 고용을 지키려고 자본의 “배제 전략”을 수용했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 지도부가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의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문제이고, 우리는 조직 노동자들이 이런 천대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조직 노동자의 강점
또,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을 노동계급만큼 또는 그보다 더 중시하는 관점도 문제다. 물론 민경우가 영세 자영업자에 주목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영세 자영업자의 상당수는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 가까운” ‘비임금 근로자’, 즉 반半프롤레타리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첫째, “농촌을 떠난 대규모 탈농 인구
둘째, 자영업자 같은 계층은 다양한 정치적 방향으로 이끌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노동자 운동이 강력하고 진정한 대안을 제시할 때 노동계급을 지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동적 정치를 추구하는 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될 수도 있다. 노동계급의 고유한 중요성을 망각한 채 노동계급을 자영업자 등과 함께 민중의 일부일 뿐인 것으로 취급
한편, 중소기업 자본가는 비록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횡포를 당할지라도 하위 착취자로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처지이므로 비임금 노동자인 영세 자영업자와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이 정한 중소기업 상한기준은 상시근로자 수 1천 명 미만과 자산 총액 5천억 원 미만이다. 민경우는 “중소기업까지 포괄해야 비로소 한국의 경제 현실이 제대로 설명되고, 그에 근거해야만 연쇄적으로 민족, 국민경제, 다양한 계급계층의 존재와 연대연합의 중요성이 도출
민경우는 “새로운 파워의 진원지”로 수도권 청년들, 고학력 386세대, 자영업자, 빈민층 등을 강조한다. 사실, 그가 이들을 “새로운 파워”로 올려놓은 근거는 희박하다. 청년들은 “정규직으로 채워진 사회 질서에서 최말단에 위치”한다거나,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거나, 역사의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식이다.
민경우는 2002년 촛불, 2004년 탄핵반대, 2008년 촛불항쟁 등 새롭게 떠오른 운동들의 특징들로부터 모종의 일반화를 시도하는 듯하다. 그가 이 경험들에서 특히 청년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데는 나도 공감한다. 다함께도 이런 운동에서 청년들의 구실이
민경우의 지적대로 노동운동이 이런 투쟁 속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이 이런 운동들의 결함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2008년 촛불항쟁이 더 전진하지 못한 이유였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에 차지 않는 노동운동을 걷어차 버리는 게 아니라 이런 운동들과 노동자 운동이 서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도록 애쓰는 것이다.
외환·금융 중시론의 문제점
민경우는 NL의 종속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식민지’라는 구도는 더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종속의 기본 구조가 정치·군사적 종속에서 경제적 종속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선진 부국과 개발도상국·후진국의 관계는 군사적 강점과 정치적 내정간섭에 의한 강압적인 수탈에서 외환, 금융의 개방화에 기초한 금융적·경제적 수탈의 형태로 이동한다.”
이런 지적은 NL의 제국주의 개념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한 단면을 포착한 것이긴 하다. NL은 제국주의를 서방 열강의 제3세계 착취·억압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NL의 기존 종속 개념을 비판하며 민경우가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금융과 외환의 중요성이다. 그는 NL의 종속성 개념이 “주로 군사적인 부분에 착목”한다는
그러나 NL 진영의 다수는 IMF 이후 경제 ‘종속’ 문제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 한미FTA에 거의 다걸기를 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다만, NL 다수파와 민경우의 차이는 그런 문제를 보는 관점과 대안에서 오히려 잘 드러난다. NL은 이런 문제를 “외국 독점자본의 침탈과 민족자립경제 수립이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본다.
그런데 이와 같은 민경우의 대안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첫째, 그는 금융과 외환의 안정화 정책을 통해 한국 경제를 위기로부터 지킬 수 있다고 가정한다. 금융을 통제하고 경제를 내수 위주로 전환해 국민경제를 강화함으로써 말이다.
물론 한국 경제의 등락이 세계 경제에 연동돼 있
그러나 민경우는 이런 문제를 환율 체제와 금융 정책에서 비롯한 것으로 지나치게 협소하게 보고, 따라서 환율과 금융만 통제하면 세계 경제의 부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본다. 예를 들어, 그는 만약 동아시아 “각국 통화가 달러에 페그되어” 있지 않았다면
또, 그는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로부터 특히 한국이 큰 영향을 받았다며 그 이유를 외환거래 자유화에 따른 해외 금융자본 유입에서 찾는다. 사실, 2008년 미국 경제 위기에 대한 가장 흔한 해석도 금융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금융시장 규제완화와, 국경을 넘나들며 대규모 투기에 가담한 금융시장의 영향력 증대가 이번 위기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왜 금융이 전례 없는 규모로 성장하게 됐는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1970년대 초 이래 장기적 이윤율 위기 상황에서 자본주의가 생산에 투자하기보다 대출을 늘려 거품을 키웠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가 한국에 영향을 주기 전에 이미 한국 경제도 비슷한 문제, 즉 부동산 거품과 가계 대출 급증으로 위협받고 있었다. 물론 경제의 불안정을 증폭시키는 요인, 예컨대 투기성 단기자본 등을 규제해야 한다. 그러나 금융과 외환의 안정화 정책이 오늘날 세계와 한국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더 근원적인 문제, 즉 이윤율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한국 경제가 ‘외부’로부터 보호받는다고 해서 위기를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둘째, 민경우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미국의 지위 하락”이라는 현실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 아래 산업화”됐지만 이제는 일본 변수와 중국 변수 등도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한미 양국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보는 NL의 시각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국주의=유일 강대국 미국’이라고 협소하게 현상론적으로 보는 NL 사상의 약점을 지적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민경우에게는 미국의 상대적 지위 하락과 다른 강대국들의 상대적 부상이 가져올 세계적 불안정을 보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그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통해 미국 주도 세계 경제에 한국 경제가 편입됨에 따라 겪었던 여러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예를 들어, 그는 “1990년대 초반 유럽과 같은 탈달러 지역협력 구상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면” 1997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처럼 암시한다.
따지고 보면 “동아시아 공동체” 얘기는 그렇게 신선할 것도, 진보적일 것도 없다. 노무현도 집권 초기에 엇비슷한 구상을 내놓았고, 최근에는 일본 총리 하토야마가 “미국 일극체제는 끝났다”며 “아시아 공동체”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진보진영이 미국 주도 체제에 맞서는 일본과 중국 주도 동아시아 체제를 지지하고 나서야 하는 것일까? 물론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한편이 된다면 그것은 미국에게 최악의 악몽이다. 그러나 미국의 악몽이 늘 우리 운동의 길몽인 것은 아니다.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중국 국가에 의존하는 것은 대미 의존 못지않게 위험천만한 일일 수 있다. 세계의 군사력이 집중돼 있고 발화 요인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동아시아에서 강대국 간의 갈등은 군사적 참화를 부를 수도 있다. 우리는 지난 세기 전반기에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가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어떤 일을 벌였는지 기억해야 한다.
제국주의 시대는 끝났는가?
민경우의 주장은 아직 체계화되지 않아서인지 중간에 논리가 툭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종종 드는데, 그가 “다극 시대”라고 부르는 오늘의 세계 질서를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그렇다. 그는 1960년대를 끝으로 “군사적 강점에 기초한 난폭한 제국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는 무엇일까? 그는 그것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무시”한 것이어서 실패가 예정된 침략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으로는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가 겪고 있는 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 열강이 식민지에서 퇴각한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식민지 민중의 영웅적인 해방 투쟁과 함께 전후戰後 세계 자본주의 자체의 구조 변화가 작용한 결과였다. 전에는 아프리카가 제국주의 열강끼리 영토 분할 전쟁을 일으킬 만큼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더는 그렇지 않게 된 것이다. 자본 투자가 주로 선진국들 내부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저항을 감수하고라도 식민지를 유지할 사활적 이유는 사라졌다.
1970년대부터는 국경을 가로지르는 자본의 흐름이 크게 확장됐다. 자본이 해외 투자를 많이 하면 자연히 자기 국가의 권력을 무기 삼아 다른 국가와 협상하려 하게 된다. 세계화의 결과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경 밖 더 멀리까지 영향력을 미쳐야 하게 됐다. 이것은 순전한 경제 논리가 아니고 정치·군사적 논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국은 국가의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에서 경제력의 상대적 하락을 겪자 나머지 국가보다 훨씬 우세한 군사력을 사용해 경제력 쇠퇴를 만회하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어느 지역이든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다른 국가와 유착한 자본가들에게 미국의 의지를 관철하고 IMF·WTO·세계은행 같은 경제 기구들도 지배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탈냉전기인 최근 20년 동안 우리가 수많은 전쟁을 목격한 이유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점령은 테러 집단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경쟁 국가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테러’는 빌미일 뿐이다.
민경우가 ‘제국주의-식민지’라는 구도가 맞지 않는다며 남한이 식민지라는 것을 부정한 것까지는 옳았는데, 더 나아가 제국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혼란에 빠진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식민지는 특정 시기 제국주의의 특징일 뿐 식민지가 사라졌다 해서 제국주의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전쟁 사이의 연관을 보기보다 불비례하게 금융만 강조한다. 어떻게 보면, 그는 냉전 시기 “공포의 균형”이 깨져 1991~2007년에 미국 중심의 일극 시대가 펼쳐지다가 2007년경 국제적으로 대미 억지력이 다시 부활했다고 낙관하는 듯하다. 아마도 이것이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미국이 2~3년 전보다 수세에 몰린 처지이긴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미국은 흔들리는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군사적 모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이것이 경제 위기와 여러 우연적 요소들과 맞물리면서 군사적 긴장을 증폭할 수 있다. 민경우가 “대미 억제력”이라고 부르는 러시아와 중국은 이러한 불안정과 긴장의 한 축이지 그것을 해소하거나 다소 억제하는 세력은 아니다.
일국적 관점 비판의 빗나간 결론
민경우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일국적 관점으로는 세상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NL 동지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원래 NL은 남북관계를 무시한 채 남한의 변혁을 생각하는 “반국半國”적 관점을 비판하며 한반도 차원에서 생각하는 “일국一國적” 관점을 취해 왔다. 하지만 일국적 관점으로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동안 국제주의자들인 다함께가 NL에게 줄곧 해 왔던 얘기다.
그러나 민경우의 일국적 관점 비판은 다함께와 달리 국제주의가 아니라 부르주아 국제관계론 수준에 그치고 결국 민족과 국가 중시론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북미대결을 보는 그의 관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NL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 간 정치 역관계, 중동과 같은 제3세계의 동향에 대해 둔감하다”고 비판한다. “북미협상에서 중러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다함께도 2000년대 초중반 내내 비슷한 지적을 하며, 한국 반전 운동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적 운동의 일부가 돼 미국의 프로젝트를 좌절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장차 한반도로 전쟁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민경우의 결론은 정반대로 나아갔다. 그는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강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 “몽상적”이라고 비판한다. “1999년 시애틀 WTO 3차 각료회의 등에서 벌어진 반신자유주의 운동, 2003년 2월 유럽에서 진행된 반전운동 따위를 중심으로 현실을 판단하고 구성하려는 발상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정세를 규정하고 결정짓는 실체를 무시하고 시민사회, 개인, 사회운동을 과대평가하는 몽상적인 견해이다. 특히 식자연하는 인텔리 중에 이런 무책임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22
민경우에게 “정세를 규정하고 결정짓는 실체”는 바로 국가다. 그는 2003년 봄 위력적인 반전 운동을 통해 오히려 입증된 것은 “그러한 노력이 국가와 국가로 구획된 세계질서 속에서 얼마나 허망한가”였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라크 민중의 저항은 중요했지만, 미국의 이라크 전략을 좌절시킨 데서 국제 반전 운동의 구실도 못지않게 중요했다.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국내, 즉 제국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오히려 더 결정적이었다. 국제 반전 운동은 전쟁의 부당성을 폭로했고, 세계 곳곳에서 각국 지배자들의 전쟁 지원을 좌절시켰고, 아랍 민중에게 자신감을 줬으며, 결국 부시가 이라크 전략을 수정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이라크 민중의 저항과 국제 반전 운동의 관계는 모루와 망치 같은 관계였다. 그러나 민경우는 국가가 중요하다고 말할 뿐,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그 국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일절 고려하지 않는다
그가 이라크 전쟁과 반전 운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때 그의 진정한 관심사는 그 교훈을 북미관계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가 이끌어낸 교훈은 “민족과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의 실체와 그것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의 중요성이다. 요컨대 “한국의 민간운동”이 아니라 북한 핵무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경우가 일국적 관점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일국적 대안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그가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전에 ‘남과 북은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는 온전한 민족주의를 지지했지만 이제는 반쪽의 민족주의인 남한 애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는 분단이 장기화하면서 남북 사이의 이질감이 심화했고, 남한에서 보수 엘리트의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 있었던 점을 그 배경으로 설명한다. “남은 월드컵, 촛불시위 등을 거치며 북과는 다른 차원의 집단적 일체성을 획득하고 있다.”23 그리고 NL도 이런 시대 변화에 맞게, 즉 남측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그는 “통일은 제한적 의미”만 있다며
도대체 사회주의가 한 나라에서 실현될 수 있다면 권력 장악 이후뿐 아니라 그 전에도 그 이론이 옳다고 믿을 수 있게 된다. 후진적인 러시아의 국경 안에서도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면 선진국인 독일에서 일국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주 당연할 것이다. 내일은 독일 공산당의 지도자들이 이 이론을 제안할 것이다. … 모레는 프랑스 공산당 차례일 것이다. 그리하여 코민테른은 사회애국주의 노선을 따라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24
그런데 민경우가 2002년과 2008년의 촛불운동을 애국주의의 근거로 드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는 2008년 촛불시위에서 사람들이 “헌정의 진정한 수호를 참가자 모두를 하나로 엮는 정체성으로 확인”했다고 하지만, 이는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처럼 비친다. 그는 바로 이 “헌정질서에 대한 존중감”을 들먹이며 이명박 퇴진 운동에 반대했지만, 2008년 촛불시위의 참가자들은 이명박을 퇴진시키고 싶어했다. 그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고 노래한 것은 민주주의가 법전 안에만 있는 현 주소를 꼬집은 것이다. “촛불시위 이후 애국심이 커졌다”는 10대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한 것도 억지스럽다.25 아마도 그런 답변은 ‘이명박 정권이 나라를 망치고 있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거나 ‘나라 일에 관심이 늘어났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듯하다. 또, 그는 “미국에 대해 전보다 비판적이 됐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인용하고 있는데,26 미국에 비판적이면 다 민족주의이고 애국주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다함께가 민족주의·애국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사실 말고도, 미국의 이라크 전쟁 반대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운동이었다는 예를 들 수 있다. 2002년 촛불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으로 이어졌는데 여기에 참가한 청년들은 두드러지게 국제 연대의 감수성을 드러냈다. 바로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NL이 2000년대 떠오른 새로운 운동들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애국주의는 민경우가 자연스런 세태 변화를 수용한 것이라기보다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보통 진보와 중도, 보수 등으로 정치세력을 삼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정치세력을 구분하게 되면 진보는 결코 보수를 압도할 수 없다. 그러나 촛불시위가 집단적 일체성을 확보하며 대한민국 수준의 민족, 민족주의로 발전하게 되면 양상은 달라진다. 민족, 민족주의의 위력은 민족적 일체성을 구분하는 자를 보수라는 이름으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매국노로 단죄하기 때문이다.”27
그러나 민경우의 가정과 달리, 우리가 애국주의를 무기로 집어든다 해서 보수 우파들을 주변으로 몰아내 버리고 우리가 일약 다수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라는 똑같은 논리로 노동계급의 투쟁도 이기적인 것으로 “단죄”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파병, 이주노동자, 고통분담 문제 등에서 우파들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그들을 정치 담론의 중심에 앉히게 될 위험이 있다. 또, 민경우의 주장을 보면, 중도와의 연합 같은 구상이 애국주의 논리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시민도 “헌법 애국주의”를 주장하는데, 유시민의 애국주의는 이미 이라크 전쟁 당시 시험대에 오른 바 있다. 당시에 유시민은 국익 논리를 앞세워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고, 친노세력은 집권 내내 노동자 투쟁을 “계급 이기주의”로 몰아붙였다.
운동에 처음 발을 딛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애국주의 논리를 차용하는 것은 거의 자연스런 일일 수도 있다.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싸운다는 명분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운동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운동 참가자들이 노동자의 연대, 국제적 연대에 더 관심을 기울이도록 돕는 구실을 해야 한다.
민경우가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소수자 문제에 거의 반감을 보이는 것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얼마나 협소하고 때로 배타적인가를 잘 드러내 준다. 그는 운동 진영 일부가 “의도적으로 이주민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을 부각시켜 궁극적으로 근대국민국가를 해체하려 한다”며 피해망상증 환자 같은 얘기를 쏟아낸다. 그러나 운동 진영이 천대받는 자들을 방어해야 하는 것은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차별 등이 노동계급을 이간질해 연대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동안 NL은 이런 문제에 무딜 뿐 아니라 때로 인종차별적이고 성소수자차별적인 북한 관료의 입장
북한 문제
민경우는 이 책을 통틀어 북한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NL 노선을 재구성하겠다면서 북한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NL 노선의 알파요 오메가는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NL이 친일·친미로 얼룩진 남한 통치자들에 반대해 북한 관료에게서 민족 정통성을 발견한 이래 북한은 늘 그들의 준거점이었다. NL 운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북한을 적대하는 군사 개입이나 압박을 반대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남한 정권과 때로는 적대적 관계를, 때로는 화해협력적 관계를 맺어 왔다.
민경우가 NL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들도 대개 그 기원은 북한에 있다.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창한 것도, 그것을 별 설명 없이 식민지반자본주의론으로 바꾼 것도 북한 당국이었다. 그는 NL에 “토론하는 풍토”가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회주의가 노동계급 자신의 활동이 아니라 위로부터 소수의 무오류의 지도부에 의해 이뤄졌다고 보는 스탈린주의를 받아들인 당연한 결과다. 토론과 논쟁보다는 지도부의 방침이 중요하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조직 방침에 도전하는 것은 “신심”이 없는 일로 치부된다. 이론은 한낱 북한 관료의 행동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다 보면 현실을 부정하고 도그마를 내세우는 데 급급해질 수밖에 없다. NL 진영에는 여전히 “지도자가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식의 풍토가 있다. 민경우는 “민주집중제”가 문제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럼에도 민경우는
그런데 민경우의 북한 두둔은 NL이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억지스러운 실천
물론 PD 우파 식의 북한 비판, 즉 사실상 북한을 남한보다 못한 사회로 보는 시각은 다른 여러 문제를 낳는다. 남한은 북한보다 낫기는커녕 북한과 끔찍한 군사경쟁을 벌이는 거울 이미지 같은 존재다. 그리고 남한 진보진영의 주된 적은 남한 국가와 그 동맹인 미국·일본 제국주의다. 이런 진정한 좌파적 태도가 전제가 됐을 때만 북한 비판은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민경우는 곳곳에서 심경 변화의 조짐을 드러낸다. 북한을 옹호하지만, 그와 동시에, 전에 부정했던 남한 국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쪽으로도 움직인다. 남한의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 그를 후자 쪽으로 끌어당기는 견인차 구실을 한다. 분단이라는 조건 때문에 그의 심경 변화는 북한 옹호와 상당 기간 공존하겠지만, 이미 시작한 변화는 자체 동력을 가지고 발전해 나아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의 모순은 더 심화될 것이다.
맺으며: 대차대조표
이제, 민경우의 NL 노선 재구성 시도가 과연 실천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다루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사실, 그의 작업은 완료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문제 제기의 골자는 명확히 서 있지만, 대안적 전략은 아직 수미일관하거나 구체적이지는 못한 면이 있다. 또, 어떤 쟁점에 대해서는 생각이 계속 변하고 있고, 어떤 쟁점은 논쟁의 구도상 아직 본격적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의 대안이 우여곡절로 점철된 험난한 현실에 부딪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더 두고 봐야 하는 점도 있다.
그럼에도 우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재구성 방향이 대체로 개혁주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남한 자본주의의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변화를 더는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는 그로부터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대중이 개혁의 여지를 갖게 된 체제에 포섭됐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공인된 가치로 자리잡았으므로 오직 선거를 통해서만 정권을 잡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실천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그의 이런 주장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NL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주류”는 그가 말하기 전에 이미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다. 1891년에 베른슈타인이 독일 사회민주당 내에서 수정주의 견해를 내놓았을 때 같은 당원이던 이그나츠 아우어가 그에게 했던 말이 민경우에게도 들어맞는 듯하다. “친애하는 에드
NL의 다수는 옛 이론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개혁주의적 실천을 해 왔다. NL의 개혁주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아래서 본격화했다. 그들은 두 정부가 북한과 화해협력 정책을 추구한다 해서 그 정부들에 협조했다. NL은 민경우보다 7~8년 전에 김대중 정부를 살려주려고 ‘정권 퇴진 운동 불가론’을 폈다. 때로 NL의 주류 이론가들은 NL의 실천 지침을 옛 이론 체계로 설명하는데, 혁명적 미사여구에 속지 않고 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결코 혁명적 결론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민경우가 비판하는 박경순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의 “자주적 민주주의”는 계급연합인 “반MB 범국민 단일전선”을 통해 수립되며 그 정권에 “자본가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한다.30
NL이 옛 이론을 수정하지 않고도 개혁주의적 실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론을 다락방에 처넣어두는 그들의 오랜 실용주의적 습관 때문만은 아니다. 핵심적 비결은 그들의 인민민주주의혁명론 안에 이미 개혁주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민민주주의
물론 민경우의 NL 노선 재구성 시도가 결국 실천에서는 기존 NL 노선과 똑같게 나타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민경우가 지적하듯이, NL은 전통적 전략과 전술을 상당히 유지하고 있고 민경우는 이를 좀 더 현대적 또는 탈현대적으로 혁신하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그는 조직 노동자 운동, 노농동맹, 학생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회의가 크다. 대신에 영세 자영업자와 청년, 386세대, 학습, 온라인 공간, 사회공공성 등이 그의 키워드다. 그는 2007~2008년을 겪으면서 NL이 ‘복고’ 색채를 강화한다고 우려하는 듯하다. 이런 요소들은 민경우가 NL보다 더 온건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듯하다. 특히 그가 민주노동당의 정권 퇴진 입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쟁점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민경우는 통일 문제의 중요성을 전보다 훨씬 낮췄고, 그 대신 생활상의 문제들을 강조한다. 이는 그가 신자유주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관계 있다. 예를 들어, 그는 2005년 한 토론회에서 “열린우리당의 주도권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통일운동이 진행되면 통일운동은 관념에 빠져 불행한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자유주의 세력과의 협력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이 통일을 주도하면 근로대중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모호한 통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32 반면, 박경순은 “화해협력 세력
이는, 지금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민주당 문제에서 민경우가 NL보다 왼쪽에 설 수도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입장은 전혀 일관되지 않다. 이 쟁점에서 그가 NL를 비판하는 최근 강조점은 진보연대강화론 우려에 있지, 민주당과의 연합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신자유주의 문제를 중요하게 보면서도 2010~2012년 범민주진보진영의 공조를 강조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민경우의 NL 노선 재구성 시도는 현실의 변화에 대한
출처 : 《마르크스21》 3호
주
1 민경우, ‘소통과 논쟁2: 강한 돌에 무리하게 다가서지 말라!!’, 2008. 1. 22.
2 ‘대담: 정대연-민경우, ‘12월 대국회투쟁’을 논하다’,
3 같은 글.
4 민경우,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제기된 몇 가지 쟁점②: 글로벌 대기업의 현황과 실천적 함의’, 2009. 7. 23.
5 민경우, ‘이명박 정부 퇴진론은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2009. 6. 27.
6 방인혁, 《한국의 변혁운동과 사상논쟁》, 소나무
7 같은 책, 432쪽.
8 민경우,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제기된 몇 가지 쟁점②: 글로벌 대기업의 현황과 실천적 함의’, 2009. 7. 23.
9 이승환
10 K. Marx, “The Future of British rule in India”, New York Tribune, 1853. 7. 22.
11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르크스와 민족문제’, 《민족문제의 재등장》, 책갈피, 140쪽.
12 방인혁, 《한국의 변혁운동과 사상논쟁》, 453~454쪽.
13 《통계로 본 한국의 변천》, 통계청
14 통계청
15
16
17 유시민, 《대한민국 개조론》, 돌베개
18 《통계로 본 한국의 변천》, 통계청
19 같은 책, 73쪽.
20 크리스 하먼, ‘세계의 노동계급’, 《마르크스21》 2호
21 민경우, ‘소통과 논쟁1 — 다극 시대의 도래와 국제정세를 보는 관점’, 통일뉴스, 2008. 1. 17.
22 같은 글.
23 민경우,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2008. 7. 7.
24 Trotsky, The Third International, pp. 55-56.
25 민경우,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2008. 7. 7.
26 같은 글.
27 같은 글.
28 민경우, ‘소통과 논쟁5 — 북 연구 방법론’, 통일뉴스, 2008. 2. 10.
29 존 몰리뉴, 《마르크스주의와 당》, 북막스
30 박경순, ‘87년 체제의 종언과 그 대안 —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
31 이에 대한 설명은 김하영,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책벌레
32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33 조성주